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경주 너무 성급하다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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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8개월 앞인데도 여당이 ‘대권 경쟁’에 휩쓸려 정부는 혼란과 눈치보기 국회는 아예 기능정지이다.

  미국 대통령선거는 11월초에 실시된다. 2월부터 공화·민주 양당은 주별로 전당대회 대의원을 뽑는다. 이른바 예비선거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전당대회는 8월에 있다. 후보가 결정되면 약 3개월 간의 선거전이 벌어진다.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하원 해산으로부터 선거실시까지는 3주일 간의 선거기간이 있을 뿐이다. 불과 3주일 간의 짧은 선거운동으로 입법부를 구성할 뿐 아니라 국정의 최고 책임자도 결판난다. 선거에 이긴 당의 당수가 자동적으로 총리로 임명되니까 실로 값이 안드는 정권 창출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각제의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선거비용도 한 후보당 80만원 정도밖에 안 쓴다. 우리나라처럼 생사결단을 내는 집단적 대결이 아니라 관중 앞에서 멋있게 벌어지는 축구시합 같은 것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선거는 지루하고 시간이 걸리는 마라톤 경기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50개주 2억3천만의 인구에 인종·종교·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와 후보자의 정책을 주지시키는 과정이다. 선거기간이 석달이라 하지만, 50개주의 주요도시를 한번쯤 도는 데는 호히려 미흡한 기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선전·광고비 등이 막대하게 든다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미네소타주만한 크기밖에 안 된다. 텍사스주처럼 우리의 다섯배나 되는 주도 있다. 우리의 경우, 이른바 ‘대권’ 경쟁에 쏟는 시간과 돈과 정력은 분명히 과소비일 뿐 아니라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큰 장애물이 아닌지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선거 때 상·하 양원, 주지사와 주의 상·하 양원, 그리고 시장·군수 및 지방의회도 동시에 선거한다. 합리적이다.

 

영국은 선거기간 짧고, 미국은 모든 선거 한꺼번에 치러

  우리는 어떠한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기 바쁘게 ‘대권’ 경쟁의 불을 뿜고 신문·방송 등 모든 언론매체가 밤낮 안 가리고 온통 선거분위기로 몰아간다. 당장 대통령이 태어나는 듯한 흥분된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대통령선거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하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는 임기만료 40일 전에서 70일 전 사이에 실시하면 된다. 대통령 당선자와 대통령이 공존하는 힘의 공백기간이 짧을수록 좋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면, 대통령선거는 임기만료 40일 전에 실시되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면, 대통령선거는 임기만료 40일 전에 실시되는 게 이상적이다. 명년 2월24일이 노태우 대통령 임기만료일이고 보면 1월14일에 실시하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5년 전에는 12월16일에 실시되었다.

  금년 대통령 선거가 12월 중순에 있더라도 아직 8개월 이상 남았다. 그런데도 민자당은 5월 중순에 후보자를 선정하는 전당대회를 열기로 하고 당내 각 계파가 연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일단 후보가 책정되면 야당도 뒤따를 것이고 7개월 이상의 선거장기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한 주 크기밖에 안되는 비좁은 땅인데, 그렇지 않아도 민생 경제 남북 교육 사회 문제로 할일이 태산 같은데, 온나라가 대통령선거전으로 쉴새없이 소란을 피우자는 것인가. 인원 동원, 금력 탕진, 국론 분열, 국력 소모가 이이상 파괴적일 수 있을까.

 

‘후보’ 정해지면 7개월 이상 장기전으로 국력소모 크다

  이런 상태에서 행정이 제대로 진행되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국민 개개인이 차분하게 일할 수 있을까. 금년 초부터 시작된 국회의원선거전에 들떴던 마음인데, 이것이 끝나기가 바쁘게 대통령 선거전의 불길을 올린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그것도 정권에 도전하는 야당이 아니라 국가 통치를 책임진 집권여당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더욱 개탄할 일이다.

  덕분에 국회는 아예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명색이 3권분립의 나라인데 행정·사법 두 부만이 가동되고 있을 뿐, 입법부는 작년 12월 중순 문을 닫은 후 장기 휴회에 들어가 6월에 있을 제14대 국회 개원까지 기능이 정지될 것 같다. 민주·국민 두 야당은 임시국회를 열어 급한 민생경제를 따지고 3.24 총선거 때 저질러진 안기부와 군의 부정선거 혐의를 조사하고, 진행중인 남북문제를 알아보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대권경쟁’에 여념이 없는 민자당은 들은 체 만 체하고 언론매체 역시 민자당의 대권바람에 휩쓸려 국사의 선후완급을 가려내지 않고 있다.

  민자당이 우여곡절 끝에 5월19일에 대통령후보자를 뽑는다고 하자. 그 순간부터 권력의 중심은 당연히 대통령과 대통령후보자로 분산되고 눈치빠른 행정관리들은 양다리를 걸치는 등 권력의 누수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라꼴은 어찌될 것인가. 정말 나라를 안정기조 속에 발전시키자는 것인지, 아니면 혼란을 부채질하며 경제를 결딴내고 무정부상태를 자초하자는 것인지 정권 담당자들의 경망한 행동거지를 지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두 야당만은 후보자 결정을 선거실시 두달 전쯤으로 미루고 손을 잡아 ‘관권선거’ 시정, 경제 안정과 활성화, 남북관계 감독 등 일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권력 쥔 분들이 흥분하면 국민은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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