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중수교 ‘여유만만’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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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관계 준수교 상태…남북관계 등 여건 미성숙 “서둘 이유 없다”


  요즘 외무부 관계자들은 북방외교의 마지막 대어인 중국과의 수교가 늦어지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기색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대사급 수교는 공식문서에 서명하는 것에 불과하며 더 중요한 것은 그에 앞선 실질관계의 진전”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양국의 관계가 경제적으로는 교역량(올해 90억달러 추정)이 날로 늘어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준외교기능의 무역대표부까지 교환한 준수교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북경에서 열릴 제47차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 총회(4월14~23일)에 참석코자 11일 북경으로 떠나는 李相玉 외무장관이 양국의 준수교 상황에 어떤 변화를 꾀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태 경제사회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참석하는 이장관은9박10일간의 방중 기간 동안 주최국 중국의 錢其琛 외교부장과 별도 일정이 잡혀있어 이 자리에서 수교문제도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이장관이 다른 거물급 인사도 만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외무부 관계자들은 중국과의 수교에 대해 “이미 대세는 기울었고 다만 시기만 남았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시기는 빠르면 상반기(홍콩의 중립신문 <明報> 2월 20일자), 늦어도 93년까지(홍콩의 시사월간 《鏡報》 91년 6월7일자) 등 엇갈린 보도가 나오고 있으나 외무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한·중수교까지의 거리를 1백m로 보면 이제 겨우 10m 정도 왔다. 그같은 언론의 보도는 어디까지나 시험풍선일 뿐이다”라며 일축했다.

  시기문제는 △중국 내부 사정 △북·미 및 북·일 관계개선 △남북 관계개선 등과 중국 내부 사정은 최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나타났듯 보수파들의 입지가 크게 좁아지고 있어 한·중수교에 청신호가 커졌다. 陳雲 당중앙위 고문이 중심이 된 보수파는 그간 북한과의 사회주의 연대를 내세워 한국과의 수교를 반대해왔다. 그 대신 북한의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가 북한의 핵개발 시비로 교착상태에 빠진 점, 남북관계도 핵문제로 당분간 극적인 돌파구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은 단시일 내의 한·중수교 전망을 흐리게 한다.

수교 후 대만과 단교 가능성
  외교안보연구원 朴斗福 교수는 “중국은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한과의 일방적 수교로 북한이 고립돼 한반도에 불안요인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중수교가 이뤄질 경우 중화민국(대만)과의 관계 재정립도 관심사이다. 정부는 미국처럼 대만과 단교하느냐 아니면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기존의 외교관계는 유지하되 대사급 관계를 무역대표부 수준으로 격하하느냐 하는 두가지 방법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외무부 당국자가 “경제적 실리와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 중국과 대만 중 어느 나라가 우리에게 더 실익이 되는가”라고 반문하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측은 내심 미국식으로 기운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외무부의 정책자문역을 맡고 있는 서강대 李相禹 교수는 “이번 기회에 노대통령이 타국과의 관계를 현실로 인정한다는 ‘노독트린’을 선언해 중국과 대만에 대한 이중외교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주목할 것은 대만정부의 대북한 유화움직임이다. 대만정부는 지난해 관계법을 고쳐 북한을 간접무역국에서 직접무역국으로 지정해 자국 기업의 대북한 진출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주한 대만대사관측은 부인하고 있으나 대만정부가 북한에 대해 1백억달러의 경제원조를 한다는 소문도 끈질기게 나돌고 있다. 대만의 이같은 조처가 한·중수교를 겨냥한 ‘북한카드’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시사하는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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