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과 사랑‘ 진지한 함수 풀이
  • 이세용(영화평론가) ()
  • 승인 199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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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라잉 게임>
감독 : 닐 조던
주연 :스테판 리, 제이 데이빗슨

퍼시 슬레지가 부르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가 흘러나오며 시작되는 <크라잉 게임>은 그렇다. 바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몸에 따른 性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영화이다.

 닐 조던 감독의 이 작품은 북아일랜드 공화군(IRA)의 테러리스트(퍼거스)가 죽은 인질의 애인(딜)을 찾아가 사랑하면서 겪는 혼란과 갈들을 통해 인종과 충성심, 특히 性에 관한 오래된 관습에 회의를 품는다.

 닐 조던 감독은 퍼거스와 여자 테러리스트(쥬드)와의 관계를 통하여 이성 간의 사랑이 평화보다는 오히려 전쟁의 감정에 더 가까운 것을 역설한다. 또한 인질의 전 애인인 딜과의 만남을 통해 남과 여 사이에서만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경천동지의 순간을 제공한다. IRA 대원인 퍼거스는 아주 난처한 상황과 맞닥뜨리는데, 그것은 딜의 몸과 마음(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사랑의 대상으로 異性의 존재가 필수적인 것인지를 진지하게 따지기 시작한다.

 <크라잉 게임>의 뛰어남은 이 야릇한 러브스토리가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면서도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한 남자(퍼거스)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분명한 여성’ 쥬드와 한 남자의 삶을 지켜주는 애매한 ‘여자’ 딜을 대비시키며 어떤 관계가 인간다운 삶에 더 기여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라고 여겨지는 장면에서, 애인인 딜의 정체를 알게 된 남자는 불에 덴 듯이 놀라 구토를 한다. 물론 딜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딜의 감정과 행위는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숙명적’인 것이므로 그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일 뿐이다.

 이 작품은 인종 편견과 신념에 찬 테레리즘, 성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지만 무엇보다 ‘성과 사랑’의 대목에 초점을 맞춘다. 딜은 인질로 잡혔다가 죽은 흑인 병사, 동성연애자, 그리고 주인공인 퍼거스와 차례로 만난다. 이 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닐 조던은 △섹스와 사랑이 함께 이뤄진 사이 △섹스는 있지만 사랑이 없는 사이 △섹스는 없지만 사랑이 있는 사이를 제시한다. 여기서 사랑은 인간애라고 불러도 무방한데, <크라잉 게임>은 성에 구해 받지 않는 ‘사랑 이야기’로 사랑의 범위와 영역을 확장한다. 하지만 동성 간의 사랑을 우정이라고 표현하는 입장에서는 애정에 관한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창조적이라고 생각도지 않는다. 이 세계에 동성연애자가 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딱하고 불행한 현상일 뿐이다. 섹스는 이성하고만 어울러야 한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李世龍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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