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야 게 섰거라 인터폴이 나가신다”
  • 리용. 허광 통신원 ()
  • 승인 200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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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리용 세계 본부 현지 취재/마약․위조 지폐․해킹 등 전방위 추적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고속 전철을 타고 2시간을 달리면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용에 내리게 된다. 이곳의 인구는 약 40만. 도시 주변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섬유․화학 공업 단지로 둘러싸여 있다. 리용은 <어린 왕자의>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 대대적인 기념 행사가 열릴 리용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국제 조직의 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1백78개 국에 지점을 두고 있고 본사에는 54개 국에서 파견된 직원이 일하는, 다국적 기업을 연상케 하는 이 조직의 이름은 흔히 인터폴이라고 불리는 ‘국제 형사 경찰 기구(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이다. <시사저널>이 인터폴 본부를 찾은 것은 인터폴 제2국에서 ‘위조 범죄’대책을 연구하고 있는 이종화 경감을 통해서였다. 그는 <시사저널>의 인터폴 취재와 인터뷰를 주선했다.


인터폴은 어떤 일을 하는가. 인터폴 본부는 이 같은 의문을 답하는 한 가지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북한 보건부가 발행한 이 문서는 ‘대동강 지구 약품 협회’에 의약품 원료 20t 수입을 허가한다는 증명서이다. 이 증명서가 인터폴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여기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면 이렇다 북한 보건부가 수입을 허가한 의약품 원료는 ‘에페드리네 히드로클로리드’. 북한 보건부는 1997년 8월25일자 문서에서 여섯 달치 분량으로 이 물질 20t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벨기에 업체에 수출을 의뢰했다. 문제는 이 물질이 진통제뿐만 아니라 마약(필로폰)의 원료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보건부가 발행한 문서는 수출 의뢰를 받은 벨기에 업체와 벨기에 경찰을 거쳐 인터폴에 전달되었고, 인터폴은 수출 금지 판단을 내렸다. 북한 보건부는 이 물질을 ‘대중의 필요’에 따라 수입한다고 말했지만, 인터폴은 수입량 20t이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며 따라서 마약 생산에 사용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리용은 전세계의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유일한 곳이다. 폴 히그돈 제2국 국장에 따르면 인터폴 본부가 회원국과 교환하는 정보량은 매년 2백60만 건에 이른다. 회원국 사이의 정보 교환은 주로 전자 우편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여기에는 국제 범죄를 예방하는 데 필요한 정보도 포함된다. 인터폴은 이같은 정보를 각 회원국에 설치된 지부로부터 받게 되며, 인터폴의 분석을 거친 정보는 다시 요구하는 회원국으로 전해진다. 인터폴의 핵심 부서인 제2국의 조직표는 이같은 정보 유통이 이루어지는 통로를 보여주고 있다(59쪽 표 참조).

인터폴의 각 지부가 보내 온 정보는 먼저 제2국 범죄 정보과에서 분류된 후 준석 작업에 들어가고, 그 결과는 언제라도 자동 검색할 수 있는 자료로 보관된다. 제2국은 범죄 정보를 크게 일반 범죄․경제 범죄․마약 범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이탈리아에서 마피아 조직을 수사한 경력이 있는 디스펜자 경제범죄과장은 최근 인터폴의 협조를 얻어 인도 경찰이 적발한 국제 범죄를 소개했다. 인도 경찰은 다국적 기업의 부탁을 받아 인도 정부 관리들을 약 2백억원에 매수한 지하 금융 조직의 인물을 지난 1월에 체포했는데, 그때 홍콩과 중국에서 암약하고 있는 이 지하 조직의 정보를 인터폴이 처음으로 입수했다고 한다.

위폐 범지 급증하는 아시아 ‘요주의 대상’
몇 년 전부터 인터폴이 주목하고 있는 곳은 아시아 지역이다. 아시아에서는 무엇보다 위폐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인도․파키스탄 분쟁이 다시 터진 후 위조 지폐가 쏟아져 나오자 500루피 지폐 유통을 아예 금지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보따리상들은 감식이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위조 ‘슈퍼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고액 단위 지폐가 광범한 지역에서 유통되면 위폐 범죄도 그만큼 기승을 부릴 터인데 500 단위 유러 달러가 사용되는 2002년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터폴은 이같은 사태에 대비해 방콕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마약 밀수나 위조 지폐 제조 등 동아시아 지역 전반의 범죄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해킹 범죄에 인터폴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제2국장에 따르면, 인터폴 내부에서 사이버 범죄를 주목한 때는 1993년이다. 그러나 이때는 인터폴 요원 중에도 컴퓨터에 밝은 사람이 많지 않아 사이버 범죄를 다루는 기초 입문서부터 만들었다. 당시 인터폴 내부에서 시작한 컴퓨터 교육은 사이버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무엇인지와, 이 증거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알리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전문가용 입문서를 사용하는 사이버 교육 과정이 있으며, 미국 서버(AOL)와도 범죄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제2국이 일반 범죄로 분류하고 있는 범지 중에는 미성년자 성 착취․어린이 매춘이 있다. 이 분야의 담당자 아그네스 포리니어는 미성년자 착취 범죄에 지역별 특색이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은 남미나 아프리카에서는 주로 노동력으로 매매된다. 동유럽에서는 매춘업이나 포르노 업자에게 팔리고, 아시아에서는 섹스 관광의 노리개로 착취당하고 있다. 서유럽이나 북미에서도 어린이 성착취는 무시 못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NGO와 손잡고 미성년자 성 착취 실태 알려
인터폴이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는 주로 호주․일본․한국․중국 사람이 방콕에서 섹스 관광을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빈곤에 시달리는 부모들은 6~12세 남짓한 아이를 조직 범죄단에 팔아 넘기는데, ‘중간 모집책’역시 대부분 청소년이다. 따라서 섹스 관광을 근절하려면 복합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조직 범죄단뿐만 아니라 섹스 관광의 고객까지 처벌하는 방안도 그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아그네스는 전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섹스 관광이 발각될 경우 3~4년 징역을 살아야 한다. 빈곤 지역 청소년들은 조직 범죄단에 고용되는 중간 모집책일 뿐만 아니라 직접 어린이를 착취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을 지방자치단체가 재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인터폴은 지난 10년 동안 비정부기관(NGO)과 손잡고 미성년자 성 착취 실태를 알리는 작업을 벌였다. 미성년자 성 착취 범죄가 각국의 수사 기관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없을 만큼 뿌리가 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범지 예방을 통해 안전한 세계를 실현한다는 목적을 내걸고 각국 경찰의 협조 기구로 촐발한 인터폴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회원국의 법률 내에서 활동한다는 주권 존중 원칙이며, 또 하나는 정치 범죄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비정치성 원칙이다. 인터폴의 모태는 1914년 모나코에서 열린 제1회 ‘국제 형사 경찰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는 14개국의 법조계와 경찰 요인들이 모여 두 가지 문제를 논의 했다. ‘국제 범죄 기록 보관소’를 설치하고 ‘범죄인 인도 절차’를 표준화하자는 것이다. 그 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활동이 중지된 국제형사경찰회의는 1923년 오스티리아 비엔나에서 2차 회의를 갖고 ‘국제 형사 경찰 위원회’로 확대 발전했다. 이 위원회가 인터폴이라는 명칭으로 발족한 시점은 1946년. 유엔은 인터폴을 1971년에 정부간 기구로 인정해 국제적인 역할을 확인하고 1996년에는 옵서버 지위를 부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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