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의 ‘현대産 두뇌들’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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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출신 등 상·하위 당직자 1백20여명…“현대상선 사건으로 타격입었다”

  현대상선 탈세 부정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鄭夢憲 부회장(국민당 鄭周永 대표 5남)과 宋允材·朴世勇 전 사장을 구속할 방침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던 지난 7일 국민당은 침통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정대표 5남의 구속 방침은 개인적인 일로 차치한다고 해도, 이번 일로 인해 국민당 이미지가 흐려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특히 송윤재·박세용 두 전 사장은 5월 구성될 예정인 대통령선거기획단(이하 대선기획단)에서 중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져 국민당 관계자들의 충격 강도는 훨씬 컸다. 이와 관련, 한 핵심 당직자는 “사실 우리는 정보기관 앞에 벌거벗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송·박 전 사장이 대선 기획단의 핵심을 이룰 것이라는 정보가 흘러나가면서 사전에 우리의 전열을 흐트려놓으려는 기도가 이 사건과 연결되지 않았느냐 하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당 관계자들은 또 송윤재·박세용씨가 창당 이후 정대표의 특별보좌역을 맡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대표와 핵심 두뇌들의 연결고리가 자연스럽게 차단되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정대표 특보 중 사장 출신만 4명

  그렇다면 국민당 창당 작업의 실무를 맡았고 두뇌 역할을 한 ‘현대맨’들은 과연 누구일까. 물론 국민당 관계자들은 정대표가 제일가는 브레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정대표 자신이 솔직하게 시인하듯 국민당 창당은 사실 현대 임직원들의 실무작업이 뒤따르지 못했다면 그토록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낼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대건설을 비롯해 현대계열사의 임직원 중에서 국민당 창당에 참여한 임직원은 대략 20명선이고 일반 사무처 직원까지 포함다면 1백20명쯤 된다.

  현대 계열사 사장 출신 중에서 정대표 특보를 맡았던 사람은 모두 4명으로 송윤재(조직·홍보)·박세용씨, 丁璋鉉 전 금강개발 상장, 崔秀逸 현대중공업 사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중 최사장은 현대중공업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등 경영관리 능력이 높게 평가받아 현대 복귀에 이론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박세용씨는 조직담당 특보를 맡았는데 총선 과정에서 사무처 전방을 관장했다. 대선기획단 본부장에 내정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현대상선 사건에 연루돼 앞으로의 거취가 불투명하게 됐다. 그는 연세대 상대를 나와 현대상선과 현대종합상사 사장을 거쳤다.

  자금담당 특보를 맡았던 정장현씨는 정대표의 신임이 상당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국구 순번 7위로 이번 총선에서 당선됐다. 중앙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현대건설 전무를 거쳐 금강개발 사장을 지냈다. 정대표에게 직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5월중에 단행될 예정인 국민당 당직개편에서 사무부총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에 입사하자마자 비서실 발령을 받아 17년째 정대표만을 모신 李丙圭 비서실장 역시 정대표에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으로 꼽힌다. 현대 시절에는 냉전시대의 크렘린궁으로 비유될 만큼 입이 무겁기로 정평이 났으나 당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부터는 기자들로부터 “많이 개선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실장은 서울고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이들 특보와 현대 출신 당직자들은 현재 모두 당직 사직서를 제출해놓고 있는 상태이다. 총선이 끝남에 따라 이들의 역할이 일단락된 셈이고 국민당도 4월 한달 동안 대대적인 조직정비를 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국민당은 일단 현대 사람은 제 위치에 원대복귀 시키고 새 인물을 영입해 사무처를 구성한다는 방침 아래 대수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민당 창당의 모든 실무를 총괄했던 전초기지는 현대그룹 명예회장실 직속의 문화사업연구실, 문화실의 史聖文 이사대우가 기획을 , 金建 부장이 정책 부문을 담당해 모든 작업을 해왔다. 이 두 사람은 창당작업을 마친 후에도 계속 당에 남아 총선을 치르는 데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사성문씨는 당 조직국장을 거쳐 당내에 조직강화특위가 생긴 다음에는 유세지원반장을 맡았다. 사씨는 대구 영남고와 전북대 상대를 나왔다.

  김건씨는 당 정책실장을 맡아 이번 총선의 화제가 됐던 정책광고 시리즈를 개발해냈다. 그러나 김건씨는 “총선에서 관심을 끌었던 아파트값 인하정책과 금리를 내리겠다는 문제는 정대표가 직접 아이디어를 낸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정대표가 정당을 만들기 전에 구상했던 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에 내정됐던 인물로 부산고를 나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산업은행 조사부에서 근무하다 77년 9월에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국민당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은 이실장 이외에 2명의 차장, 2명의 직원과 2명의 여비서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일의 성격상 모두 현대 명예회장 비서실에서 그대로 옮겨온 사람들이다. 주로 대내 업무를 맡은 金仁載 차장은 현대건설 해외업무부에서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는데 동대부고와 한국외국어대 서반어과를 나왔다. 정대표를 수행하는 李東浩 차장 역시 현대건설 출신으로 홍대부고와 서강대 정외과를 나왔다.

 

‘현대 기질’ 당 체질로 바꾸는 게 급선무

  이처럼 국민당의 현대맨들은 상위 당직자부터 하위 당직자에 이르기까지 주로 현대건설 출신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건설이 모체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정대표 자신이 ‘건설 일을 한 사람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당내에 있는 많은 현대맨들이 당을 떠나 원대복귀한다 해도 ‘현대 기질’을 하루빨리 정당 체질로 바꾸는 것이 국민당의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핵심 관계자는 “당내 많은 사람들이 월급쟁이 기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은 기본적으로 이념집단이어야 하고 정치 지향성이 강해야 한다. 체질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현대 기질을 어떻게 국민당 기질로 변화시키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국민당의 진로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현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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