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인맥은 ‘세대교체기’
  • 편집국 ()
  • 승인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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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절충’시대는 3공으로 마무리…일본은 전후세대가 정계 실력자로 등장

  과거 공화당정권의 대일외교 스타일은 막후절충을 중시한 밀사외교였다. 대일 막후절충의 책임자였던 이병희씨가 정초가 되면 일본 정계의 실력자들에게 빠짐없이 세배를 다녔다는 얘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전두환 정권이 등장하면서부터 한때 이러한 막후외교는 자취를 감췄다.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가 일자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5공이 국내 정책뿐만 아니라 외교분야에 있어서도 공화당정권의 정책을 무조건 거꾸로 실시할 때였다. 그러나 그러한 정면외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일본의 파벌정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민당의 한 파벌, 즉 정권파벌과의 거래만으로는 대일외교가 진전되지 않는다는 상식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6공이 들어설 무렵 상황은 크게 변했다. 한국이 민주화되고 경제협력의 규모가 줄어들자 한·일교섭은 이른바 ‘떡고물’조차 만질 수 없을 만큼 맑아졌다. 즉 이전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대일 외교분야가 달걀도 낳지 못하는 씨암탉으로 변한 것이다. 당연히 한·일의원연맹 같은 단체는 유명무실해졌다. 작년 일본을 방문한 한·일의원연맹의 한 간부의원이 기자에게 “오자와  이치로(자민당 전 간사장)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정도이다.

  변한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한의원연맹이 철새 정치가들이 모이는 사교클럽으로 전락된 것도 똑같으며 일본 정계의 친한 인맥이 유명무실해진 것도 비슷하다.

  과거 대한외교에 큰 영향을 끼쳤던 기시-후쿠다-아베 인맥은 아베의 사망으로 중심을 잃었다. 대신 등장한 일·한의원연맹회장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는 침묵의 정치가이다. 또한 일본은 걸프전쟁 이후 ‘대국외교’를 지향하는 나라로 변했다. 대미외교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등 대 아시아 외교에 있어서 일본은 자기 목소리를 크게 하고 있다.

  한·일간의 이러한 상황변화로 과거의 막후절충을 중심으로 한 ‘한탕주의 외교’는 발디딜 틈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인맥이 전혀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 6공의 대일창구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민자당과 청와대, 그리고 외무부이다.

 

일본 신문 “청와대에 지일파가 없다”

  민자당에는 와세다대학을 나온 박태준 최고위원, 〈조선일보〉주일특파원을 지낸 김윤환 전 사무총장 등이 포진해 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으로 있는 박위원의 일본 창구는 주로 정계의 와세다대학 인맥, 동문인 다케시타·가이후 전 총리 등이 그의 창구인데 포항제철 사장과 한·일경제협회 회장을 지낸 탓으로 일본 재계에도 굵은 줄을 대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의 일본 창구가 대일외교에 큰 공적을 남긴 것은 거의 없다. 재작년 5월의 노태우 대통령 방일 때의 일왕 사죄문제, 지난 1월의 미야자와 방한 때의 정신대문제에 있어서 그들의 활약은 미미했다. 또 그들이 대일 무역불균형 시정, 기술이전 문제에 있어서 어떤 기여를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민자당 내 파벌정치에 휩쓸려 그들은 대일 인맥관리에 전념할 여유가 없었다.

  최근 〈산케이신문〉은 “청와대에 지일파가 없다”비꼬았다. 외교담당인 김종휘 보좌관이 미국유학파이고 청와대에 일본말을 아는 스태프가 손에 꼽힐 정도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대일정책이 강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점은 일본도 비슷하다. 정계의 세대교체가 진행됨에 따라 지한파 인맥의 정계은퇴가 눈에 뜨게 늘고 있다. 이른바 ‘전전세대’가 사라지고 한국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전후세대’가 정계 실력자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 강경파로 알려진 오자와 전 간사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이러한 전후세대정치가를 중심으로 한 한국 인맥 형성이 긴급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이들이 지향하는 대국외교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신사고 대일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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