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돌 던질 처지 못된다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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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처 출입기자 ‘공짜여행’ 다반사…장·차관도 유관단체에 손벌리기 일쑤
 “돈을 받아 외유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왜 우리에게만 야단이냐. 고위 공무원들은 어떻고 또 한창 우릴 족치는 언론은 깨끗한가.” 


  의원 ‘뇌물외유’사건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던 지난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한 야당의원의 항변이다. 해외출장시 공식여비 외에 ‘가욋돈’을 받아쓰는 고위공무원이나 취재를 빌미로 무료해외여행에 ‘플러스 알파’(촌지를 의미)까지 챙기는 기자들을 겨냥한 볼멘 소리이다.


  장·차관, 심지어 국장급 등 고위공무원의 외유스케줄이 잡히면 비서나 직원들이 협회 등 유관단체에 “언제 어디로 떠난다”고 외유일정을 넌지시 알려 ‘가욋돈’을 준비시킨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노른자위’로 알려진 경제부처의 경우는 일개 사무관이 국내출장을 갈 때도 ‘가욋돈’을 챙기는 사례가 간혹 있다는 것이다.


상공부 장관도 특별회계자금 썼다
 최근 의원들의 여비보조로 물의를 일으킨 무역협회의 특별회계자금은 상공부 장관의 외유 때면 ‘가욋돈’으로 지출돼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출입기자들의 해외취재활동에도 1억5백만원이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협회 노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자금의 성격이 사실상 준조세라 협회 맘대로 쓸 수 없는 돈이다”라면서 “관련부처 등에서 이 돈을 맡겨둔 것처럼 갖다 쓰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외유보조의 ‘관행’에 대해 총무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식여비 외에 단 1원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다”며 교과서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경제계 한 소식통은 “경우에 따라선 업계에서 돈을 걷어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모그룹의 한 관계자는 “보통 협회가 그런 경비를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힌 뒤 “그러나 실제 그 돈은 해당 기업의 비서실 재무팀 또는 종합기획실의 대정부 업무담당자가 협회에 건네준 돈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물좋은’협회를 갖고 있는 부처로는 상공·재무·건설·농림수산·보사부를 꼽는다. 이 가운데에도 가장 ‘알찬’부처로 통하는 재무부는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전국투자금융협회 등 금고를 쥐고 있는 유관단체를 산하에 두고 있다. 특히 지난 89년 50억원의 정치자금을 조성, 당시 민정당에 헌납했던 증권업협회 역시 재무부 유관단체다. 농림수산부는 농협 축협 수협말고도 축산물유통사업단 마사회 어선협회 제분협회 등 굵직한 협회를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보사부도 약사회 병원협회 한의사협회 식품공업회 등의 산하 단체를 관장하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의 해외출장시 직급에 따라 ‘특호’를 포함해 모두 5등급으로 구분해 여비를 지급하고 있다. 한 예로 대통령이 뉴욕 런던과 같은 이른바 ‘가 등급’지역을 방문할 경우 일비, 숙박비, 식비를 합쳐 하루 5백31달러(약 37만7천원)를 받는다. 같은 기준으로 장관급은 4백18달러(약 33만5천원), 차관급은 3백15달러(약 22만3천원)를 받는다. 물론 이 돈은 규정에 따른 하루 여비이며 공식적인 행사 식사비용 등은 따로 나온다. “검소한 여행을 한다면 결코 부족한 경비가 아니다”는 게 여행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고위공무원만큼이나 ‘관행에 따른 특전’을 누리고 있는 직업이 각 부처에 출입하는 기자이다. 서울주재 한 서방특파원은 정부의 돈으로 해외취재를 하고 정기적으로 취재비(촌지)를 받는 한국기자들의 관행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는 처음 듣는 얘길 수 있으나 이 같은 무료해외여행은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에겐 ‘연중행사’에 속한다. 특히 경제부처 기자의 경우 타부처 출입기자에 비해 비교적 해외여행 기회가 많다. 반면 최근 외유케이스가 별로 없는 모부처 출입기자의 일부는 문교부가 주관하는 학생들의 동구권 연수코스에 다녀온 ‘꼴불견’도 연출했다. 더욱이 기자단이 단체로 해외취재에 나갈 경우 그들이 소속된 언론사가 영세해 지원을 못하게 되면 여비를 기자 스스로 해결토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기자는 해당 부처나 유관기관·기업에 개별적으로 손을 벌려 뒤늦게 말썽을 빚는 경우도 있다.


  ‘관행’앞에 법이나 윤리강령이 한낱 휴지조각이 돼버린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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