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는문화운동이었다”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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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00만’ 기념 공연 펼치는 라입극장 이종현 대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대중 음악에는 라이브 문화라는 것이 없어다.

1980년대에 들국화를 비롯한 라이브 또는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라이브공연을 했지만, 그 명맥은 하루아침에 끊어지고 말았다 ‘서태지’라는 댄스 음악의 태풍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라이브 콘서트가 일상적인 공연으로 자리를 잡았다.라이브 문화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라이브 문화의 씨앗을 뿌린이는(주)라이브엔터테이먼트 이종현 대표 라이브 극장 대표로 더 잘 알려진 이대표는 지난해 연말 관객 100만명을 맞았고 4월7일부터 <라이브관객 100만명 돌파 기념 릴레이라이브>공연을펼치고 있다.

  1980년대 문화운동을 했던 이씨가 서울 대학로에 라이브극장을 세운 것은 1994년 4우러30일. ‘음악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어Tw만,대중 음악이 대단히 중요한 예술 장르여서문화운동 차원에서 보면 건강한제도를 만드는 일이 반 듯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백석 규모의 작은 무대를 만들었지만,설 만한 가수는 글 많지않았다. 작고한  김광석씨를 비롯해 포크 계열의 몇몇 가수가전부였다.라이브극장은 대안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다.노래 실력은 있으나 방송에서소외된 가수를 중심으로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슈퍼 라이브><100일 콘서트)같은 공연이 길게는 1백57일 연속으로 열리기도 했다. 중장년층을 대학로로 끌어들이려고 조용필  심수봉 김수희 씨같은 노장 가수의 무대를 만들고, ‘심야 스텐드라이브’라는 새로운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대표가 라이브극장을 중심으로 펼친 공연을 통해 수많은 라이브 스타가 탄생했다. 대표적인 가수가 ‘라이브 여왕’으로 불리는이은미씨 무명이던 이씨는 라이브무대에서두각을 나타내, 앨범보다 공연으로 스타덤에 오른 대표적인 가수로 손꼽힌다.이밖에도 록사수 김경호윤도현김종서조규찬 리 아들도 라이브 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이제는 댄스 장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수가 라이브공연을 하려고 한다. 그같은 변화에 일조했다는 점이 라이브 극장의 가장 큰 성과라고 꼽을 수 있을 것 가다.” 효율적인 프로그램과 공연장 관리로 적자는 보지 않았다는 이대표는 지난 6년간의 경험을 발판 삼아 오는 6우러 서울 명동에 대중음악전용 극장을 새로 만든다. 8월12~14일에는 강원도 속초에서 한국 록가수 대부분이 참여하는 <코리아 폭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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