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민들을 욕하지 마십시오”
  • 노무현 의원 ()
  • 승인 200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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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낙선한 노무현 의원 특별 기고

소감을 마라자면 솔직히 섭섭합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구양을 가셔도 아침마다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하여 절을 올려야 하고 임금님을 원망하거나 하는 일은 삼가야 하는 것이 충성스러운 신하의도리라고하니, 유권자를 원망하는 이야기는 삼가야겠지요. 다만 성실히 자신을 변명하고 직언을 드린다는 선에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승리니 패배니 다 허튼말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 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투표 하루 전날만 해도 선거를 승부로 생각했고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개표하는 날 저녁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링컨의 연설문을 읽는 동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저에 둔 시점에서 한 취임사에서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을 단 하마디도 쓰지 않았습니다.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도 않았고, 정의나 불의니 하는 말이나 선아니 악이니 하는 말로 남과 북을 갈라 치지도 않았습니다.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성경으로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제각기 상대방을 응징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쪽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참으로 미국의 역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부산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다 아시는 일이라 새삼스럽습니다만 더러 오해도 이는 듯하여 다시 말씀드립니다. 제가 부산으로 간 이유를말씀드리기전에 오해불러일으킬 염려가 있는 표현 몇 가지를 바로 잡았으면 합니다. 저의 부산행을 두고 민주당의 ‘동진’이라거나 지역 감정‘돌파’를 위하여, 또는 지역 감정과 ‘싸우러’ 갔다는 표현들이 그것입니다. 지역 감정 이라는 것이 영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민주당의 동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데 자꾸만 전투적인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지역 감정 해소에 해로울 것만 같다는 것이 근래 저의 생각입니다.

감히 말씀드리면,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부산으로 갔습니다. 지난날 세계 여러나라의 역사에서 정치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집단 간의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겨서 벌인 일치고 그 집단에 불행을 가져다주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훗날 역사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을 그런 역사의 하나로 쓰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런 역사속에서 겪어야 할 울민족의 불행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산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1990년 3당 통합 당시 김영삼 총재가 여당으로 가고 나서 저는 야당을 다시 살려 보려고 동분서주해 보았습니다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탄식을 하며 가는 곳마다 외쳤습니다. “김영삼 총재님, 부산에는 민주주의가 필요 없습니까? 야당 없는 민주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 이후 저는 부산에 야당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뻔히 떨어질 선거에 두 번이나 출마했고, 이번에 다시 부산에 도전한 것입니다. 이번에 부산에서 당선되면 부산에도 정당간에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고 경쟁하는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정치 그리고 어느 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항시 중앙 정부와의 교섭 통로가 열려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낙선한 것을 보고 이번 도전이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짓이라고 형하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야 패배로 나타났지만 투표 바로 직전까지도 여론조사는 저의 당선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것은 살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위험하다고 도전하지도 않는 사람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 홈페이지에 많은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부산 시민을 비난하는 글들이었습니다. 저 또한 부산 시민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지 않은 것은 안지만, 외마디로 부산시민을 비난하는 데는 동의학 어렵습니다. 지역주의가 어디 부산만의 문제인 가요? 지역주의가 이기주의와 편견 또는 독선에서 비롯된 것ㅇ라고 한다면, 우리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에서 출발해야 지역주의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호남에서 부산을 욕하시는 분들께 말씀 드립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의 과거 행적을 모두 덮어두고 김대중 대통령 옆에 서기만 하면 무조건 지지하고 만세를 부르는 일은 없습니까? 지금 제가 민주당을 떠나거나 김대중 대통령과 맞서게 되더라도 호남에서 제가 당선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들이야 모두 고맙지만 마구 욕서을 퍼붓는 일은 정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지역주의에서 누가 자유로운가
 이런 질문도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왜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그 사람 곁에서서 우리에게 표를 달라고 합니까? 저는 이 질문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저에 대한 나름의 애정을 느끼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단호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왜 그토록 그를 미워하십니까? 아직도 그 분이 빨갱이라고 믿기 때문입니까? 그분이 거짓말쟁이이고 권모술수를 부린다는 거지요?  김영삼씨나 이회창씨는 그만한 거짓말을 하지 않던가요? 노태우정권을 구정이라 규정하고 군정 종식을 그토록 외쳐놓고 그 군정과 손잡은 것보다 더 큰 거짓말이나 권모술수가 따로 있던가요?

 지금도 김대중 정권이 부산 경제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믿고 계신가요? 우리 영남 사람들이 정권을 가지고 있을 때 광주 사람들이 백주 대로에서 정권의 명령을 받은 군이들에게 총질을 다한 사실은 알고 있는징? 지금도 서울의 잘사는 동네는 영남 사람이 많이 살고 못사는동네에는 호남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요? 권력만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던 지난 수십 년간 권력 근방에서 얼씬도 해보지 못했던 그들의 한을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저 역시 못마땅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지난 수십년간 우리 영남 사람들이 그들에게 했던 일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도우려고 합니다.
 제가 낙선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감정이 아니라 관용과 지혜로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갑시다. 서로 처지를 바꾸어 한 발짝씩 물러서서 생각합시다. 선거구 제도는 반드시 바꾸었으면 합ㄴ다. 지역 구도 해소에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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