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 官治금융에 ‘퇴장’ 경고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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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개방 앞두고 ‘서비스 확대’ 절실…외국銀 ‘소비자 마케팅’ 앞서

 

 

  “저도 대출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내용의 이색적인 신문광고를 보고 주택구입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미국은행인 씨티뱅크의 서울지점을 찾았던 金起完씨(36)는 입금하러 온 고객에게보다 더 친절하게 대하는 은행의 서비스에 놀랐다. “은행 문턱이 이렇게 낮을 수 있는가”라며 한국 은행들과 다른 그들의 서비스에 감탄했다. “바쁜 대출계 직원을 붙잡고 실랑이할 필요도 없었고, 고객 대우를 확실히 받은 것이 무엇보다도 인상에 남는다”고 서울의 한 중소기업체에서 차장으로 일하는 그는 말한다.

  “공정한 대출” “조건없는 대출”의 기치를 내걸고 89년도에 선보인 씨티뱅크의 ‘내집마련 대출’은 은행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크게 성공했다. “시장조사를 철저히 하고 금융상품을 다른 은행과 차별화하는 마케팅 전략이 크게 주효했다”고 이 은행의 서울본점 이흥주 마케팅 부장은 평가한다.

  본격적인 금융시장 개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면서 국내 은행이 외국 은행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내 은행들도 이제는 씨티뱅크와 같은 전략적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 은행들에게 아직 익숙지 않은 금융 마케팅은 선진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외국 은행과의 경쟁에서는 물론이고 국내 은행 간의 경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경영요소로 부각될 전망이다.

  “금융시장 개방은 은행 간의 경쟁을 유도해 고객서비스와 금융상품 마케팅이 은행의 사활을 좌우하는 주요한 경영과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외환은행 조사부 趙泰玄 과장은 자신있게 말한다. 은행 마케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의 금융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통상압력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관치금융의 틀 속에서 안주해온 국내 은행들이 벌써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한다.

  3월10일 워싱턴에서 제4차 한미금융협의회가 있은 후, 정부는 3월27일 1단계 금융시장개방 일정(도표 참조)을 발표했다. 금융산업계의 체질변화가 더이상 지연될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李長榮 책임연구원은 “미국이 요구하는 개방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한국측이 발표한 일정에 대해 “미국 재무부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다”고 직접적인 논평을 유보했으나,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이 금융시장 개방의 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한 통상압력의 고삐를 더 당길 것으로 보고 있다.

 

91년 순익, 美 은행 37% 국내 은행 3% 증가

  미국과의 협상뿐만이 아니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금융시장 개방이다. 이장영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개방시기가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흑자기조가 정착된 이후에 개방해야 금리에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이 실물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추측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쟁력 있는 은행의 성숙한 금융서비스가 필수불가결하다. 개방을 맞아 완전경쟁이 예고되는 가운데 한국의 은행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시각을 바꿔 기업금융 위주에서 소비자금융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과장은 주장한다. 금융산업이 자유화되면 금리자유화와 다양한 금융기관의 설립이 뒤따른다. 따라서 기업은 그만큼 자금의 조달창구가 다양해지고 상대적으로 은행에 대한 자금의존도가 낮아지게 된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개인부문의 예금비중이 커지게 될 것이다.

  국내은행의 개인저축 비중은 꾸준한 증가추세에 있다 (아래쪽 도표 참조). 75년 40.55%에 불과했던 총예금의 개인예금 부문이 90년에는 60.4%로 성장했다. 정년후 노후보장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개인 예금은 더욱 증대될 것으로 금융계에서는 본다. “개인예금은 앞으로 금융기관 운용자금의 주요 원천이 될 것”이라고 조 과장은 그의 저서 《은행 마케팅》에서 전망하고 있다. “개인부문의 예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은행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70년대 후반이후 기업이 주식시장 상장이나 증자를 통해 직접 재원을 조달하는 비율이 높아지자 은행은 소비자 금융 부문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미국은 은행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일본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도시 은행들이 사업성 있는 소매금융시장 확보를 위해 고객 세분화와 서비스 확충에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에 아쉬운 말 하기 싫다”

중·상류층 외국 은행에 몰려

  씨티뱅크와 같은 미국 은행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성공한 것은 현지 은행들의 열악한 서비스와 뒤떨어진 경쟁력에 힘입은 것이다. 씨티뱅크의 경우 아시아 지역에서 연 평균 30%의 자산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미국내 미국은행들의 91년도 평균 총자산수익률은 0.6% 수준인 반면 한국내 미국 은행들의 총자산수익률은 1.5% 수준이라고 이장영 책임연구원은 말한다. 미국 은행들에게 한국시장은 매력적인 투자시장임이 틀림없다.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만큼, 2백40조원 규모의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공략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에는 13개국 52개 은행이 70개 지점을 갖고 영업중이다. 6월말로 회기가 끝나는 13개 일본계 은행을 제외한 외국 은행 국내지점의 91년도 당기 순이익은 90년도에 비해 36.9%나 증가했다. 반면 91년도 국내 은행의 당기 순이익 증가폭은 겨우 3.3%에 그친 수준이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은행 중 일반 고객을 상대로 여·수신 업무를 하고 있는 유일한 외국 은행인 씨티뱅크는 한국의 중상류층을 겨냥한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은행과 서비스 대상을 차별화함으로써 적은 운용자금으로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같은 씨티뱅크의 전략은 이 은행의 對아시아 마케팅 전략과 기본적으로 궤를 같이하고 있다. 씨티뱅크를 비롯한 미국계 은행들은 완전경쟁인 미국시장에서 닦아온 선진금융기법으로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의 ‘여피’(젊은 전문직업인)들을 집중 공략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씨티뱅크의 구좌수는 86년 1백만에서 올해는 5백만으로 신장될 전망이다.

  김기완씨처럼 아시아의 여피들은 설사 이자율이 조금 높더라도 대출이 손쉽고 절차가 까다롭지 않은 은행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이 이자율은 싸지만 아쉬운 소리하기가 싫어 씨티뱅크에 온다고 말하는 고객이 많다”고 이부장은 말한다. 한국은 물론 대만 태국 할 것 없이 씨티뱅크와 같은 미국계 은행들이 아시아에서 뛰어난 마케팅 전략과 고객서비스로 고객수를 급속히 늘려가고 있는 것은 개방시대의 한국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그는 지적한다.

  외국 은행의 한 중견간부는 “고객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한국의 은행들이 더 절감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한국의 은행은 서비스를 판매하는 상업기관이라기보다는 정부의 금융정책을 집행하는 공공기관적인 성격을 더 많이 갖고 있어 이런 문제를 안게 된 것이다.

  높았던 은행의 문턱은 금융시장 개방속도만큼 빨리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개방은 겉으로는 외국 금융기관들에게 한국의 시장을 열어주는 조치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한국 은행 외국 은행 가릴 것 없이 금융기관 간의 치열한 서비스 경쟁시대가 온다는 의미이다. “이미 개방은 시작됐다”고 말하는 신한은행의 姜碩鎭 종합기획 과장은 “은행이 이제는 고객 한사람 한사람에게, 그리고 대중 속으로 파고들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금융시장 개방은 지난 30년간 은행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보호가 공존해온 관치금융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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