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시장 재편, 술맛이 변한다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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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道酒制 폐지, 진로 ‘전국 지배’ 확실…도수자율화 등으로 질 높아질 듯
 소주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자유경쟁으로 경쟁력을 키우자는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과 1조원으로까지 평가되는 소주시장을 둘러싼 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월 중장기 산업구조조정에 착수한 이래 정부는 그간 주류를 비롯하여 의약품 해운 관광 정보통신 금융 등 18개 산업에 대한 규제완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주류에 대해서는 이미 89년말부터 도매상 면허개방, 용기규격제한 해제 등의 조처가 취해져왔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제도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취지하에 정부는 지난 12월19일 △소주용 酒精배정제도 폐지 △自道생산소주 의무구입제 폐지 △주류도매장 판매구역 폐지 △주류제조면허 개방 △알콜도수 자율화 △발효제제조․판매 면허제도 폐지 △혼합식소주 제조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주류산업규제완화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그리고 항목별로 1~2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적응력을 키운 뒤 관계법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이번 계획 가운데 제조업체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주정배정제 및 自道酒制의 폐지인 것 같다. 이것들은 제조면허 개방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주시장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현행 酒稅法에는 국세청장이 연초에 전년도 실적에 따라 업체별로 주정을 배정하게 돼 있다. 밀주제조를 막아 과세물량을 확보하고 원료양곡(시장규모 2천억원) 재배농가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 때문에 ‘진로’의 경우 술을 더 만들고 싶어도 만들지 못하고, 반대로 군소업체는 배정된 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계속돼왔다. 이 제한이 92년까지 단계적으로 없어지면 앞으로 각 회사는 원하는 만큼의 주정을 사들여 생산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또 현재 43%에 달하는 진로의 시장지배가 가속화돼 93년에는 70%에 이를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한편 국세청은 90년부터 시험적으로 일정량의 주정을 각 회사에 균등하게 추가 공급해본 결과 지방 군소업체의 경쟁력 제고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면서 올해와 내년에 이를 확대 시행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방업체들은 기본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추가배정량의 절반이 전년도 실적에 따라 배정되기 때문에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혼합식․증류식 제조 허용
 주정공판제도에 대해서도 여러 업체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진로 일산 서영 등 13개 주정회사에서 생산된 주정은 세우회(전직 세무공무원 모임)가 83% 지분을 갖고 있는 대한주정판매(주)를 통해 전년도 판매실적에 따라 10개 소주회사에 독점판매 되고 있다. 중앙대 鄭憲培 교수(경영학)는 “이것은 주정업계 질서가 문란하던 시절에 나온 제도로서 소주회사의 주정 선택권을 가로막고 유통단계만 하나 추가할 뿐 더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요지의 연구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자도주제는 주류도매상이 구매량 가운데 자기 도에서 생산된 소주를 40% 이상 구매하도록 한 제도로 지난 76년부터 영세업체 보호를 위해 시행돼왔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해당업체로 하여금 정부의 보호 아래 안주케 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또 소비자의 술 선택권을 제약하고 특정회사 제품 끼워팔기, 배짱거래 등을 조장한 측면이 있었다. 현재 시장점유율 7% 미만인 5개 업체(보배 경월 선양 충북 한일)가 이 혜택을 보고 있는데 91년말 자도주제가 폐지되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근대적 주세행정은 1908년 주세법 공포로부터 시작됐다. 일제는 주세확대를 위해 ‘주세령’을 공포하여 밀주제조를 엄격히 통제했고, 따라서 ‘술도가집’은 부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부터 66년까지는 주류제조면허가 자율화된 상태여서 영세 주조회사가 난립했다. 67년부터 정부는 통합대형화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66년 4백 60개이던 소주제조장은 75년 15개, 82년에는 다시 10개로 정리됐다. 삼원 백화 만보 광능 전북소주 등이 모두 이때 사라졌다. 24년간 단 하나의 업체도 새로 참여할 수 없었고 제조면허에는 높은 프리미엄이 붙었다.

 이번 계획 가운데 기존의 희석식 소주에 증류식 소주나 곡물주정을 첨가한 혼합식 소주 제조가 허용되고 알콜도수도 자율화된 다는 것은 애주가들에게 귀가 번쩍 띄는 소식이 될 것이다. 원가상승․생산라인증설로 가격은 다소 오르겠지만 소비자들은 올 연말쯤 다양하고 질높은 소주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기업에 면허가 개방될 경우 외국산보다 3~8배 비싼 국산원료 사용을 강제하기 힘들어 원료 재배농가가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진로의 맥주, 동양의 소주시장 참여
 이번 계획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양분되고 있다. 진로는 별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지만 지방사들은 생존을 위한 묘안을 짜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지방업체 직원은 한마디로 “진로는 오케이, 우리는 노케이”라며 이번 계획이 재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조면허가 열리면 진로의 맥주시장 참여, 동양맥주(OB)의 소주시장 참여는 필연적이라는 예상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업체의 독주로 ‘소주전쟁’은 이미 승부가 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결국은 진로와 동양의 힘겨루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몇몇 대기업이 소주시장에 신규로 진출할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도 내놓고 있지만 해당 기업에서는 모두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제일제당 홍보실의 한 직원은 삼성 참여설에 대해 “아직 검토도 한 바 없다”며 펄쩍 뛰었고 롯데 그룹 역시 소문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지난 72년 정치적 의혹을 남기고 도산했던 목포의 삼학소주는 재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로를 제외한 지방 주조회사간의 제휴도 예상되고 있지만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정부에 대해 ‘약자의 설움’을 한목소리로 호소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방색이 강한 소주 시장의 특성상 ‘상호 불가침조약’ 이외의 연합이나 제휴는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의 시장재편보다는 당분간 주종의 다양화․고급화, 마케팅 개선 등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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