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이념보다 진하다
  • 워싱턴 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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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 쿠바 소년 본국 송환 결정.... 양국 관계 고려해 ‘법대로’해결

지난해 11월 하순 엄마를 따라 밀항선을 타고 미국행에 나섰던 쿠바 출신 엘리안 곤잘레스군. 올해 여섯 살 난 그는 미국 마이애미 근처에서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엄마와 배에 탔던 밀항자 1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유일하게 구조되어 많은 사람의 동정을 샀다. 그로부터 5개월이 흐르는 동안 이 철부지 소년의 신병을 놓고 쿠바와 미국 그리고 마이애미에 정착한 쿠바계 미국인 사이에 꼴사나운 전쟁이 하루도 빠짐없이 벌어졌다. 쿠바는 즉각 그를 친아버지가 사는 쿠바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했고, 쿠바계 미국인들은 그를 쿠바로 돌려보낼 수 없다며 강력히 맞서 왔다. 특히 그를 보호해온 마이애미의 친척들은 변호사를 동원해 법정 투쟁을 벌여왔으며, 연방 이민귀화국(INS)으로부터 일시 체류 허가를 받아내기도 했다.

  물론 미미국 정부는 지난 1월 이번 사안의 정치적 포발성을 감안해 일찌갘치 결론을 내렸다. 친권이 확인된 이상 엘리안을 친아버제에게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엘리안군 강제 인도를 저지하기 위해 쿠바계 미국인의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변호인단은 마미애미 주법원에 청원서를 냈다. 물론 해결쳑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사건 발새 초기부터 잔뜩 꼬였던 엘리안 사건이 마침내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5개월간 꼴불견 승강이 막내려
  미국 정부가 최근 아들을 찾기 위해 미국을 방문 한 친아버지 후암 미구엘 곤잘레스(31)에게 엘리안을 돌려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13일 애틀랜타 연방순회고등법원이 엘리안을 강제로 친적에게 떼어 내 친아버지에게 돌려주려는 정부측 행동에 제동을 걸기는 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이문제의 최종 심판권을 가진 이민귀화국은 올해 초 친아버지에게 엘리인군을 돌려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정했다. 당시 이민 귀화국 도리스 마이즈너 국장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이를 친아버지에게 돌려주는 것은 바른 결정아리며, 이런 문제에 관한 한 미국 국내법이나 국제법 모두 친자 관계가 핵심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민귀화국의 결정에 영항을 줄 수 있는 재닛 리노 법무장관은 한술 더 떴다. 그는 최근 엘리안의 친아버지를 만나 본 뒤 이렇게 말했다.

  “나와 곤잘레스는 정치적 신념을 같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신념, 또는 그가 조국에서 아들을 키우고자 한다는 것 때문에 그를 박해할 수는 없다. 엘리안은 친아버지와재결합해야 한다”라고 못박았다.

  사실 처음부터 미국 정부는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의식해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자 했다. 냉전 시절부터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온 쿠바에 대해 미국은 근래 들어 봉쇄의 빗장을 슬금슬금 풀기 시작했다. 계속 쿠바를 봉쇄하기보다는 포용 정책을 써서 자발적인 개방을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불법 이민자 문제에서 만약 밀수입, 환경 및 인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쿠바와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한 미국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쿠바와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던 차였다.

   쿠바는 1962년의 악명 높은 ‘미사일 위기’가 말 해주듯이 미국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골칫거리이다. 1950년대 후반 카스트로가 공산 혁명을 통해 쿠바의 정권을 장악한 직후 단행된 미국의 무역금수 조처는 아직도 풀릴 리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냉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 의회는 ‘쿠바 민주법’(1992년)과 ‘헬름스 버튼법’ (1996년)을 잇달아 통과시텨 카스트로의 목을 바짝 죄었다. 이 법들이 존재하는 한 미국 회사는 물론이고 외국회사들도 인도적 차원의 의약품을 제외하고는 쿠바에 어떤 상품도 수출하지 못한다.

  이처럼 꽁꽁 얼어붙은 미국과 쿠바 관계는 지난해 클린턴 행정부가 조금식 빗장을 열면서 화해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일련의 쿠바 포용 정책을 통해 쿠바계미국인이 쿠바를 여행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송금 한도액도 크게 늘렸다. 또 그동안 금지되었던 쿠바와 미국간 전세기 운항규제를 풀었다. 이처럼 쿠바와 미국 관계가 조금씩이나마 풀려 가던 과정에서 엘리안 사건이 불쑥 터진 것이다. 때문에 미국은 모처럼 전기를 맞이한 쿠바와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엘리안 사건을 정치적 고려가 아닌 법대로 풀고자 한 것이다.

  엘리안 사건의 경우 상식적으로 보면 일이 벌써 풀렸어야 했다. 엘리안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를 따라 미국행 밀항선을 탔고, 배가 난파한 뒤 기적적으로 구조되어 미국 땅에 들어왔다. 다행히 마이애미에 친척이 있어 보호를 받기는 했지만, 그들은 엘리안에게 법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는 없었다. 오로지 그를 낳아준 친부모만이 그에대한 친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한 사람인 엄마가 목숨을 잃었으니 최종 친권이 아버지에게 넘어간 것은 당연하다.

“쿠바계 미국인, 엘리안을 희생양 삼았다” 비난
  그런데 일이 이처럼 꼬인 까닭은 무엇일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쿠바 출신 귀화 미국인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독재자 피델 가스트로의 학정을 못이겨 미국으로 피난온 사람들이다. 아이애미를 근거지로 삼아 거대한 쿠바계 미국인 사회를 이룬 이들은 엘리안을 반카스트로 투쟁의 상징물로 삼으려고 했다. 미국내 최대의 쿠바 이익단체인 전미쿠바재단은 연일 엘리안의 미국 체류를 허용하라고 설명을 내고, 클린턴 대통령과 의회 지도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노골적으로 정치 쟁점화할 뜻을 내비치기도 햇다. 현직 부통령이자 민주당 대권 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이 최근 공개적으로 엘리안의 미국내 합법 체류를 허용하기 위한 닙법에 찬성한 것도 실은 투바계 미국인 단체의 ‘압력’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쿠바계 미국인 사회의 조직적인 반발은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 이민귀화국이 엘리안의 친권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판정하고, 또 관할 마이애미 연방지법이 이같은 판정을 옹호하는 판결을 내렸는데도 이들이 불법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플로리다 주 지방법원은 얼마 전 판결을 통해 엘리안의 강제적인 신병 인도를 집행하려는 연방정부의 법 집행을 일시적으로 막았다.  그러나 외국인의 이민과 귀화 문제는 연방법이 주범에 우선한다는 사싱를 이들은 깨닫지 못했다.

  결국 주법원이 사건에 개입하자, 미국 법무부는 지난 3월하순 마이애미 연방법원에 최종 판단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연방법원 마이클 무어 판사는 판시를 통해 엘리안에 대한 친권은 친아버지에게 있으며, 엘리안에게 영주 허가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재닛 리노 법무장관에게 있다고 최종 유권해석을 내렸다. 특히 무어 판사는 엘리안을 친아버지로부터 강제 별거시키려면 친아버지의 어린이 학대 혐의가 입증되야 하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판시했다.

  마이애미 대학 법대 교수이자 이민접 변호사인 데이비드 에이브러햄은 <뉴욕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 무어 판사의 판결로 엘리안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법적으로 유권 해석이 끝났으므로 이제 미국 정부가 강제 법 집행을 통해 엘리안을 친척들의 품에서 친아버지 품으로 돌려주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최근 <로스엔젤레스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짐맨은 엘리안을 친 아버지에게 되돌려주지 않으려는 쿠바계 미국인 단체들의 무법적 행동 때문에 많은 미국인이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뉴스위크>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민 절반 이상이 엘리안군 쿠바 송환에 찬성하고 있으며, 반대는 고작 30%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튼 5개월을 끈 엘리안 사건은 쿠바와 미국간에 아직도 서슬 퍼런 냉전의 칼날이 번득이고 있음을 확인 시켰다. 특히 엘리안을 ‘볼모’로 삼아 반카스트로 투쟁을 벌이려던 쿠바계 미국인들이 미국인들로부터 적지 않게 점수를 깎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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