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상황 닥쳐도 승계전선은 이상무?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4.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가들 “오너 부자 경영권 상실 가능성 낮아”
 
현대·기아차그룹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어디까지 치달을까. 이 사건의 종착지는 현대·기아차그룹뿐만 아니라 세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벌써부터 구구한 억측이 나돌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서부터 검찰이 비자금 조성과 집행 과정에 개입한 단서를 잡고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함께 사법 처리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과연 검찰 수사로 재벌 총수가 경영권을 잃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날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의 단서는 엉뚱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곳은 한 회사의 경영 실적에서부터 지배 구조·업종 전망·성장 잠재력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그 회사의 총체적 역량을 주가로 표현하는 주식 시장이다.

검찰 수사가 현대·기아차그룹 주요 계열사를 상대로 전방위로 진행되는 와중이건만 이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는 오르고 있다. 그룹 대표 회사인 현대차 주가는 4월6일 종가 기준 8만7천2백원으로 검찰이 글로비스를 압수 수색하기 전날인 3월24일 8만1천4백원보다 7.13%나 올랐다. 압수 수색이 벌어진 다음날 8만원 선이 무너졌다가 곧바로 10.97%나 수직 상승했다.

기아차 주가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3월24일 주가가 2만4백원이었으나 4월5일에는 2만6백50원으로 오히려 올랐다. 검찰 수사의 칼끝이 총수 일가를 향하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2만원 선을 위협받고는 있다. 하지만 2만원을 밑돌던 3월 말과 달리 4월 들어 줄곧 2만원 지지선이 작용하고 있다.

검찰이 압수 수색했던 글로비스와 현대오토넷도 바로 바닥을 치고 급반등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과거 삼성그룹이나 두산그룹처럼 총수 일가가 검찰 수상 대상에 오르면 계열사 주가가 곤두박질치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국내 주요 증권사 자동차 담당 분석가들도 한결같이 현대차에 대해 매수 의견을 내고 목표 주가도 높이고 있다. 굿모닝증권 용대인 애널리스트는 10만3천원을 제시했고 동양증권 강상민 애널리스트는 12만원까지 목표주가를 올렸다.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선임 분석가는 “외국인 투자자는 경영 지배구조의 후진성을 감안하고 국내 재벌 그룹의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다. 이번 검찰 수사가 현대·기아차그룹의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경영투명성을 높이리라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현대차에 대한 외국인 지분이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주가는 오히려 상승…외국인들 매수 계속

대부분의 주식 시장 전문가들은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리라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정몽구 회장 일가가 경영권을 잃는 사태까지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검찰 수사가 정의선 사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회장이 갖고 있는 현대차 지분이 5.2%밖에 되지 않아 이번 검찰 수사로 ‘그가 도덕성에 타격을 입고 회사가 위기에 빠지면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회장은 현대차의 최대 주주인 현대모비스 지분 7.9%를 갖고 있다. 또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 업체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을 15.03% 보유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정회장이 현대차에 입성하기 전부터 그가 자동차 사업의 전진기지로 활용했던 현대정공의 후신이다. 정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6.44%를 보유한 현대제철(INI스틸 후신)에도 5.29%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순환출자구조를 감안하면,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가운데 한곳만 접수하면 그룹 전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 38.67%를 갖고 있고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8.15%를 보유하고 있다(?쪽 도표 참조). 정회장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개인 최대 주주 자격으로 기아차를 포함한 그룹 전체 계열사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정회장이 주력 계열사 지분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은 없다.

정회장이 사법 처리된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경영에서 물러날 수는 있으나 언젠가는 경영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물론 정회장 일가가 검찰 수사의 예봉을 피하고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형제 사이 경영권 다툼으로 빚어진 비자금 폭로로 삼형제가 동시에 검찰 수사를 받았고 법정에 서야 했던 두산그룹 오너 일가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하지만 박용성·박용만 형제가 앞으로 경영에 복귀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허황되어 보이는 것처럼 정회장 일가가 영원히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리라고 보는 것 또한 현실성이 낮다.

또 정사장으로의 후계 승계는 물건너 간 것일까. 세간에는 정사장이 비자금 조성 창구로 손꼽히는 글로비스를 포함한 계열사 주식을 사회에 헌납한다는 관측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이 곧바로 주식 헌납을 부정하는 발표를 하기는 했다. 정사장이 소유한 글로비스 주식 평가액은 8천5백억원이고 엠코 지분 평가액은 6백25억원(?쪽 도표 참조)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엠코도 상장시켜 정사장에게 큰 시세 차익을 거두게 할 계획이었다. 

주식 평가차익액 사회 환원 검토설도

정사장은 글로비스·현대오토넷처럼 비상장 업체를 상장시키는 방법으로 만든 종자돈으로 기아차 지분 1.99%를 인수했다. 아버지가 보유하지 않은 기아차 지분을 아들이 집중적으로 매입한 것이다. 정사장이 기아차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기아차 지분을 10% 언저리까지 늘려야 한다. 기아차 지분 1%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대략 7백억원이 필요하다. 정사장이 기아차 지분을 10%까지 늘리기 위해서는 6천억~1조 원이 소요될 것이다.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정사장은 올해 5월 보호예수가 해제되는 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고 엠코를 상장시켜 마련한 자금으로 기아차 지분을 집중적으로 늘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그럴듯해 보인다. 

계열사 지분을 매각한 자금으로 정사장이 기아차 지분을 집중 매수한다는 계획은 이번 검찰 수사로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 수사 범위가 후계 승계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행위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도 이 계획에 급제동을 걸고 있다. 참여연대는 ‘글로비스는 지배 주주가 회사의 현재 또는 장래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유망한 사업 기회를 편취하고 이를 편법적인 경영권 상속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하며 편법 후계 승계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정의선 사장의 그룹 승계가 불가능해진 것일까?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선임 분석가는 “정의선 사장의 후계 승계 구도에 아무 지장이 없다”라고 말했다. 정사장이 설사 글로비스·현대오토넷·엠코 주식을 모두 사회에 헌납한다고 하더라도 경영권 승계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주요 계열사 지분을 상속받으면 정사장이 최대 주주 자격으로 주력 계열사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데 문제가 없다. 다만 지분을 상속받을 때 거액의 상속세를 내야하는 것이 골칫거리다. 하지만 전·후방 효과가 큰 자동차 업종 속성상 정사장에게 거액의 시세차익이 가능한 내부거래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정사장이 보유한 광고 회사 이노션의 지분(40%)과 부품 업체 오토에버시스템스 지분(20%)의 경우 상장을 거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바뀔 수 있다.

현대차는 비자금 사건으로 불거진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갖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그룹 구조조정본부를 축소·개편하는 지배구조개선 작업과 함께 사회에 8천억원을 내놓은 것처럼, 전문 경영진을 전면에 내세우고 글로비스나 현대오토넷 상장으로 얻은 평가차익 수천억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정의선 사장이 사법 처리되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처럼 한동안 전문경영인 체제로 그룹을 이끌다가 출감 이후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방안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이 애타게 찾고 있다는 수습 방안이라는 것이 검찰 수사의 종속변수라는 사실이다.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수습 방안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검찰 수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니 정회장 부자로서는 최대 경영 위기를 타개할 수습 방안이 검토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