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떠는 사람’이 하나둘 늘고 있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6.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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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환자 빠르게 증가…‘소화제 오용’도 원인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질병은 무엇일까. 췌장암이나 심근경색, 혹은 묘성증후군(고양이 소리를 주 증상으로 하는 유전 질환)일까. 퇴행성 질환을 앓는 환자나 그 보호자들은 단연 치매와 파킨슨병을 꼽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두 질환의 위험성이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파킨슨병의 경우, 보건 당국자들마저 치매와 혼동할 정도로 베일에 가려 있다. 4월1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열 번째 파킨슨병의 날. 이 날을 맞아 파킨슨병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늘어나는 환자:이상하게 우리 나라에서는 파킨슨병이 희귀 질환 취급을 받는다. 환자가 눈에 잘 안 띄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세계 파킨슨병 유병률(65세 인구의 1%, 85세 인구의 3%)을 근거로 국내 환자 수를 10만명 안팎으로 추산한다. 적지 않은 숫자임에도 환자가 눈에 잘 안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병을 꼭꼭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환자 수는 점점 더 불어나는 추세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덩달아 파킨슨병 환자도 증가하는 것이다. 정선주 교수(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파킨슨병센터)가 1996~2005년에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신규 환자 수가 10년 동안 3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50대 환자 수가 가파르게 늘어났고, 40대 이하에서도 적지 않은 환자가 발생했다.

60대 이상이 다수…40대 환자도 적지 않아

가장 많이 걸리는 연령대는 61~70세였다. 서울아산병원이 환자 1천7백51명을 조사한 결과, 34.2%(5백98명)나 되었다. 그 뒤는 예상과 달리 51~60세였다(5백52명). 41~50세도 적지 않아서 2백74명이나 되었다. 정교수는 “40대 이하 환자는 주로 유전적 소인에 의해 발병한다.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환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2025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이때 65세 고령 인구는 약 9백90만명. 전문가들은 획기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으면 그 중 20만명 이상이 파킨슨병에 노출되리라 예견한다. 환자가 느는 또 다른 이유는 파킨슨병이 ‘이른 죽음’을 동반하지 않아 앓는 환자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고약한, 너무 고약한:파킨슨병이 처음 회자된 해는 1817년. 영국 의사 제임스 파킨슨이 그 증세를 에세이로 보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아직 발병 원인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치료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종에 관계없이,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파킨슨병의 주요 증세는 떨림(진전), 느려짐(서동), 굳음(경직), 자세 불안정(균형 장애) 등이다. 떨림은 환자들이 가장 먼저, 가장 흔히 겪는 증세다. 전체 환자의 75% 이상이 경험하며,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때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굼뜬 동작도 흔히 나타나는 증세다. 글을 쓰거나 단추를 끼울 때 손놀림이 점차 둔해진다. 눈의 깜박임이나 미소 짓기, 침이나 음식물 삼키기, 걸을 때 팔의 움직임 등도 서서히 느려진다. 증세가 심해지면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무동증이 나타나는데, 이 상태가 되면 목석처럼 꼼짝할 수가 없다.

몸이 굳는 증세도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때로는 팔다리 관절이 석고처럼 굳어버린다. 그때 근육을 조이는 듯한 통증이 찾아오는데, 고통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15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최 아무개씨(56·서울)는 그 느낌을 ‘마치 누군가 내 몸을 쥐어짜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통증 때문에 5분 이상 한쪽으로 누워 있지도 못하고, 한자리에 30분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몸부림친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환자 5~10%, 유전에 의해 발병

파킨슨병 환자들은 거리에 나서기를 꺼린다. 떨리는 손발을 보여주기 싫은 탓도 있지만, 자세가 불안정해 자주 넘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환자가 걷는 도중 방향을 바꾸려다가, 또는 누군가에게 부딪혀 힘없이 쓰러진다. 

그 외 목·허리·무릎 등이 구부정해지거나, 잠을 잘 못 자는 증세가 나타난다. 환자의 40%는 치매에 시달리며, 길을 걷다가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보행동결도 경험한다. 우울증은 2차 증세인데, 환자의 50%가 맞닥뜨린다. 발음 등에 문제가 생기는 언어 장애, 침 흘림, 배뇨 장애, 시각 장애, 체중 감소도 수많은 파킨슨병 환자가 호소하는 2차 증세이다.

더러 정신병적 증세를 보이는 환자도 있다. 귀신이나 지네, 혹은 벌레가 보인다(환시)고 소리치는가 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또 환청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도 있다. 그 와중에 보호자들은 온갖 풍상을 경험한다. 60대 환자의 한 보호자는 “치매 환자는 거동이라도 제대로 한다. 그러나 파킨슨병 환자는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먹지도 못한다. 거기에다 정신까지 오락가락하면 정말이지 환자를 포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안타깝게도 아직 파킨슨병은 정확한 발병 원인을 모른다. 단지, 뇌의 흑색질이라는 부위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생성되지 않아 발병한다는 사실만 밝혀졌다. 흑색질은 매우 중요한 부위이다. 기저핵(뇌의 운동 피질 및 여러 부위와 복잡하게 연결된 부위)에 도파민을 보내어 인체가 부드럽고 조화 있게 움직이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흑색질의 신경세포가 원인 불명으로 죽으면 도파민이 생성되지 않고, 그 여파로 운동 기능 장애가 일어난다. 의학자들이 왜 일부 사람의 신경세포만 사멸하는지 100년 넘게 연구해 왔지만, 그 해답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원인에 대한 추측은 무성하다. 바이러스 뇌염 감염설,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유전설, 신경독성물질 중독설 등이 그것이다.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역학 조사에서는 살충제 및 제초제 등에 노출되어 발병한다는 사실이 일부 밝혀졌다. 그러나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파킨슨병에서도 유전은 매우 중요한 발병 요소인데, 전체 환자의 5~10%가 유전으로 인해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다.

파킨슨병을 치료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환자들이 너무 늦게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정선주 교수가 내원 환자 3백58명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년 이상 증세를 방치하다가 병원을 찾은 환자가 1백50명 가까이 되었다. 환자 대부분은 파킨슨병의 초기 증세를 단순한 노화나 관절염 혹은 오십견으로 인식한다. 일부 ‘동네 병원’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국내 파킨슨병 전문가가 20명도 안 될 정도로 인지도가 낮다. 때문에 치매 등으로 알고 있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아와 걱정을 늘리는 환자가 많다’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미흡하지만, 희망은 있다:완치는 아니지만, 다행히 환자를 고통의 늪 속에서 헤어나게 하는 치료법들이 있다. 1960년대까지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했다. 의사들조차 손써볼 도리가 없어서 지레 치료를 포기했다. 그런데 1967년 기적이 일어났다. 레보도파(Levodopa)라는 치료제가 등장한 것이다. 레보도파는 뇌로 들어가서 도파민으로 전환하는 전구 물질. 그 물질을 주입받은 환자들은 거짓말처럼 정상적으로 활동했다. 이후 레보도파는 30여 년 동안 ‘가장 강력한 파킨슨병 치료제’로 군림했다.

파킨슨병 발병시키는 약물, 버젓이 유통

그러나 레보도파에게도 믿기지 않는 약점이 있었다. 5년 이상 계속 투여하면 50% 정도 환자에게서 이상운동증과 운동동요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상운동증은 온몸이 불규칙적으로 춤을 추듯 흔들리는 증세. 한 인터넷 카페(네이버 카페 ‘파킨슨 극복하기’)에 한 남성 환자(아이디 ‘다르마’)가 올린 수기에 따르면, 레보도파는 마치 건전지 같은 작용을 한다. 즉 약을 복용하면 몸이 거의 정상으로 작동하다가, 약효가 떨어지면 건전지가 다 닳은 인형처럼 온몸이 굳거나 얼어붙는 것이다. 때문에 환자들은 약을 복용한 ‘온(on) 타임’에 서둘러 세면·식사·목욕 같은 일들을 해치운다.

 
그 뒤 미라펙스나 씨렌스 같은 도파민 효능제가 나와 레보도파와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미라펙스 등은 적게 복용하고, 작용 시간이 길어 환자들을 좀더 오래 기분 좋게 만든다. 그러나 그 약들 역시 아직은 역부족이다. 신기한 사실은 환자마다 증세와 약 처방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열 명이면 열 명, 천 명이면 천 명이 모두 다 약을 다르게 복용한다. 어떤 환자는 하루에 서너 번 복용하는가 하면, 어떤 환자는 일고여덟 번 복용한다. 물론 용량도 제각각이다.

최근에 중증 환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치료법은 2000년에 국내에 도입된 ‘뇌 심부 자극술’이다. 이 시술은 약물로 조절하기 힘든 운동 합병증을 치료하고, 약 기운이 빠지며 나타나는 힘든 증세를 호전시키기 위해 시행한다. 시술 방법과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머리에 조그마한 구멍을 낸 뒤, 뇌의 중심부에 미세 전극을 흘려 넣어서 상태를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이것만은 제발:놀랍게도 파킨슨병은 우리가 흔히 먹는 약 때문에 발병할 수도 있다. 가장 위험한 약물은 소화제제로 널리 쓰이는 레보설피라이드와 메토클로프라마이드다. 이들 약물은 인체에 들어오면 도파민 수용체를 봉쇄한다. 서울아산병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레보설피라이드는 장운동 개선제 등 80여 가지 약품에 들어 있다. 메토클로프라마이드는 주로 ‘맥소롱’에 포함되어 있다.

지난 3년간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파킨슨병 환자 가운데, 약물로 인해 발병한 환자는 57명이었다. 병원을 찾지 않은 ‘잠재 환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지금도 위험은 계속되고 있다. 가정의학과나 내과에서 레보설피라이드 등을 여전히 처방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이 그 약물에 노출되면 더 치명적이다”라고 정교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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