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의 ‘적’과 만난 부시의 “본때보이겠이겠다”
  • 워싱턴 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1.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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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빗나간 전황 속 “전쟁 피할 수 없었나” 비판 거세

 “지금 창밖에는 불길이 솟아오르고 고사포 소리가 요란하다. 독립기념일 축하 불꽃놀이로 착각을 할 지경이다.”바그다드에 나가 있는 기자가 전화통을 붙잡고 저녁7시 종합뉴스를 진행중인 앵커맨에게 전환 숨가쁜 개전 첫 소식은 백악관 대변인의 공식 발표와 거의 같은 시각에 전화를 타고 번져나갔다.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를 못박은 1월 15일로부터 17시간이 지난 16일(미국 동부시각) 저녁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그 전날 내린 ‘국가안보 준칙명령’을 ‘국가통제명령’으로 바꿔 개전을 선언했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언제 최종 결심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 내외가 크리스마스 휴가를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보내면서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밝혔다. 그때 이미 부시는 ‘전쟁참모들’로부터 “무력으로 치는 길밖에 딴 도리가 없다”는 보고를 받은 뒤였고 부시는 리처드 체니 국방장관과 콜린 파웰 합참의장에게 공격 목표를 만들어 제출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사실상 개전준비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참모’로 알려진 베이커 국무,체니국방,스코크로프트 안보담당보좌관, 그리고 파웰 합참의장은 대통령이 2주일 동안 별장에서 쉬고 있는 사이 너댓번 그들끼리 만나 회의를 했고 개전명령을 내리기 전날 소집된 국가안보회의에는 전쟁참모들과 퀘일 부통령이 같이 참석하여 최종 단안을 내렸다고 한다.

 개전 선언 전날 밤 백악관과 국방부에는 밤새 불이 켜져 있었고 오밤중엔 피자가 국방부에 1백여개, 백악관에 50여개나 배달되어 심상치 않은 상황을 암시하기도 했다.

 16일 오후 6시 45분 부시는 셔츠 차림으로 쉬면서 피츠워터 대변인을 불러 기자들에게 개전을 알려주라고 지시했다. 7시5분 피츠워터는 출입기자들 앞에 나와 “쿠웨이트를 해방하는 일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는 질문도 안 받고 자리를 떴다. 개전명령을 할 때 대통령의 표정이 어떻더냐고 묻는 질문에 피츠워터는 “일단 짐을 벗은 것 같은 가벼운 표정이 보이더니 다시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심경이 몹시 착잡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둘로 갈라진 국론
 ‘사막의 폭풍’ 기습 공격이 일단 첫단계에서 계획대로 진행되어 큰 성과를 거둔 데 대해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서 의회 지도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미국인이 흡족해 하는 표정이 역연하다. 11년 전 이란 사막에서 인질 구출에 나간 미 특수부대 헬리콥터가 추락하여 참패를 당한 그 수모를 기억하고 있는 미국인들은 7천5백회가 넘는 출격에서 개전 5일째인 21일 현재 공군기 15대, 조종사 18명의 손실만 보았다는 다국적군측 발표에 모두들 반색을 했다.    “미국의 공격이 성공적이었다”고 첫 전과를 발표한 체니 장관은 그러나 “이것은 겨우 시작일 뿐 아직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괜히 들뜨지 않는 것이 좋다”고 미리 다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갑자기 올라갔다.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1%가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반면 12%만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전황 자체가 그렇다. 단기전이 될 것이라던 초기의 예상은 인제 이스라엘의 참전에 의해 전쟁이 확대되거나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울한 전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개전 초기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에 이어 이라크는 지난20일 사우디아라비아에도 공격을 감행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이날 약5분간의 육성연설에서 “이라크는 여태까지 부분적인 능력만을 사용해왔을 뿐이며 앞으로 대규모 공격을 퍼부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사우디 전방에 나가 있는 집안의 어린이 가운데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부모가 사막에서 죽는 꿈을 꾼다든가 악마가 나타나 목을 조른다든가 하는 악몽에 시달려 잠을 못자는 어린이들을 위해 국민학교에 특별 상담반을 설치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기지촌 부근 어느 국민학교에는 4백50명 학생 중 아버니 또는 어머니가 전쟁터에 가있는 어린이가 1백35명이나 되는 곳도 있다.

 미국은 세가지 적과 싸우고 있다. 이라크 군대를 쳐부스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사막이라는 특수환경과 싸우는 일 또한 중요하다. 낮과 밤의 기온차도 심하고 모래와 비를 몰고 때없이 불어닥치는 강풍에 사람과 장비가 맥을 못추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자욱한 모래가루는 컴퓨터로 작동하는 미국의 정밀무기를 망가뜨리기 일쑤라고 한다.

 세 번째 적은 워싱턴 심장부를 노리는 테러범들로, 미국의 모든 수사기관은 이미 비상을 걸어 대비하고 있긴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행정부 주요기관서는 물론이려니와 공황·언론기관들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백만의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감시’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민권단체들은 이것이 일종의 협박이 아니냐고 항의하고 있다.

 미국의 국론이 둘로 갈라진 가운데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찬동하는 사람들조차도 왜 미국 젊은이들이 사막에서 피를 흘려야 하는지 그 뜻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은 걸프사태를 놓고 국민을 이해시키는 데 덜 노력했거나 실패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는 미국이 왜 사담 후세인과 맞서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이랬다저랬다하는 바람에 설득력을 잃었다는 소리도 있다.

 사건이 터진 다음날 그는 “미국식 생활양식을 보전하기 위해 이라크의 도전을 막아야 한다”고 다소 막연한 말을 했다. 그러다가 의회 합동회의에 나가서는 “협력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제질서가 싹트려고 하는데 이를 거역하는 침략자가 나타났으니 단호히 응징해야 마땋하다”고 다른 말을 했다. 어떤 것이 부시의 진심인지 알쏭달쏭했다. 사담 후세인도 부시의 진의를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의회가 이라크와의 개전을 눈앞에 두고 행정부에 무력사용 권한을 부여해주는 것이 옳은지를 토의하는 가운데 부시 행정부의 정책 목표가 아닌 정책입안과 수행방법이 중심의제가 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미 의회 의원들은 과연 가능한 모든 평화적 수단이 다 동원되었는가, 전쟁만이 유일한 수단으로 남아 있는가를 따지는데 사흘씩 걸린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랍땅 강점할 땐 수수방관
 1월15일까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전면 무조건 철수할 것을 요구한 유엔 안전 보장이사회 결의안 제 678호를 이라크가 거부하여 전쟁으로 돌입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국론은 戰양면으로 팽팽히 갈려 어정쩡한 꼴을 보였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세상에 좋은 전쟁도 있어본 일이 없지만 그렇다고 또 나쁜 평화가 있었느냐 하면 그런 일도 없었다”고 하여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지 부시는 좋은 전쟁도 없지만 전쟁만도 못한 평화보다는 차라리 전쟁을 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떤 나라든 다른 나라를 마구 침략하여 삼킬 수 없다는 사실과 세계, 특히 서방세계가 번영하고 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석유자원에의 접근을 가로막는 손을 걷어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부시로 하여금 칼을 빼들게 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른바 높은 도덕성과 원칙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무력을 동원하여 국가의지를 관철하려는 것이 바로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비둘기파들의 주장은 지금 단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유일한 강대국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자기 입장에 위베되는 어떠한 주장이나 도전도 수용할 용의가 없이 제멋대로 마구 윽박지르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감히 잘못을 타일러줄 수 없을 만큼 거만해진 미국이 19세기까지 세계를 갈라먹은 영국이나 프랑스와 다른점이 있다면 미국의 군사력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뿐이라고 이들은 목청을 돋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으로 악화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의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평화회의를 가져야 한다는 이라크의 요구를 일축한 부시 행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들은 불만이다.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아랍땅을 강점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니까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기준이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고. 중동평화를 위해서는 이스라엘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이라크와의 협상에 이스라엘 문제가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나던 날 미국의 모든 대도시에서는 수천명씩 반전데모를 하면서 밤을 지새는 모습을 보였다.대학기에서 차츰 고개를 들고 있는 반전 데모의 구호들을 보면 “기름 때문에 피흘리는 것은 부당하다”든가 “봉건 토후 몇사람의 부귀영화를 되찾아주려고 쿠웨이트를 달환하기냐”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가 하면 인구비율보다 많은 수의 흑인 병사들이 싸움터에 나가 있는 것에 대해 불만으 나타내는 집회들도 열리고 있다.

 이같은 북새통에 ‘죽음의 상인들’만이 재미를 보고 있다. 군수공장들은 밤샘작업을 해도 주문맡은 일감을 다 해치울 수 없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경기침체로 다른 분야는 모두 울상인 데 반해 대포알 총탄 군복 군화 미사일, 심지어 시체 담는 자루를 제조하는 업자들마저 마냥 일손이 바쁘다.

 걸프사태 이후 미국이 지출한 돈은 줄잡아 3백만달러였지만 전쟁이 터진 뒤에는 하루 10억달러씩 쏟아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적자에 쪼들리는 나라살림은 더욱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 끝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전쟁이 2~3주일 안에 끝나면 부시는 재선에 아무 지장이 없겠지만 반년쯤 질질 끌게 되면 사태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라는 것이 사학자 아더 슐레징거의 말이다.

전쟁 이겨도 또다른 문제 시작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미국은 석유자원인 풍부한 걸프 지역 토후국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대표적으로 이란의 팔레비 왕은 미국의 와위에 앉혔기 때문에 친미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던 인물이었다.방대한 석유자원을 갖고 있는 사우디에 대해서도 미국은 이스라엘의 강한 반발을 무릅쓴 채 최신 무기들을 공급하고 군대를 훈련하는 일을 해왔다.

 전략적으로 불안정한 걸프 지역이 이파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더욱 불안해지고 세계경제발전의 혈맥인 석유공급이 위태롭게 될 경우 전체 석유소비의 50%를 수입에 의존하는 미국 경제는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은 ‘사막의 폭풍’을 통해 어느 세력도 이 지역의 안정을 해칠수 없다는 본때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이 석유 공급을 실질적으로 주도함으로써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의 1차 목표는 쿠웨이트의 원상회복에 있지만 일단 이라크군을 몰아낸 다음에는 집단안보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전쟁에서 이길 경우 이라크의 항복을 받는 자리에서 미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에 대한 영토적 소유권을 포기하고 지역내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동의서를 받는 것이 급하다고 한다.

 그 대신 이라크에는 영토분쟁을 국제간의 조정에 의해서만 해결하고, 아랍권과 이스라엘간의 문제는 국제회의를 통해 가려나간다는 것을 보장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지역집단안보는 81년에 만들어진 6개국 걸프지역 협력을 위한 연합이지만 아랍연맹 같은 기존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방법도 고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축문제를 서두르는 작업도 절실한데 화학무기나 핵무기의 개발제조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걸프 지역의 안정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아랍국가들간의 해묵은 적대관계가 해소되기 전에는 뿌리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그러므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그것이 성공한다 할지라도 군사적인 승리일 뿐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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