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安…司正…여론재판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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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과 수난으로 점철된 13대 국회
 한국의회사상 어느 때보다 강력한 民意국회로 출범했던 13대 국회는, 개원초 여소야대하에서 그 권능을 누렸던 1년간을 제외하고는 司正의 ‘칼날’과 언론의 ‘펜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근본책임이 구태를 스스로 벗지 못하는 정치인 자신에게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정치권을 향해 ‘칼날’의 서슬이 뻗칠 때면 으레 ‘펜끝’의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여론재판으로 몰고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각에서 일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공안정국하인 지난 89년 6월에 있었던 徐敬元 의원의 밀입국사건, 서의원이 수감된 6월27일에도 밀입북한 정치인이 서의원 말고도 더 있다는 미확인 보도가 줄기차게 뒤따랐다. 7월4일을 전후해 대부분의 일간지에는 88년 7·7선언의 공산권여행 규제완화조처 이후 공산권국가를 다녀온 모든 의원의 이름이 실려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건에 앞서 89년 3월초 《주간조선》의 ‘평민당 김대중 총재 유럽순방기’ 기사를 놓고 <조선일보>와 평민당이 벌인 ‘진흙탕싸움’은 언론과 정당이 정면으로 맞붙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세칭 ‘조·평전’이라 불린 이 사건은 <조선일보>의 ‘펜끝’공세와 평민당의 <조선일보> 불매운동이 맞서다가 법정소송으로까지 번졌다. 이 싸움은 같은 해 10월17일 양쪽이 소송을 취하함으로써 끝났지만, 얻은 것이란 국민의 정치와 언론에 대한 불신과 편견만을 자초한 것 외에는 없었던 셈이다.


  13대 국회 개원 뒤 잇따랐던 재선거, 보궐선거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각종 부정, 탈법이 무수히 벌어져 정치인과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더욱 경원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89년 4월에 치러진 동해시 재선거에서 후보자매수사건이 발생, 당시 徐錫宰 민주당사무총장과 공화당 후보 李洪燮씨가 구속됐으며, 같은해 8월14일엔 영등포을구재선거에서 羅雄培(민정) 李龍熙(평민) 李元範(민주) 高泳?(무소속)씨 등 4명의 후보가 모두 선관위에 의해 고발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2월 朴載圭 민자당의원이 농약관리법을 개정해주는 대가로 2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검찰에 구속됐다. 5월20일에는 李相玉 평민당의원이 국유림지를 사유림지와 바꿔치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2천만원을 받았다가 구속되었다. 이즈음인 5월10일 청와대 특명사정반이 구성되면서 내사대상에 다수의 정치인이 포함됐다는 소문이 돌아 정치권은 또다시 움츠러들었다. 


  지난해 12월 정기국회에서는 의원들이 세비를 29.4%를 올렸다가 언론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 뒤 22.8%로 낮추었다. 여야의원들은 의원회관 운영경비가 포함돼 인상률이 높아졌을 뿐 순수한 세비인상은 10.4%라고 항변했다. 민자당은 1월9일 순수세비인상분을 제외한 1인당 의원회관운영비 우편료 전화료 등의 인상분 42만원을 국고에 반납했다가 언론으로부터 “속보이는 짓”이라고 질타당했다. 한 야당의원은 “반론의 기회를 달라고 모 일간지에 요청했으나 이것마저 거절당했다”고 하소연했다. 13대 국회의 수난은 ‘칼날’과 ‘펜끝’의 맞바람 속에서 ‘뇌물외유’사건으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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