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해 자연 환경을 팝니다”
  • 호주 태즈메이니아주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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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태즈메이니아주 ‘녹색 관광’으로 재미…자연보호.관광 두 마리 토끼 잡아

국립 공원, 자연보호 지구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지역 내의 동식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입장객들의 흡연은 철저히 금지된다. 야영중 환경을 파괴하거나 오염시키는 일도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당국이 책임져야 한다. 관광객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버린 쓰레기는 철저히 수거해야 한다. 특급호텔 화장실에조차 일반 화장지와 함께 ‘회수한 재생 용지로 만든 것입니다’라는 설명이 붙은 재생지가 나란히 결려있다.

 관광은 일상의 제약에서 해방돼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라는 통념이 일반화한 우리에게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관광 규칙들이다. 이런 규칙을 지키면서까지 관광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 또 세게 각국이 관광객을 ‘모시기’ 위해 별별 묘안을 다 짜내는 판에 이런 규칙을 감히 강요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호주의 태즈메이니아주는 이런 까다로운 규칙을 고수하며 관광객들을 불러모은다. 호주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태즈메이니아는 총면적 6만8천3백31㎢에 이르는 광활한 섬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이라고 불릴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이 지역에는 마운틴 필드 내셔널 파크, 크래디 마운틴, 포트 아서, 서든 폴 에리어 등 유엔이 지정한 ’환경 보전 지구(World Heritage)'가 널려 있다.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많이 ‘인류의 유산’을 간직한 곳으로 꼽힌다.

시민들이 구한 강이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무공해인 깨끗한 환경과 풍광을 관광객에게 상품으로 제공하는 대신, 이 지역의 환경을 원형 그대로 보전하는 일에 협조해 달라는 것이 태즈메이니아주 관광 정책의 기조다. 이곳 관광청 관계자들은 이런 정책 기조를 ‘그린 투어리즘(Green Tourism)’으로 설명한다. 태즈메이니아의 그린 투어리즘에는 먼저 경제 불황으로부터의 탈출구를 모색한다는 경제적 측면이 강한 작용하고 있다. 광활한 국토에 풍부한 자원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해온 호주 경제는 주력 산업인 농업⋅임업⋅광업이 사양 산업으로 전락하면서 몇 년 전부터 심각한 불황 국면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호주 정부와 민간이 눈길을 돌린 것이 관광 산업이다. 호주의 경제학자들과 정부 관리들은 한결같이 호주의 구조적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은 관광 산업뿐이라고 공언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 2∼3년 사이에 호주의 관광 산업이 비약적인 성장 추세를 보인 것도 정부와 민간의 끈질긴 관광 유치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즈메이니아 역시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관광 산업 붐에 편승하기 시작했고,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무공해 자연 환경을 전략 상품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태즈메이니아주 관광청 자연관광부의 제인 폴리 기획상담역은 “우리는 깨끗한 환경과 자원을 가장 강력한 관광 자원으로 여긴다. 오염 없는 관광을 슬로건으로 내걸로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지역의 그린 투어리즘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환경 보전을 위해 싸워온 시민 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그 과정에서 축적된 환경운동가들의 영향력이 바로 그것이다. 총인구 50여만 명밖에 안되는 태즈메이니아 지역에서만 봅 브라운, 크리스틴 밀, 게리 베이츠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환경 운동가들이 배출됐고, 이들을 비롯한 한경운동가 5명이 주 하원에 진출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태즈메이니아 중심부를 관통하는 고든-프랭클린 강 자체가 치열한 환경 운동의 소산으로 꼽힌다. 70년대 중반 태즈메이니아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프랭클린 강에 수력 발전소를 세우려는 주 정부와 하이드로 엘렉트릭사에 맞서 ‘강을 구하자’는 슬로건 아래 저항 운동을 펼쳤다. 댐 건설이 강은 물론 주변 생태계도 파괴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호주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운동은 거리 행진, 스티커 부착같은 평화적인 행동에서부터 통나무에 자기 몸을 묶고 불도저 앞에서 연좌농성 벌이기, 강 위에서의 고무 보트 행진 같은 육탄 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됐다. 저항 운동 과정에서 1천2백명의 시민이 불법침입죄로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로 시민들은 자연을 지키는 일에 헌신적으로 몸을 던졌고, 83년에 이르러 댐 건설은 완전히 백지화 됐다. 그 결과 이 강은 유엔이 지정한 ‘인류의 유산’ 목록에 등재되기에 이르렀고, 현재는 태즈메이니아가 가장 자랑하는 관광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이같은 경험과 그 과정에서 축적된 시민의식, 영향력은 자연히 환경운동가들이 태즈메이니아 관광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그린 투어리즘의 또 다른 맥락이다. 크리스틴 밀은 평범한 가정주부로 프랭클린 댐 저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지금은 태즈메이니아 녹색당 당수이자 주 하원의원으로 변신한 환경운동가. 그는 “댐을 저지한 우리의 행동은 완벽하게 옳은 것이었다. 그 강을 그대로 살려 놓았기 때문에 호주에서도 손꼽히는 자연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관광객을 불러들이면서도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매우 신경 쓰고 있다”라고 말한다. 역시 환경운동가이자 대학교수인 게리 베이츠 하원의원도 “사양 산업에 매달려온 태즈메이니아가 살아남은 길은 공기에서부터 과일 채소에 이르기까지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파는 길밖에 없다. 경제를 위해서도 한경 보전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단순히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환경운동 경험과 역사까지 ‘상품’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도 있다. 태즈메이니아의 환경운동가들은 내년에 열리는 세계환경대회를 이곳에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세계 규모의 대회가 이곳에서 열리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 강화와 함께 태즈메이니아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리라는 판단에서 주 정부와 의회까지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개발한 환경 보전은 종종 상충된 채 갈등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멕시코의 한적하고 조용한 어촌이던 푸에르토 발라르타는 60년대초 영화 <이구아나의 밤> 촬영지로 세상에 알려진 뒤 순식간에 쓰레기 더미 도시로 변하고 말았다. 환경운동가 장미셀 쿠스토는 관광지 개발이 황폐화와 지역 하부구조의 붕괴를 몰고온다는 점을 경고(≪시사저널≫ 제 188호 참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환경 보전과 관광산업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쫒는 태즈메이니아의 그린 투어리즘은 눈여겨볼 만한 시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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