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에 스미는 동유럽 봄기운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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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스탈린像 철거하고 총선에 야당 참여… 알리아정권 개혁의지는 불확실

 민주화혁명의 선풍이 동유럽 전역에 휘몰아쳐도 스탈린식 정치는 끝까지 고수할 것처럼 동요의 기색을 좀처럼 안보이던 알바니아에도 마침내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며, 공산주의의 종결을 욕하는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다.

 작년 7월 수천명의 시민이 외국공관에 들어가 피난처를 요구한 끝에 출국이 허용된데 이어 지난 12월말부터는 눈에 덮인 험한 산길을 타고 그리스로 넘어오는 피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집계의 의하면 이 숫자는 6천명에 달한다.

 12월9일 대학생들이 수도 티라나에서 벌인 반정부시위를 발단으로 몇 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일부 근로자들도 항의에 가담하자 라미즈 알리아가 이끄는 공산정권을 재빨리 여러 가지 유화책을 쓰기 시작했다. 2월10일 거행되는 총선에 처음으로 야당도 참가하도록 길을 터놓았고 수도 중심부에 서있던 스탈린동상도 제거했다. ‘동유럽 수도 심장부에 자리잡은 최후의 스탈린상’이 사라진 것이다. 알리아는 또 1944년부터 집권해오다가 85년에 사망한 독재자 엔베르 호자의 미망인 네흐미예를 요직에서 밀어냈다.

 그뿐 아니라 지난 성탄절에는 24년만에 처음으로 천주교 미사가 허용되어 1만명의 신자가 모이는 성황을 이루었다. 복부도시 슈코테르에서 집전된 미사를 마친 뒤 주바니 신부는 “하루아침에 겨울이 여름으로 바뀐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1월4일 알리아정권은 정치범의 전원 석방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구 3백만만의 알바니아는 다년간 호자의 철저한 쇄국주의에 묶여서 살아왔다. 그는 소련정부의 스탈린 비판에 불만을 품고 소련과 단교했으며,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도 탈퇴했다. 그러나 근년에는 알리아정권이 대외 관계 개선을 서서히 추진해왔으며, 그 결과 이미 소련과 국교가 회복 되었을 뿐 아니라 외자유치를 목적으로 미국·EC제국들과 외교적 접촉을 가져왔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알바니아는 외국 관광객을 위한 고급 휴양지 시설을 남부해안에 건설하고 크롬 등 광업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외자도입을 추진할 방침이며, 이미 이를 위한 특수은행을 설립해놓고 있다.

 최근 그리스로 넘어오는 피난민들은 알리아정권이 개혁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정부쪽에서는 알바니아 정부가 그리스계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이들에게 압력을 가한 다음, 국경경비를 완화함으로써 선거를 앞두고 그리스계를 축출하는 술책을 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어 피난민 문제는 외교분규로 번질 기세이다.

대학생 “정권 전복밖엔 길이 없다”
 한편 12월 중순에 등록이 허용되어 새로 출발한 야당 민주당은 조직을 확대하고 선거운동을 제대로 전개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선거를 5월로 연기하자고 정부에 제안했으나, 정부는 선거전은 이제부터 동시에 전개되는 것이므로 지장이 없으리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를 거절했다.    알바니아정부가 선거 후 의회에 회부할 작정인 헌법초안에 의하면, 종교의 자유, 근로자의 파업권, 결사의 자유, 주거지 선택의 자유 등이 보장되도록 되어 있다. 또 지난주에 집권당인 노동당(공산당)이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정강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늘이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나, 공업과 농업분야에 사유재산제를 폭넓게 도입할 의사는 없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반봉건적 경제·사회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나라를 이끌었다하여 전 집권자 호자를 예찬하고 있어 알리아정권의 개혁의지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정강은 앞으로 ‘시장메커니즘’을 경제에 도입하겠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강력한 통제경제체제가 경제의 기본 틀로 남을 것임을 뚜렷이 밝히고 있다.

 서유럽의 유력한 신문들은 알바니아의 공산정권이 앞으로 정치일정을 자기 의사에 맞추어 진행시켜나갈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 대학생은 “결코 정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며, 정부가 바뀌자면 정권을 전복시키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최근 현지에 다녀온 〈워싱턴 포스트〉기자는 보도했다. 알바니아에서도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처럼 선거를 통해 공산정권이 물러서는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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