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눈엣가시’ 이란 제2 이라크 되려나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6.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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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핵사찰’ 성명 채택…군사 개입설도 뭉게뭉게

 
페르시아 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2002년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이라크·북한과 함께 2002년 ‘악의 축’으로 지목되었던 이란이 표적이다. 2002년 이라크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은 마침내 이란을 국제연합(UN)의 심판대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 3월29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란에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을 받을 것’을 촉구하는 의장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 혐의를 받았던 이라크는 2002년 국제원자력기구의 핵 사찰을 받아들였다. 당시 사찰 결과는 이라크가 핵을 개발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쪽으로 나왔다. 그런데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미 2003년 1월,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와 밀담을 나누면서 ‘핵이 있든 없든 침공은 이미 결정났다’고 알렸다. 미국은 당초 부시가 블레어에게 귀띔했던 날짜보다 정확히 9일 늦은 2003년 3월19일,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핵 존재 여부와 관계 없이 이라크를 치기로 날짜까지 정해놓았던 사실은 이란에 대한 안보리 의장 성명이 채택되기 이틀 전인 지난 3월27일, 미국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알려졌다. 이 신문에 따르면, 2003년 1월31일 미국 백악관에서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의 밀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블레어 총리에게 세 가지 전쟁 시나리오와 공격 목표물 개수까지 제시해가며 침공 날짜를 못박았다는 것이다. 당시 사찰단은 안보리 결의안 1441호에 따라, 핵 개발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이라크를 몇 주간 샅샅이 뒤졌으나 허탕을 친 직후였다.

이란에서도 ‘뚜렷한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란은 문제의 핵 시설에 대해 이미 2003년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았다. 결과는 이란이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는 쪽으로 나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같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이란은 오랜 은폐의 역사가 있고, 약속도 깨는 나라이며, 사찰단이 이란 핵 개발 프로그램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는 결정적인 지역을 사찰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이 안보리에 회부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1월 중순, 이란이 그때까지 동결했던 핵 프로그램, 즉 우라늄 농축 관련 시설을 다시 가동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이란은 2003년 10월 우라늄 농축 관련 활동을 자발적으로 중단하고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연합 3개국(EU3)과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벌였다.

핵 개발에 대한 이란의 논리는 초지일관 자기네 핵 개발은 평화적 목적이며, 이는 주권 국가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것이다. 안보리 의장 성명 이후에도 이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이란의 관영 IRNA 통신은 지난 4월4일 이란 의회 의장 골람 알리 하다 드 아델의 공식 발언 내용을 전했다. 핵심은 ‘비확산조약(NTP) 회원국으로서 국제 핵 사찰의 감독 아래 평화적 목적으로 핵을 개발하려는 이란의 움직임을 막는 것은, 주권 국가의 정당한 권리에 대한 침해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IRNA 통신은 ‘그가 비확산조약의 비회원국들이 핵 무기를 개발해왔고 수백 개의 핵탄두를 비축해온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덧붙였다. 자기네와는 달리 최근 인도에 핵 개발 지원이라는 ‘특전’을 베풀기로 한 미국 정부의 이중적 행태를 간접 비판한 것이다.

일부 서구 언론 “공습 수순 밟기 돌입”

지난 3월29일 채택한 안보리 의장 성명은 이란에 ‘30일’간의 말미를 주었다. 즉 이 기간 안에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와 안보리가 요구한 사항을 이행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요구, 즉 미신고 시설 및 의심스런 핵 시설에 대한 사찰에 협조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2002~2003년 이라크의 전례를 참고한다면, 이란이 설사 이 요구에 따르더라도 사태가 원만하게 수습될 공산은 크지 않다. 상황이 ‘예정된 순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임페리얼 대학 수학 교수이자, 이란 제재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아바스 에달라트 씨는 지난 1월 진보적인 매체 <제트매거진> 인터넷판과 가진 한 대담에서, “미국의 전략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에 대해 국제연합 차원의 반대 결의안을 내고 제재를 가해 이란을 완전히 고립시켜 군사적 공격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상황 전개는 그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즉 미국의 무력 개입과 이에 대한 이란의 예상되는 반응 등 군사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정권 교체’를 공언해온 미국과 그 주변국들의 분위기. 세계 각국의 언론은 미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군사 개입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중앙정보국(CIA) 포터 고스 국장이 터키를 방문했는데, 미국이 올해 이란의 핵 시설 및 군사 시설을 공격할 경우, 지원을 요청한 것이 주요 방문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 뉴스 통신 DDP가 전한 내용이다. 이 통신은 또 미국이 이 무렵 몇 주 동안 사우디 아라비아·요르단·오만·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에 미국의 군사 계획을 알리면서, ‘예상되는 방식은 공습이 될 것’이라고까지 전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유수한 연구원, 퇴역 장성, 전 정보 계통 종사자 등 이른바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도 미국이 군사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점치는 언급이 부쩍 늘고 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군사 문제 전문 기자 다나 프리스트 씨는 지난 4월2일자 관련 기사를 통해, 미국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하면 이란은 헤즈볼라 등을 동원해 이라크의 미군과 미국 본토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테러로 항전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두뇌집단 ‘전략및국제연구소(CSIS)’도 이미 지난 2월 말, 미국의 가능한 군사 옵션과 이에 대한 이란의 예상되는 대응 방향을 상세히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반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이란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이란은 지난 4월4일 호르무즈 해협과 오만 해에서 해상 기동 훈련 중, 새로 개발한 중·단거리 미사일 두 종류를 시험 발사하며 무력을 과시했다. 이란 군은 아울러 새로 개발한 무장 쾌속정을 이때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이 당장 이란을 치기는 쉽지 않다. 우선 가까이 있는 이라크와 이스라엘이 이란의 보복 목표가 될 수 있다. 이란의 팔을 비트는 데 필요한 국제연합의 결의안도 중국·러시아가 버티고 있는 한 쉽지 않다. 하지만 실제 미국이 군사 개입에 나설 공산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미국의 군사 개입이 이루어지면, 이번에는 이란의 지하 핵 시설을 파괴하는 데 필요한 전술 핵무기, 이른바 ‘더러운 무기’가 동원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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