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오르는 ‘문경 양민 학살’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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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와 유족, 진상 조사 및 배상 외면한 국회 상대로 헌법소원 제기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대규모 양민 학살 사건 하나가 역사상 처음으로 사법적 판단의 도마 위에 올랐다. 1949년 12월24일 대낮 중무장한 국군 병력에게 한 마을 주민 86명이 살해된 문경 양민 학살 사건이다. 문경양민학살피학살자유족회(대표 채의진)와 법무법인 덕수합동법률사무소(대표 김창국․이돈명 변호사)는 지난 3월18일 이 사건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국가가 문경양민학살 사건을 저지르고 그 진상 은폐는 물론 50년 동안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은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 추구권, 제11조 평등권을 위배했다는 요지이다.

<시사저널>이 지난 10년 동안 일곱 차례 추적 보도해 왔듯이 이 사건은 한국전쟁 이전에 일부 국군 병력이 무고한 자연 부락 주민을 상대로 인간 사냥을 한 끔찍한 범죄 행위이다. 당시 가해 부대는 경북 문경과 점존 일대에 주둔한 국군 3사단 25연대 3대대 7중대 소속 2소대와 3소대원 70여명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당시 이승만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 이듬해 치를 5․30 총선에서 집권 자유당에 악재가 될 것을 두려워한 정부가 사건을 은폐안 채 일부 지휘관을 인사 이동하는 선에서 매듭지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당시 언론에는 단 한 줄도 사건이 보도되지 않았고, 피학살자들의 호적에도 공비가 출몰해 부락민을 총살했다고 거짓 기재되었다.

사건후 피학살 유족은 자유당 정부의 탄압 아래 입도 열지 못한 채 파괴된 삶을 살아야 했다.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1960년 4․19 혁명 직후 유족은 비로소 국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당시 국회는 현장조사반(윤용구․임차주 의원)을 파견해 진상 조사를 벌인 후 새로 들어설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해 해결해야 할 건으로 의결했다. 그러나 이듬해 발생한 군가 쿠데타로 이런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국회에 진정서를 낸 피해 유족 대표들은 범법자로 낙인 찍혀 감옥에 갇혔다. 이후 피해 유족은 역대 군사 정권 치하에서 입도 열지 못한 채 한 맺힌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유족들은 1993년 문민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 국회․국방부․총리실․청와대 등에 20여 차례에 걸쳐 진정과 탄원을 냈다. 그러나 국민의 정보가 들어서까지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다할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묵살해 왔다.

헌재가 국제 인권법 원칙 수용할지에 관심
이런 기막힌 사연을 뒤늦게 알게 된 국내 인권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법조인들이 이 사건을 국가에 의한 끔찍한 범죄 행위로 간주하고 이번에 헌법소원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주임 변호사를 맡은 조용환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국가가 범죄를 저지르고, 이후 피해자들의 구제 활동마저 억압 외면한 이중적 범죄 행위이다”라고 규정했다(45쪽 인터뷰 기사 참조).

법조계에서는 헌법 정신에 따라 국가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 인권 유린이라는 측면과 이후 국가 권력이 계속 인권을 침해하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문경양민학살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가 자행한 이 사건 발생과 은폐 과정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인간성 자체에 대한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양민 학살 사건을 사법적 심판 잣대로 바라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이미 이런 대량 학사에 대해 확립된 관습법이 있다. 즉 국제 인권법으로서, 여기에 규정된 내용들은 한국 헌법 각 기본권 조항의 정신 및 내용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사실 규명과 완전하고도 공적인 진실 공개, 범해진 침해에 대한 책임 공개 인정, 책임자 처벌, 희생자와 증인 보호, 침해 재발 방지 조처, 현금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의 배상(진료․고용․교육) 등이 그 내용이다. 국제 인권법에서는 이 권리를 침해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비인도적 취급으로 간주된다. 헌법 제6조 1항은 ‘헌법에 의해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 재판소가 국제 인권법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양민 학살이 헌법 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헌법상 국가의 의무 때문이기도 하다. 문경에서 대규모로 자행된 무차별 양민 학살은 국가 성립과 존재의 가장 기초적 요소인 주권자에 대한 공격이다. 이는 헌법 제1조 2항이 규정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을 정면으로 침해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에 의해 헌법 위반 행위가 발생한 뒤 그 유족이 진실을 알 권리를 포함해 구제받을 권리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된 상황에서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헌법상 보호 의무는 더욱 무거워진다는 논리이다. 이 대목에서 생명권과 인간의 존엄성 및 가치에 시효가 없듯이, 문경양민학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가 의무 조치를 취하는 데도 시효가 적요오딜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더구나 1960년 4대 국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특별 입법을 결의했다는 점에서 이미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를 ‘대한민국을 건져내는 행위’로 인식했음을 반증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후 군사 정부와 국회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헌법소원은 국회로 하여금 국가가 문경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진상 조사 및 명예 회복, 호적 정리, 배상을 하도록 입법 의무를 다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한 최초의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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