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 ‘기숙학원’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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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재수비용 1천만원 ···성적 오르는 학생 드물고 “24시간 생활관리” 선전만 요란
06 : 30 ~ 07 : 40 : 기상 일조점호 체조 아침식사
08 : 00 ~ 08 : 40 : 국·영·수 일일테스트
09 : 00 ~ 12 : 50 : 오전수업
12 : 50 ~ 13 : 50 : 점심식사 개인상담
13 : 50 ~ 16 : 50 : 오후수업
16 : 50 ~ 19 : 00 : 저녁식사 개인상담
19 : 30 ~ 21 : 00 : 자율학습 보충수업
21 : 00 ~ 21 : 30 : 휴식 간식
21 : 30 ~ 23 : 00 : 자율학습 보충수업
23 : 00 ~ 01 : 00 : 자율학습 하루반성 생활점검 일석점호 취침

 군대 내무반에나 붙어 있을 법한 위의 시간표는 요즘 한창 재수생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기숙학원의 소위 ‘스타르타식’ 일일 교육계획의 하나이다. 부모들로부터 비싼 학원비를받는만큼 학생들을 억지로라도 책상에 앉혀놓고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도록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신종학원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학력고사 성적이 2백점 이하인 학생들만 받습니다’라고 광고로 저학력 재수생을 둔 학부모들 사이에 화제를 일으킨 경기도 광명시의 진성학원이 지난 83년 개원한 이후 8년만에 전국의 특수학원은 모두33개로 불어났다. 87년 경기도 포천에 한샘아카데미가 생기면서 대학캠퍼스를 방불케 한는 5백명 수용의 대규모 기숙학원이 다투어 설립돼 재수학원의 캠퍼스화, 기업화 현상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이런한 특수학원들은 주로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 주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광명 과찬 원당 부천 구리 고아주 포천 의왕에서 안산 남양주 양평 용인 송탄지역으로까지 특수학원은 확산되고 있다. 한반에 평균 40명을 수용하는 ‘소수정예’를 표방하고 기숙사 식당 독서실 등의 시설이 필수적인 까닭에 땅값이 싼 시 외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는 아직 시장성이 없는 탓인지 부산의 재수생을 겨냥한 경남 김해의 은석학원과 대전의 하바드학원 두곳이 영업중이다.

 특수학원의 월 수강료는 과목당 몇백만원씩 한다고 고액 과외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보편적 수준의 재수생가족으로서는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이 비싸다. 수업료만 16만원에서 20만원. 종로학원 같은 일반 종합반학원의 경우 7~8만원선인데 비추어 2배가 넘는 금액이다. 거기다 기숙사비 20만원, 식비 간식비 복리후생비(의약품, 생활필수품)등을 합하면 한달에 45~49만원이 든다.

 이것만 해도 적지 않은 돈이니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학원에서 선정한 교재를 사야 하고 과목당 2만원씩 하는 보충수업을 거의 의무적으로 3~4과목 받게 되면 10~15만원이 거뜬히 추가된다.

 여기서 세탁기, 한달에 두 번씩 외출나갈 때마다 타는 관광버스비도 내야 한다. 첫달에는 입학금 3만원을 더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보통 70만원을 ‘입학’하기도 전에 선불로 ‘바쳐야’하는데 포천의 한 학원의 경우 보충수업비 3개월분에 의료비 등의 명분으로 받는 예치금 10만원까지 합해 모두 95만원을 요구하여 말썽이 나기도 했다.

‘가둬놓기 재수’는 부모의 책임회피
 우러평균 80만원 이상이 학원비와 용돈으로 들어가므로 1년에 1천만원 가량을 쏟아 붓는 학부모들은 누구이며 과연 그만큼의 효과를 거두는가. 한 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과 지방학생의 비율이 7대3 정도로 성루 거주자가 많고 부모의 직업은 자기사업을 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공무원과 회사 간부도 꽤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성적은 “학력고사 기준으로 2백점 이쪽 저쪽, 내신 4등급 이하가 주류를 이룬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말하자면 명문대입시에 실패한 재수생들이 7대1 정도의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들어가는 종로학원, 대성학원 등의 명문 종합반 학원은 아예 쳐다볼 수 없는 수준의 재수생이 기숙학원에 모인다. 자칫하면 나쁜 환경에 물들어 1년을 제대로 버텨낼 것 같지 못한 학생등릉 산속에 가둬놓고 공부시키는 ‘수용소학원’을 기숙학원이라고 할수 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여학생 기숙학원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집에서 재수하면 친구들이 수시로 불러내고 학원 근처의 술집, 당구장 같은 곳으로 빠지기 쉬울 것 같아 이곳에 맡겨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숙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는 타율적으로라도 누가 1년간 붙잡아놓고 공부를 시켜주고 재수생을 멀리 보냄으로써 부모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중들어야 하는 부담을 피하겠다는 생각에서 ‘가둬놓기 재수’를 선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일선교사와 교육전문가들은 기숙학원 형태를 선호하는 학부모에 대해 “오히려 역호갸를 낳기 쉽고 지극히 비교육적이고 한 군대식 태율적 교육방법의 선택은 한마디로 부모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으며 돈으로 그 역할을 대신하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잘못된 입시제도와 교육정책에서 비롯된 병페라는 전제를 두고 하는 주장이다.

 일본의 요비쿄(예비교)를 모방한 이 특수학원이 선전대로 수업과 생활관리를 철저히 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만 해준다면 학부모로서는 비교육적 문제를 떠나 환영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나마 그렇지도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각종 신문과 방송이 매우 긍정적으로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는 ㅈ학원을 예를 들어 보자. 대부분의 기숙학원이 차츰 군대식 규율을 탈피하는 경향임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식’을 전통처럼 자랑하고 있는 이 학원의 상징은 강의실 독서실 기숙사 등에 설치된 폐쇄회로 텔레비전.1층 상황실에는 수십대의 모니터가 설치 돼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다.

‘몇명 합격’ 선전은 “1백% 거짓말”
 그러나 그것은 ‘전시용’에 불과하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공부보다는 소란스럽게 놀거나 잠자는 학생들이 훨씬 많은데도 소위 ‘24시간 관리하는 생활지도 교사’는 보이지 않는다. 학생은 직원에게 거수경례를 하면서 ‘필승’이라고 구호를 붙이는데 어딘지 장난기가 엿보인다. 형식에 흐르는 타율이 얼마나 코미디에 가까운 것인지 알 수 있는 한 단면이다.

 하사관 조교 출신으로 기숙학원의 생활지도 교사일을 한 안모씨(35)는 “학생의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깎고 체벌도 하면서 엄격한 교육을 실시한다는 학원측의 얘기에 학부모는 기대를 걸고 싫다는 자녀를 떠맡기지만 학원경영자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차피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가둬놓고 시킨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며 군대식 규률 또한 처음에만 따라 하다 차츰 반발하게 돼 역효과만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활에 적응을 못하거나 염증을 느낀 학생은 입학 한달 후부터 곧잘 ‘탈출’을 감행하거나 아예 짐을 싸 집으로 가 단과반을 다닌다. 무단외출자들은 학원 근처의 술집이나 당구장에서 놀기 마련인데 이들을 색출, 학원으로 끌고오는 게 생활지도교사의 주요 임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원측은 군출신이나 기업체 극기훈련담당 경력자, 전직 체육교사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사례가 많다.

 기숙학원 원생들의 자퇴율은 매월 5~10%를 기록하다 최고조에 달해 50%이상이 ‘수용소학원’과 결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원측은 수입감소분을 메꾸기 위해 수시로 원생을 보충, 기숙사 룸메이트가 자주 바뀌어 기존학생들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전단이나 신문광고에 씌어 있는 ‘60점 상승’ ‘아무개 외 몇 명 합격’등의 말은 거의가 날조됐다는 것이 학원강사들의 말이다. ㅎ기숙학원의 수학담당 강사는 “등록만 하고 안다니거나 소속 학원강사의 개인지도를 받은 학생이 명단에 들어가는수가 많고 ‘외 몇 명 합격’은 1백%거짓말로 보면 된다”고 밝힌다.

 이 강사는 “재수생을 유혹하는 도심의 온갖 환경과 격리돼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 가운데는 성적이 월등히 향상된 경우가 물론 없지 않으나 어디서든 결국 제할 탓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학부모들에게 충고한다.

 뒤틀린 입시제도, 돈과 타율로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부모의 잘못된 교육관에 기생하여 날로 번창하는 기숙학원. 폐쇄회로로 감시하는 이 수용소학원은 대학입시가 무시험제도로 바뀌지 않는 한 지속적인 호황을 누리면서 우리 교육의 파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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