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 드러난 ‘율곡’비리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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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6공 군 실세 수뢰 적발…“십수년 관례, 뿌리도 밝혀야”

해․공군과 달리 인사비리 수사에서 비켜가는 듯했던 육군에 전혀 다른 분야에서 된서리가 내리고 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방예산이 사용되는 군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과 관련된 비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것이다.

 지난 4월27일부터 시작한 감사원의 특별감사는 이종구․최세창 전 국방부장관, 김종휘 전 청와대외교안보 수석 등 6공 군실세들을 수억원대의 뇌물 수뢰자로 줄줄이 엮고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전직 국방장관은 물론 각군 참모총장에 이르기까지 수십명의 군 간부와 출국금지 및 소환조처를 당하게 됨으로써 육군은 창군 이래 가장 큰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 4월말 율곡사업 감사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제대로 비위를 적발할 수 있겠는가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군주변에서는 율곡사업이 고도로 전문적인 분야인 데다 길게는 십수년 걸렸던 사업 성격상 ‘반짝 감사’로 그 비위를 캐낸다는 것이 무리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산더미 같은 자료를 검토하는 데만도 수개월은 걸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같은 주변의 예상을 일축하기라도 하듯이 43명의 감사요원에 암행 감찰반인 5국 요원들까지 동원해 율곡사업 감사에 박차를 가했다. 실지 감사에서 자료 추적만으로 비위를 적발하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관련자들이 예금계좌를 역추적해 들어가 비위를 적발해내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감사원은 그 결과 비위 혹은 부당한 간섭행위 등이 적발된 사람이 이상훈․이종구․최세창씨 등 전직 국방부장관과 2성장군 이상 군 고위 실무급 30여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특히 예금계좌 추적조사 과정에서 일부 전직 군 수뇌부의 경우 상당액이 6공 말기인 92년 말에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이 돈이 율곡사업과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6공화국이 정치자금 처리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별도 조사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6공화국 이후 율곡사업에 관계했던 군 인사는 거의 전원이 비위 혐의자로 지목된 셈이다.
 감사원은 율곡사업 감사 결과가 이처럼 6공 군부 실세에 몰리게 된 것은 5공화국과 6공화국이 군을 통제하는 형태가 다른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5공때는 전력증강사업에 대한 청와대의 직접 통제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로비자금도 직접 청와대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6공 들어서는 굵직한 분야만 청와대에서 관여하고 일반적인 것은 국방장관과 각군 총장의 재량권이 허용됨으로써 미국 방산 업체의 로비가 이들에게까지 다양하게 작용했다.

군 구조 재편에 큰 영향 줄 듯
 감사원은 실지감사 및 예금계좌 추적과 별도로 지난 5월 말부터는 율곡사업으로 들여온 외제무기들에 대한 성능검사도 벌이고 있다. 전방 부대에서 행하는 성능검사에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3․5․6공화국을 거치면서 군내 사정기구의 감독만 받아오던 무기도입 문제가 문민정부를 맞아 최초로 ‘문민 감사’에 걸려듦으로써 큰 홍역을 치르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 율곡사업 감사는 현재의 군 수뇌부가 관련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군 구조의 재편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권영해 국방부장관이 국방부 차관으로 율곡사업 심의 책임자로 있었던 6공 당시의 군 수뇌부가 줄줄이 감사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아 감사원은 권장관에 대해서는 조사 결과 아무런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안의 성격상 권장관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군 주변의 반응이고, 국방부도 이 점에 당혹해 하는 모습이다.

일부 장교 “표적 수사는 곤란”
 현역 장교들은 과거 군부 실력자들의 비위 실태가 드러나는 데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면서도 ‘표적 수사’ 양상을 띠어서는 곤란하다는 견해이다. 율곡사업처럼 방대하고 복잡한 분야를 단 한달에 훑고서 몇몇 비위자만 골라내는 것은 표적 수사로 비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현역 장교들의 이같은 시각은 천문학적 규모인 사업의 성격상 떡은 청와대로 가고 떡고물은 군 수뇌부에게 갈 수밖에 없었는데, 떡고물을 챙긴 사람들만 적발해낸다고 보는 데서 나온다. 율곡사업 심의 과정에 참여해왔다는 한영관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율곡사업에서 무기도입 회사를 선정하는 것은 청와대가 맡는다. 또 보통 무기는 소요제기부터 도입까지 10년 안팎이 걸리기 때문에 최종 결재 과정에 적힌 돈은 10년 전에 이미 올린 것이다. 그 긴 과정을 파들어가지 않으면 더 큰 비리는 감춰진 채 마지막 결재자의 촌지 수수만 드러날 뿐이다.” 그는 이어 “우리군이 미국 무기상들의 검은 돈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 군수회사의 수법을 알고 막을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율곡사업 감사가 정치적 의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수년에서 십수년에 걸쳐 이뤄지는 무기도입 관례를 감안해 결재 및 집행 과정을 정확히 따지고 들어가 책임 소재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무기도입 과정의 검은 돈 수수뿐만 아니라 그렇게 도입된 무기가 적절한 제품이었는가를 판가름하는 작업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丁喜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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