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낙지가 몸부림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6.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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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선택] 음식/해신탕

 
나, 평소 보양식에 별 관심이 없다. 맛보다 건강을 챙기며 음식을 먹다니, 왠지 ‘꼰대’스러워서이다. 솔직히 오며 가며 골목길에 세워져 있는 식당 광고판에서 요리 이름을 보고 키득대기도 했다. ‘해신탕.’ 알았어, 네가 보양식인 것 알겠다고.    

그러니 내가 그 음식을 먹어 보겠다고 발심할 리 만무했다. 며칠 전 해물이 먹을 만한 집이 있다는 직장 동료의 손에 이끌려 한 음식점을 찾았다. 문제의 그 집이었다. 그 집 ‘요즘의 요리’가 바로 해신탕이었다. 해신탕뿐이었다. 

닭하고 해물 맛이 어울리려나? 의구심을 품으며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뚝배기에 재료가 담겨 나왔다. 푸짐한 육수 속에 닭 한 마리가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등에는 윤기가 잘잘 흐르는 부추 몇 가닥을 둘렀다. 육수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부재료가 나온다. 큼지막한 전복과 가리비, 빛깔 고운 새우. 끝이 아니었다. 오동통한 산 낙지가 발버둥치며 등장한다. 요동치다 탈출하는 것은 아닌지 가슴 졸이며 지켜보아야 하니 스릴도 있다. 

한약재 냄새가 나지만 그 향은 진하지 않고 해물의 시원한 맛과도 잘 어우러졌다. 닭에는 홍삼을 곁들였다. 낙지, 전복, 가리비 등 해물을 먼저 건져내어 겨자 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 마무리는 찹쌀 죽. 

다음날 10년 만에 한 선배와 만났다. 선배는 “이미 좋은 집을 예약해 놓았다. 잘 먹어보자”라며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또 그 집이었다. 행여 주인이 날 보고 ‘오늘도 오셨군요’ 할까봐 마음을 졸였다. 처음 먹어본 음식인 양 감탄을 거듭했다. 

해신탕을 이틀 연달아 먹으니 부작용이 있었다. 속이 든든해 저녁 때가 되어도 밥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한 끼는 좀 심하지 않은가(아침은 거른다). 밤 10시가 넘어 야식을 먹었다. 보양식을 먹어 양기는 보충했으나, 오밤중에 먹은 야식은 전부 살로 갔으리라. 

밖에서 음식을 잘 먹었다 싶으면 가족 얼굴이 어른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 집은 시내 중심가 사무실 타운에 있지만 가족 외식을 겨냥해 주말에도 음식을 판다. 그마저도 번거로우면 집에서 편안히 재료를 받아 조리할 수도 있다. 육수는 육수대로 끓여내고, 닭은 닭대로 익혀서, 생생한 해물은 날것 그대로 포장해 배달한다. 2인분에 3만원, 3인분에 4만원이니 음식 값도 ‘착하다’. 배달시키면 약간의 택배비가 추가된다. 

서울 서대문 부근에 있는 그 집의 이름은 동해별관. 재료는 포항에 사는 그 집 사장님의 어머니가 그날그날 비행기로 부쳐주신다고 한다. 그럼, 동해가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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