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혼의 해원 그린 대서사시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1.3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편소설 《혼불》1,2부 2권 펴낸 최명희씨

 작가 崔明姬(45)씨가 최근 한길사에서 펴낸 장편 《혼불》1,2부 4권은 1930년대 식민지 암흑기속에서 스러져가는 한 문중의 안팎을 그리고 있다. 그 문중의 안팎은 민족의 정신사와 풍속사를 간직하고 있는 ‘큰 저수지’이다. 작가가 거기서 그물질해 올린 것의 핵심은 민족정서의 원형질이며, 그 근원을 작가는 그리움과 해원의 눈길로 다가간다.

 《혼불》은 다름아닌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삶, 즉 한국역사의 가장 가까운 퇴적층이다. 불과 60여년 저쪽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꽤 아득해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60년 사이에 자리잠았던 엄청난 현대사의 결과를 작가는 ‘모국어의 급속한 해체’로 보고 있다. 모국어의 해체는 곧 민족정서의 변질이다.

 《혼불》은 그 문체, 빈틈없는 구성 그리고 사라져가는 민족정신과 풍속의 생생한 복원 등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차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소설의 미덕은 작가도 강조하고 있거니와 그 문체에 있다. “이젠 한국 소설도 문체로서 읽혀질 단계”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의 문체는 주술적이고 관증적이다. 그의 언어는 지시어가 아니다. 언어 스스로 지시하는 대상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살아 있는 언어이다. 톡특한 남원사투리의 질박한 대화 혹은 어떤 묘사는 판소리 가락에 자연스럽게 얹히는가 하면, 자연이나 우주에 관한 서술은 등장인물과 사건을 위한 보조수단이 아니라 당당하게 안간과 동격으로 놓인다.

 “스토리란 무엇인가”라고 작가는 반문한다. 사건의 배열이 스토리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소리와 향기, 빛에 관한 이미지, 자연과 우주와의 교감도 나에게는 중요한 스토리”라고 말했다.그는 문체는 곧 작가의 세계관이라고 확신하는 문체주의자인 것이다. 따라서 《혼불》을 사건의 진행에만 유의하는 기존의 독법으로 따라가다가는 이 작품의 절반을 놓치고 마는 셈이다.

 모두 5부 10권으로 예정돼 있는 《혼불》의 1,2부는 전남 남원 지방의 전주 이씨 종가의 몰락을, 주로 宗婦 3대의  시각에서 비추고 있다. 청상과부의 몸으로 종가를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과 며느리 율촌댁 그리고 갓 시집온 효원이 이루는 종부 3대의 수직구조를 중심축으로, 양반과 상민(천민)의 대립, 인간과 우주(자연)와의 갈등 혹은 친화를 그려내면서, 그 사이에 정신·풍속사를 들여놓고 있다. 결혼식과 장례식 사이에서 소용돌이치는 인간의 존재론적 운명과 봉건신분제의 와해로 대표되는 시대상이 어우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2부가 사대부의 정신사에 기울어져 있어서 민중의 세상에 등한한 것 아닌가라는 지적도 있다. 작가는 3,4,5부가 바로 그민중의 이야기라면서 “양반과 상민이 어우러진 인물”이 50년대 6.25직전까지 《혼불》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몰락한 양반은 물론 식민지 말기와 해방 공간 속에서 새세상을 희원하다 스러져간 민중의 삶의 굽이침과 그 서러운 넋에 대한 ‘해원굿’이 《혼불》인 것이다. 한 시대와 역사를 문학의 본령인 ‘언어와 꿈’으로 일구어낸 것이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80년 중앙일보 신춘문에와 81년 동아일보 장편공모에 당선, 문단에 나온 그는 지난 10년간 《혼불》에만 전념해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