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로 이겨야 할 개방압력
  • 심재훈(<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 서울지국장) ()
  • 승인 199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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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은 시장개방과 우루과이라운드를 놓고 온나라가 시끄러웠다. 올해 역시 같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시장개방에 대처해온 우리의 자세를 점검하면서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자유무역을 주제로 한 ‘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 속에서 무역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계 13대 통상국으로 성장했다. 또 국민총생산은 90년도에 2천3백억달러로 일본 중국 인도에 이어 아시아에서 4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다. 그러나 국제경제 속에서 우리의 위상이 이같이 높아진 데 비해 우리의 국제감각은 성숙하지 못했다.

 작년에 시장개방문제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웠지만 무엇하나 신통한 해결책을 세우지 못한 것은 우리가 20년 전의 감각을 가지고 오늘의 세계경제질서에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완제품 자동차 ‘머큐리세이블’에 대한 이른바 ‘행정지도’가 가장 좋은 예다. 미국은 한국정부가 행정지도를 통해 수입억제를 종용했다고 항의했고 한국정부는 수입처인 기아자동차가 국민의 비판을 의식하여 스스로 수입판매를 자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 상공부 관리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행정지도를 한 이유는 국민감정과 국가이익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바보와 같은 솔직성을 보였다.

 또 작년에 서울에 왔던 미국 모스베커 상무장관은 鄭世永 현대자동차 사장에게 “왜 현대백화점에 진열됐던 미국제 상품이 사라졌는가”라고 물었는데 “현대백화점 매장 수리 때문”이라는 것이 정사장의 대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대사관이 백화점으로 가 확인해보니 매장수리가 아니고 과소비추방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 미국인에 따르면 모스베커 장관은 “한국의 조야는 믿을 수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한다.

개방압력 불러들이고 딴전 피우는 재벌
 한국관리들이 얼마나 국제감각에 무딘지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예는 재작년 한미통신관계협의에서의 비밀녹음 소동이다. 협상테이블 뒤켠 ‘커튼’ 뒤에서 몰래 녹음을 하다가 화장실에 가던 미국 대표에게 들켜 망신당한 사건이다. 아마 영어로 진행되는 회담내용을 후에 정확하게 참조하기 위해 녹음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공개적으로 녹음하는 것이 옳지 구차하게 비밀녹음을 하다가 ‘스파이’로 오해받을 이유가 무엇인가.

 더욱 한심한 것은 재벌이다. 자동차 선박 전자 등 중공업 제품을 소나기식으로 수출하여 보호무역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인 재벌은 그 이익금을 기술개발에 투자하여 더욱 수준 높은 고급상품을 만들려 하지 않고 땅투기 따위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국내경제가 어지러워지고 국제적으로는 시장개방압력이 거세지는 바람에 중소기업은 물론 농민과 일반국민만 희생당했다.

 일부 소비자 단체와 언론의 대응도 문제이다. ‘내가 붙인 양담배 불 민족경제 구멍낸다’, ‘시장개방이 되면 외국인 교사들이 몰려와 외국어로 우리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사태까지 온다’느니 하는 다분히 과장된 슬로건을 휘둘러 대는 것은 제3세계에 평화봉사단까지 파견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대안없는 구호의 남발
 언론도 냉철하게 사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보도와 논평을 해왔다. 미국의 광고시장 개방요구나 과소비 추방운동 비난에 대해 우리 신문들이 ‘미국이 드디어 내정간섭까지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은 독자에게 진실을 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수입개방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은 해마다 늘고 있다. 가장 예민한 농산물 수입만 하더라도 87년 52억달러, 88년 56억달러, 89년 60억달러로 세계5위의 농산물 수입국이다. 왜 이처럼 해마다 더 많은 양을 수입하면서도 우리는 국제적으로 온갖 질타를 받고 폐쇄적 시장의 대표적 존재로 지목받는가. 그것은 우리가 우리 경제규모에 걸맞는 국제감각을 익히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문제를 문명적 수준에서 설명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째서 똑같이 3천cc인 그렌저는 과소비가 아니고 세이블은 과소비인지를 국제사회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과소비 추방운동만 하더라도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며 국수주의적 흥분에 빠진다 해서 세계경제 속에서 우리의 책임과 역할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과소비 억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운동이 극단주의나 획일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세계의 고급품을 써보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고급품을 만들어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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