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통관 의혹 싸인 `납꽃게 진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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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부냐, 수입업자냐’ 진범 놓고 설왕설래

지난 8월 26일 납이 검출된 중국산 냉동 꽃게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국립수산물검사소 인천지소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전날 환경운동연합이 김창남 검사소장과 문철수 인천지소장에 대한 고발장을 서울지검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빗발치는 언론사 취재 전화를 받아내랴, 직접 찾아와 추궁하는 국정원 지역 책임자에게 상황 설명하랴, 인천지소 직원들은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인천지소 직원들이 납이 든 냉동 꽃게를 검사하는 현장에 동행해 검사 과정을 살펴보았다. 납이 든 꽃게를 발견하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직원이 금속탐지기를 박스에 갖다 대자 곧바로 첫 박스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박스를 풀고 한 마리씩 금속탐지기에 대서 확인한 후, 신호가 울리는 꽃게의 배를 갈라보았다. 지름8mm 정도에 길이가 3cm 정도 되는 길쭉한 납이 4개 나왔다. 막대 모양의 납을 부러뜨려 넣은 것으로 보였다. 납이 든 꽃게는 심하게 부패해 악취가 진동했다. 납이 꽂혀 있었던 주변은 특히 부패가 심했다.

꽃게 속에서 발견된 납은 상당히 커서 육안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냥 요리된다면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잇다. 납은 중독성이 매우 강해 한번 흡수되면 절대 배설되지 않으며, 누적될 경우 신경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산 냉동 꽃게에서 납이 처음 나왔을 때, 수입업자가 꽃게의 무게를 늘리려고 납을 넣은 것으로 보도 되었다. 그러나 발견된 납의 양이 전체 물량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입업자가 일부러 넣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실제로 기자가 확인한 냉동 창고에서도 납이 든 꽃게가 대량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여러 박스 중에 한두 마리에서 납이 나왔을 뿐이다.

이렇게 되자 다른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수입업자 간의 알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수입업자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일부러 넙을 넣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꽃게 수입 과정을 알고 있는 무역업자들은 그런 가능성을 부정했다. 중국산 꽃게에 납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공멸하게 되는데 생각없이 납을 넣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중국산 납 꽃게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점도 이러한 음모론에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수입업자들은 대부분 부정진한 중국 어부들을 납을 넣은 범인으로 꼽고 있었다. 냉동되기 전에 납을 넣어야 하는데, 중국 어부들이 저울에 달기 전에 납을 넣었다는 것이다. 한 두 광주리 단위로 꽃게를 넘기는 중국 어부들에게는 그 정도의 무게를 늘려도 돈이 되기 때문에 납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수입업자들의 설명이다.

여러 해 동안 중국을 오가며 농수산물 수입을 한 대봉상사 이경수씨는 수입업자들이 중국 어민의 농간에 당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을 먹인 낙지 때문에 손해를 본 적이 있다. 낙지를 민물에 넣으면 삼투압 때문에 물을 흡수해서 자기 몸무게의 두 배나 나가게 되는데, 이를 모르고 수입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라고 말하며, 수입업자들이 너무나 안이하게 수입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중국과의 무역에서 우리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이렇게 당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납을 누가 넣었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꽃게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수산물의 경우 수산물검사소에서 품질이나 위생 상태 검사를 거친 후, 검사 확인이 되면 세관에 보고되어 통관된다. 이 과정에서 수산물검사소 직원이나 세관 직원이 납을 발견하지 못했다.

세관에서 납이 든 꽃게가 발견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수산물에 대해서는 밀수 검사 때와 같은 정밀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산물이나 공산품은 밀수가 많아 수입 물품의 1% 정도를 관리 화물로 분류해 정밀 검사를 하고 있지만 수산물의 경우 세관에서는 수량 확인 정도만을 하고 있다. 납이 든 꽃게를 발견해야 할 책임은 수산물검사소에 있다. 

수산물검사소는 수산물의 경우 관능 검사(육안검사)만 하기 때문에 납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금속탐지기를 이용해서 수산물을 검사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대한 수산물 수입업자들의 설명은 다르다. 농수산물의 경우 엄격한 표본 검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검사소가 제대로 검사했다면 발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수산물의 경우 배를 갈라서 살펴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수산물검사소는 인천지소 직원들은 예산,인원,기자재 부족 등을 들며 납이 든 꽃게를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변명했다. 그러나 경찰이 생각하는 문제 해결 방법은 조금 달랐다. 경찰은 꽃게에서 납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수입업자,세관,검사소 직원이 유착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관 과정 CCTV로 감시해야
인천지방결찰청 외사계의 한 경찰은 “단속을 하는 경우 정보가 새나가는 경우가 많다. 또 업자들일 배안에 틀어박혀 하역하지 않고 버티는 경우가 많아 번번이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라고 말하며, 수십 년 지속되어 온 유착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하역과 검사 과정을 CCTV로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납이 든 꽃게가 보관된 냉동 창고에는 중국산 냉동 번데기,냉동 낙지, 냉동 피조개, 냉동 새우, 냉동 가리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여기 있는 냉동 수산물들도 한번 검사해 보자”라는 기자의 요구에 인천지소 직원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아직 문제가 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를 들어 계속 거부하다 겨우 냉동 가리비만을 검사해 주었다.

납 꽃게 파동 이후 수산물검사소 인천지소는 금속 탐지기를 7대 들여놓았다. 인천본부세관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2백만 달러 정도 하는 컨테이너 엑스선 검사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장비 도입도 필요하겠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확실한 단속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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