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걸프위기엔 절약이 명약”
  • 도쿄.채명석 통신원 ()
  • 승인 199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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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에 기업들이 앞장…줄서기·사재기 없어
 “등유, 가정용 세탁제의 재고는 많이 쌓여 있습니다.” 걸프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아사히신문>은 1월19일자 조간의 경제면 머리기사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1차 석유파동 때와 같이 ‘화장지 사재기 소동’이 또다시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17년 전에 사재기, 새치기 인상 등을 일삼아 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기업들이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소비자 불안의 진정작업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보도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최대의 가정용 생필품업체인 가오(花王)는 사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그는 “걸프전쟁이 확대되어도 당분간 세탁제 수급전선에 이상이 없다”는 점을 되풀이 강조하면서 자기 회사의 생산능력이 연간 수요량의 1.5배나 된다는 자랑까지 덧붙였다.  석유파동을 천재일우의 축재기회로 삼아왔던 석유업계도 이번에는 ‘순한 양’으로 변신했다. 한파의 내습으로 등유수요가 급증하는 경우에도 “증산과 비축분의 방출로 소비자 여러분의 추위 걱정을 덜어주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한산한 ‘전쟁영향’ 문의센터
 이러한 민간기업의 선무공작이 주효했던지 개전 이후 일본 각지에서 사재기·줄서기 소동이 벌어졌다는 뉴스는 아직 없다. 또 이 같은 소동을 염려해 개전직후 통산성이 개설한 ‘전쟁영향 110번’이라는 소비자 문의센터도 파리를 날리고 있을 만큼 한산하다.

  개설 첫날 이 센터에 걸려온 전화는 모두 23통. 그 문의내용은 “근처의 슈퍼마켓에 화장지가 얼마 남아 있지 않더라” “옆집 사람이 화장지를 미리 사두라고 하던데 정말 그래야 하느냐” 등 대개가 화장지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일본정부는 개전 이후 이러한 물가 진정국면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에 편승한 새치기 인상 등은 철저히 배제할 방침이다. 걸프전쟁의 경제적 충격에 대해 3단계로 대비책을 수립해놓고 있는 일본정부는 우선 그 1단계인 물가대책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물가상승의 도화선이 될 석유제품의 가격동향에는 엄중한 감시망을 펴놓고 있다. 경제기획청은 석유제품의 새치기 인상을 방지하기 위해 월1회 실시하던 가격동향조사의 빈도를 월2회로 늘릴 방침이다. 또 도쿄都는 개전직후 1백여개소에 달하는 주유소의 소매가격을 일제히 점검, 새치기 인상 여부를 규명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걸프전쟁의 장기화, 유전파괴 등으로 석유수급이 급격히 어려워지면 2단계로 석유수급대책을 발동할 예정이다. 일본정부는 지난 17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비축방출 결정에 따라 민간석유회사의 비축의 무량을 오는 2월말까지 82일분에서 78일분으로 감축하는 조처를 내렸다. 또 실제 민간비축량 총량은 작년 11월말 시점으로 88일분에 달하고 있기 때문에 당면의 석유수급에는 큰 걱정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비축완화 이후 또다시 비축완화 조처가 취해질 때에는 각 가정과 기업에 대해 강력한 에너지절약 대책을 요청할 예정이다.

  일본정부는 작년 8월 걸프위기가 발생하자 2차 석유파동 이후 11년만에 에너지·자원절약대책추진위원회를 열고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으며 10월에도 ‘동계 에너지절약 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은 △ 난방온도는 20℃ 이하로 할 것 △ 창가 등의 전등을 3분의 1 정도 소등 할 것 △ 민간기업은 주2 휴일제, 연속휴가 등을 추진할 것 △ 심야 텔레비전방송, 심야영업 등의 시간단축 검토를 요청한다는 것 등 10항목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개전직후 소집된 차관급 회의에서는 이 동계대책이 재확인되었을 뿐 새로운 추가사항은 없었다. 당분간 석유수급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서였다. 석유정세에 대한 이런 낙관적 관측은 일본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경제전문가들 사이에도 널리 정착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비관적인 관측도 없는 것은 아니다. 유조선의 걸프내 항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 유가는 일시적이기는 해도 40~50달러, 최고 60달러 대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일본정부는 세 번째 단계인 법적 강제조처를 발동할 예정이다. 중동지역에 대한 석유의존 비율이 72%,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석유수송 의존도가 50% 이상인 일본의 여건상 1차 석유파동 때와 같은 강권발동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다.

  “에너지절약이야말로 최상의 에너지자원이다.” 결국 이런 에너지절약 체질이 정립되어 있는 일본경제가 걸프전쟁의 충격을 제일 먼저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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