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치워” “못 치워”
  • 부산 박병출 주재기자 ()
  • 승인 200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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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중리산 매설 M14 제거 놓고 국방부와 기싸움

<시사저널>은 지난 8월17일자에서 경의선 복원과 관련한 휴전선 지역 지뢰를 다루면서 후방 지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부산 영도구 중리산 역시 <시사저널>이 지적한 지역 중의 한 곳이다. 가장 후방에 속한 부산 그것도 본토에서 떨어진 섬까지 지뢰 위험 지대라는 사실은 후방 지뢰가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적인 문제임을 환기한다. 특히 중리산에 매설된 지뢰의 실상과 이를 제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기울이는 노력은 후방 지뢰 문제의 심각성을 집약해 보여 준다.

일명 발목 지뢰라고 불리는 M14 대인 지뢰가 매설된 중리산은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있다. 해발 150m 야산인 이 일대는 부산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유원지의 하나인 태종대 외곽이다. 산 아래 감지 마을 역시 수려한 몽돌해안과 주변 경관 덕분에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하루 수천명씩 인파가 몰리는 유원지이다. 횟집이 밀집한 데다 낚시터로도 유명해 평소에도 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미군이 약 2만개 매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중리산 지뢰 매설 얘기는 소문에 불과했다. 1956년 미군 호크 미사일 부대가 중리산 정상에 기지를 건설하면서 주변에 M14 약 2만개를 매설했다는 이야기가 부대에 근무한 군무원이나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을 뿐 정확한 매설 위치나 수량은 확인되지 않았다. 산 정상에 주둔했던 미군부대가 1980년 이전한 후 지금은 우리 군의 향토 사단 예비군 대대가 들어섰지만 매설 지뢰에 대한 인계 인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근 감지마을 주민은 중리산에 접근하기를 꺼렸지만 피서객이나 일반 시민은 지뢰 매설 사실을 모른 채 산 중턱의 옛 작전도로를 산책로로 이용해 왔다. 나물을 캐는 사람이나 낚시꾼도 무시로 지뢰밭을 드나들었다.

지뢰 매설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된 것은 1987년 10월 뜻밖의 사건을 통해서였다. 산불을 진화하는 도중에 지뢰가 폭발한 것이다. 영도소방서 이 아무개 소방관(48 소방장 현 부산 중구 소방서 근무)은 지뢰 매설 사실을 모른 채 화재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왼쪽 발목을 잃었다. 그러나 군사 정부 시절이어서 사건은 확대되지 않았다. 이 소방관은 공상 처리되었을 뿐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1996년 2월 중리산에는 두 번째 산불이 발생해 태종대 주변 경관을 망쳐 놓았다. 불속에서 지뢰가 계속 폭발하는 바람에 조기 진화에 나서지 못해 4ha나 되는 숲을 태워버린 것이다. 영도구청은 군부대에 지뢰 관리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김일주 당시 영도구청 녹지계장(현 부산시 시설관리공단 과장)이 마침 흥미있는 언론 보도를 접했다. 재미 교포 이 아무개씨가 해운대 주민 등산로 주변에 지뢰가 매설된 사실을 알고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폭발물 처리 전문회사를 통해 이를 제거해 주겠다고 청와대에 제안했다는 내용이었다. 영도구청의 지뢰 대책은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영도구청은 이씨와 여러 차례 접촉해 렉스폼(lexfoam)부문식 포말 폭파 방식 이라는 지뢰 제거 기술을 소개받았다. 이 방식은지뢰 매설 지역에 렉스폼 포말을 5cm 두께로 분무한 후 지뢰가 지하에서 자동 폭발하도록 만드는 첨단 지뢰 제거 기술로 알려졌다.

영도구청은 예비군 대대 향토사단 국방부 육군본부 등에 이를 소개하면서 지뢰 제거를 요청했다. 영도구의회 역시 건의문을 채택해 국방부의 성의 있는 대응을 촉구했는데 결국 부산시까지 나선 후에야 답변이 나와다. 군 당국은 부산시와 영도구에 M14 지뢰는 탐지가 되지않고 현재로서는 제거 방법도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회신을 보냈다. 렉스폼 폭파 방식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숲은 오랫동안 방치 되었다. 영도구청은 산림 복구 계획을 수립해 시공업체까지 선정했으나 지뢰 밭에 나무를 심을 방법이 없어 공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군도 보유하지 못한 최신 군사 장비가 동원되었다. 영도구청이 미국에서 구입한 지뢰 폭발 보호용 신발이 그것이다. 영도구청은 1996년11월 지뢰 안전 신발 네 켤레를 2백만원에 구입해 구청 간부들과 구의회 의원 조경업체 관계자 경찰 등을 참석시켜 설명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지뢰 안전 신발 사용 및 지뢰 제거대책 설명회 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전 신발을 신고 렉스폼 폭파 방식으로 지뢰 제거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웰코 사가 개발한 지뢰 안전 신발은 고무 외피 안에 벌집 구조의 금속제 보호막을 여러 겹 넣은 것으로 보스니아 등에서 미국 육군이 지뢰 탐지와 제거 작업에 사용한 장비이다. 이날 행사에는 군 관계자들도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영도구청은 이후로도 지뢰 제거를 계속 건의하면서 미국의 또 다른 지뢰 제거 전문 회사와도 접촉했다. 1997년11월 중리산 지뢰 매설 현장을 답사한 IT(international technology)사 기술고문 짐 패스트로닉 씨는 지뢰 매설 지역이 경사가 심한 데다 수목과 암석이 많아 작업 여건은 까다롭지만 탐지와 제거가 가능한 수준이다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 날 답사에 참가한 국방부 관계자의 말은 국방부의 입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관계자는 영도구청측에 지뢰의 위험은 인식하고 있지만 제거 비용이 10~20억 원으로 추산되는 데다 중리산이 선례가 되어 다른 지뢰 지역의 민원이 잇따를 수 있으므로 당장 조처하기는 어렵다. 예산을 확보할 때까지 지뢰 제거 작업 계획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뢰 제거 비용과 IT사의 제거 능력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할 문제하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적합한 기술만 찾아내면 국방부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영도구청의 처지에서는 서운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1998년 지뢰 제거 작업이 착수할 방침이었던 영도구청은 일단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구청 그린피스식 대응 전략으로 맞서
영도구로서는 중리산 지뢰 제거는 자치 경영의 사활이 걸린 숙원 사업이다. 섬 지역의 특성상 기업체들이 입주를 꺼려 세수 확보가 쉽지 않다. 행정구역 대부분이 산이나 해안으로 구성되어 용지난도 심각한 형편이다. 그래서 태종대 등 바닷가 절경을 활용한 관광 수입이 주민 소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영도구 전체 산림의 4분의1에 달하는 중리산에 태종대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을 조성해 태종대~중리산~봉래산 자연공원으로 연결되는 해양 관광벨트를 구축한다는 것이 영도 구의 복안이다.

국방부가 중리산 지뢰 제거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서너 차례에 불과하다. 당초 현재 우리 군의 장비나 기술로는 M14 대인 지뢰를 탐지할 수 없고 제거 방법도 없다는 입장에서 IT사의 현장 답사 후에는 비용이 문제 신중히 검토 등 진일보하는 듯했으나 근래 들어서는 태도를 바꾸어 당초 입장보다 후퇴했다. 국방부는 영도구청에 보낸 한 문서에서 중리산 지뢰는 군용지 내의 군사 목적(군사시설 경계 해안 침투 방어)으로 매설되어야 하며 앞으로도 군사작전 목적상 제거가 곤란하다고 밝혔다.

중리산 지뢰 제거 계획이 벽에 부딪히자 영도구청은 최근 주목할 만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 이른바 그린피스(Green peace) 식 대응이다. 지뢰지대 철책을 따라 도는 산책로를 정비한 것이 첫 번째 야심작이다.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해 군당국에 심리적인 부담을 주겠다는 의도이다. 지뢰지대 입구의 철망 밖에는 사슴 목장을 조성했다. 관광객들은 지뢰지대임을 알리는 살벌한 경고판 코앞에서 평화롭게 뛰노는 꽃사슴 무리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국방부와 영도구청간 기세 싸움의 결말은 전국의 다른 후방 지뢰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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