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알려야 대권 길 열린다”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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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동 총리 인지도 높이기 국정 공부 전력 카리스마 부족 등 걸림돌

이한동 총리가 지난 8월28일 여의도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자민련 의원들과 만났다. 바로 전날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주자들 사이에서 제기된 자민련과의 결별론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그가 여의도에 나타난 사실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총리가 정치와 관련된 일정 특히 자민련 총재로서의 행보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대신 총리 역할을 집중 홍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총리 취임 100일일 되는 8월 30일을 전후해 가진 각종 인터뷰에서도 이총리는 정치나 대권에 관한 얘기는 아예 입에 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용꿈을 접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이총리가 최대한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차기 대권 가도에 별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당장 자민련은 원내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약체 정당이다. 게다가 이총리는 자민련의 얼굴 마담용 총재일 뿐 소유주가 아니다. 실권도 없으면서 인기 없는 얼굴마담 노릇만 하는 것은 대권 주자를 노리는 그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총리 진영의 계산이다.

반면 총리 직은 대권 주자로서 덕목을 쌓기에 최적의 자리이다. 박태준 총리가 사퇴하고 후임자가 거론되자마자 이한동 당시 자민련 총재는 매우 강력하게 총리가 되고 싶다는 뜻을 DJP에게 전했다.

폭탄주 끊고 일요일에도 집무
그가 총리 직에 매달린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앞서 말했듯이 자민련과 거리를 둘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면 두 번 째는 그의 최대 취약 점으로 꼽히는 대중 인지도 높이기 세 번째가 국정 경험을 통한 대통령 수업이다. 이는 모두 차기 대권 도전을 위한 선행 조건이다.

이 가운데서도 이총리가 급선무로 생각한 점은 바로 얼굴 알리기였다. 그의 한 측근은 HD(한동의 영문 머리 글자)의 최대 약점은 대중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총리만큼 좋은 자리가 없다. 언론에 자연스레 소개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라고 총리 직을 갈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총리는 그간의 화려했던 당 정 경력에 비해 국민에게 너무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인지도가 낮으니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높게 나올 리 만무하다. 

총리가 된 후 그는 더 효과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위해 크고 작은 현장 방문 행사를 계획했다. 하지만 현대 사태와 의료계 파업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져 몸을 빼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틈틈이 현장을 찾았는데 의료계 파업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위로 방문 강원도 산불 화재 현장과 잼버리 대회 참석 남북 이산가족 상봉현장 방문 등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이총리의 민생현장 방문은 한층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이총리측은 인사 청문회 역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평한다. 이총리 본인은 처음에만 해도 청문회를 상당히 부담스럽게 여기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측근들이 오히려 대선 후보 검증의 예선전으로 삼자면서 대범하게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그의한 측근은 말 바꾸기나 위장 전입 등 시빗 거리가 나왔지만 그보다는 이총리의 얼굴을 알리고 공개 검증 기회를 가진 것이 더 큰 이득이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인지도에 대한 이총리 진영의 열망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인지도와 함께 이총리측의 또 다른 노림수는 이 기회에 국정 전반에 대한 식견을 높이는 것이다.

민주당 잠재적 대권 주자 가운데 총리를 지낸 고 건 서울시장을 빼고는 행정 경험에서 이총리에 견줄 사람이 거의 없다. 이는 민주당 후보와 본선에서 맞붙을 이회장 한나라당 총재도 마찬가지다. 이총리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국정을 다 꿰둟을 수 있는 총리 자리에 있을 때 이를 확실한 대권의 디딤돌로 삼아 보자고 계산하고 있는 셈이다.

국정 공부에 대한 이총리의 열정은 대단하다. 두주불사였던 그가 술을 끊다시피 했다. 대신 일요일도 마다 않고 집무실에 나온다.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며 최근 3주 동안 일요일예 쉬었지만 필요한 일이 있으면 수시로 집무실을 들락거린다.

취약한 핵심 참모진도 단점
휴가도 반납한 이총리가 국정 공부를 하는 스타일은 독특하다. 매일 저녁 가판 신문에 나오는 기사를 읽은 후 다음날 아침 9시 간부회의에서 난상 토론을 한다. 참석자는 국무조정실장 총괄조정관 경제조정관 사회문화조정관 비서실장 공보수석 예를 들어 신도시 난개발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면 신도시와 관련된 주택 도로 환경 문제 등으로 주제를 확대해 관련 정책 전체의 그림을 그려 보는 식이다. 이 회의의 고정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은 그에 대해 상황판단 능력이 남다르다라고 평가한다. 그는 또 각 부처에서 올라오는 보고 자료가 총리에게 아주 유익한 참고서가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유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선 후보가 되기에는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다. 우선 본인의 경쟁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총리 참모들은 총리가 된 후에도 기대했던 것만큼 인지도가 오르지 않자 내심 초조해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 원인을 카리스마 부족에서 찾는다. 평소 온건 합리주의를 표명해온 그의 정치 행보는 정치권에서 도리어 무소신과 무색무취라는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게다가 청문회를 거치면서 양지바른 곳만 쫓아다닌 해바라기 정치인이라는 비난까지 보태진 형편이다.

핵심참모진 부족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총리실에서 그의 식구로 꼽을 만한 사람은 의전비서관과 민정비서실 과장 수행비서가 고작이다. 그의 한 참모는 기존 공무원들의 자리를 최대한 유지하고 총리실 직원들의 보좌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총리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핵심 참모가 부족하면 때때로 치명적인 실수를 가져올 수 있다. 한 예로 얼마 전 이총리는 청와대 비서진과 해서는 안될 골프 약속을 했다. 이 때는 의료계파업이 극에 달하는 등 시기가 안 좋았다. 그런데도 주변에 말린 사람이 없었다. 결국 청와대측 사정으로 골프 약속이 취소되었지만 만약 그가 골프장에 나갔다면 JP 못지 않게 언론의 집중 화상을 받았을 것이 뻔하다.

사실 그의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자민련으로 옮길 때도 그는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회창 총재에 대한 한나라당 비주류측의 반감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도 이를 결집해내지 못하고 결국 혼자 탈당한 것 민주당의 한 실세 의원은 이총리가 자민련으로 옮길 때 최소한 몇 명이라도 그를 따랐다면 지금 이총리의 위상이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총리가 용꿈을 실현하는 데 최대 난관은 따로 있다. 과연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수 있겠느냐는 정치권 안팎의 의구심이다. 일단 그가 민주당 차기 주자군으로 편입하는 경로는  두 갈래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합당한 후 DJP가공동으로 미는 대권 자가 되는 것과 합당이 어려울 경우 독자적으로 민주당에 입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차기 주자군에 오르는 것과 마지막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동교동계 한 의원은 경기 출신인 데다 당 정 경력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라며 이총리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를테면 벌써부터 민주당 내부에서 쟁점거리로 떠오르기 시작한 이인제 불가론이나 호남 후보 배제론이 갈수록 힘을 얻을 경우 그가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말은 그가 대권 가도에서 독립 변수가 아닌 종속 변수라는 여운을 남긴다. 사실 이총리는 늘 스스로 상황을 만들기보다는 여건이 성숙 하기를 기다렸다가 편승하는 수동적인 정치를 해 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가 요즘 담화 총리 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까지 김대중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나 얼마 전 자민련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JP를 향해 <용비어천가>를 부른 것이 모두 수동적 정치 형태의 단편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총리 직을 대권의 징검다리로 삼으려는 이총리에게는 수동형 정치인의 이미지를 어떻게 벗어던지고 카리스마를 확보하느냐가 최우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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