화가, 목수에게 답하다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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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가 화제]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현장 미술운동가 최병수씨의 삶 추적
 
현장에는 언제나 그의 작품이 있었다. 1987년 연세대 앞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9년 노동절 100주년의 <노동해방도>, 2001년 새만금의 장승과 솟대, 2002년 요하네스버그 ‘리우+10 세계정상회의’의 <얼음 펭귄>, 2003년 평택시 대추리 황새울 벌판의 <생명, 그리고 희망> 등. 그는 환경·문화 운동가이자 화가인 최병수씨(46)이다.

최근 최병수씨에 대한 책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가 출간되었다. 표지에는 ‘최병수 말하고 김진송 글을 짓다’라고 적혀 있다. 미술 비평가로 활동하다 목수가 되고, 목수로 일하면서 글을 쓰는 김진송씨(47)가 최병수씨를 인터뷰해 쓴 책이다. 목수 김진송씨가 화가 최병수씨에게 말을 건 것이든, 목수 최병수씨가 화가가 된 최병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뜻이든, 제목은 중의적이다.

이 책은 전수학교를 2년 다니다 그만두고 중국집 배달부, 공사장 잡역부, 목수 등 화가가 되기 전 열아홉 가지 직업을 가졌던 최병수씨에 대한 책이다. 형식은 자유롭다. 1980년대 목수로서 벽화 그리는 것을 돕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까지 최씨의 삶을 다룬 전반부는 구술 전기 같다가 그 이후에는 인터뷰 대담처럼 읽힌다. 각 장 앞에 김진송씨가 쓴 글은 한 예술가에 대한 평론가적 시선이 담겨 있지만, 김진송씨는 그마저도 자신의 의견을 최소로 했다. “대담으로 꾸릴 생각이었으나 그런 형식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할 이야기가 많았고, 나는 그에게 던져줄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김진송).”

그래서 이 책은 1980년대 현장 미술운동의 속살을 볼 수 있는 문화사이기도 하고, 한 예술가의 궤적에 대한 평론 같기도 하다. 1980년대 정릉에 사는 화가 유연복씨의 집 담장에 미대생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목수로서 돕다가 경찰서에 끌려가, 형사의 억지로 ‘화가’라고 직업을 기재하고 나와야 했던 장면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이다. 형식이 어떠한 것이든, 이 책은 읽고 나면, 한 시대와 현재를 치열하게 살고 있는 한 예술가를 마주한  듯한 묵직함을 느끼게 한다. 

두 사람은 김진송씨의 말대로라면 “오며 가며 익숙해진 사이”이고, 최병수씨의 말대로라면 “느낌으로 교류하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 것 같지 않은” 사이이다. 이심전심이라서인지. 최병수씨가 한 일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면서도 언제 했는지는 책 안의 두 쪽짜리 연보에서야 정확히 알 수 있다. 책을 다 읽어보면 시점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이래 최병수씨는 언제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재작년 위암 수술을 받았고, 지난해 교통 사고를 당해 전남 여수 백야도에서 건강을 다스리고 있는 그가 앞으로도 환경과 생명 문제에 민감한 예술가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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