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ㆍ비관 갈린 대전엑스포
  • 대전.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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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앞두고 “1조원 돈잔치”비판 … 조직위선 “생산유발 효과 3조원”

서울 마포구에 사는 ㅈ씨는 지난 5월 31일 민방위 훈련을 받다가 깜짝 놀랐다. 강사로 나온 서울시의 한 고위 공무원이 오는 8월7일부터 3개월간 열리는 대전 엑스포를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 공무원은 민방위 대원들 앞에서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1조원이나 쏟아붓는 것은 사치스러운 전시행정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정부출연 연구소나 대학 연구소를 지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정부 대변인인 吳??煥 공보처장관은 국회에서 새 정부라면 대전 엑스포를 유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ㅈ씨는 올림픽 못지않게 큰 행사가 왜 찬밥 신세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의아해 했다.

대전엑스포조직위원회(조직위)에서 일하는 정규 직원 중 한시적으로 채용한 여직원을 뺀 5백50명은 정부 부처와 시ㆍ도 및 공공기관에서 파견됐기 때문에 일반 국민도 아닌 공직 사회에서 엑스포 비판론이 나오는 것을 특히 서운해 한다. 조직위에서 전시 업무를 총괄하는 金大錫 과장은 “공인이 공식석상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엑스포를 반납해 국제적 망신을 사지 않을 바엔 끼얹는 대신 적극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정부지원 시들, 주최측 애태워
상공자원부에서 파견 나온 국제국 배성기 부장은 “주말부부가 되어 밀린 빨래를 싸들고 다니는 등 생활이 불편하지만 엑스포 파견 근무는 앞으로 공직생활을 하는 데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라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엑스포에 대해 부정적인 말이 들리면 신이 안난다고 말했다. 외무부 출신 李 亮 사무국장은 “대통령이 엑스포가 잘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누구 말이 옳겠는가 개회를 앞두고 흠만 잡으면 얻는게 뭐가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1조원이나 들여 세계 박람회를 열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론에 대해 조직위측은 엑스포를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대변인실 김은섭 보도과장은 “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엑스포에서 예상되는 국내 생산 유발 효과는 3조원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대전 엑스포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순수한 우리 과학 기술로 깜짝 놀라게 해줄 것이 과연 몇 개나 있느냐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국내 기업이 참여한 상설전시관에서 보여줄 ‘매인 쇼’는 전부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제작한 영상 제작물들이다. 따라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볼거리는 선진국의 과학 기술이 태반이다. 영상물이 아닌 국내 기업이 개발해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는 전시물에 대해서도,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박람회장 건설 현장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시물들은 이미 선진국에선 오래 전에 개발이 끝난 것들이 대부분이다”라고 혹평했다.

이에 대해 생산기술연구원의 安??實 박사는 반론을 편다. 그는 순수한 우리 과학 기술로 뭔가를 보여줄 수 없다 손치더라도 엑스포가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은 틀림없다고 옹호했다. ‘우리별’ 1호를 쏘아 올렸을 때, 영국에서 만들어준 것을 쏘아올린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하는 비판이 있었으나 2호, 3호를 만들 때는 그 경험이 하나 둘씩 우리 것으로 소화된다는 것이다.

대전 엑스포는 서울올림픽 이후 5년 만에 치르는 대규모 국제 행사다. 이것은 무역박람회와는 달리 국제박람회기구(BIE)로부터 공인받은 전문 박람회다. 개발도상국으로서는 한국이 처음으로 유치할 만큼 그동안 선진국이 독점해왔던 까탈스러운 박람회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올림픽 때는 정부가 앞장서서 분위기를 돋우었지만 지금은 조직위 직함만 가지고 해내야 할 판이다. 조직위의 한 인력관리 담당자는 “7월중에 각 부처와 공공기관이 5백명을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지만 정부 조직을 줄이려는 판국에 그것이 뜻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대전 엑스포를 준비하는 조직위 사람들은 국민과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비판이 부담스럽지만 엑스포가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들은 “실패하면 원대 복귀는커녕 여기서 코 박고 죽어야 한다”는 김대석 전시충괄과장의 말처럼 배수진을 치고 있다. 그러나 작업이 지연되고 부서간 업무 협조도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는 등 불안한 구석도 있다.

‘졸속’ 인상 불구, 조직위 성공 장담
엑스포를 준비하는 데는 최소한 5년이란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우리의 경우 90년 12월 국제박람회기구의 승인을 얻은 지 3년도 안돼 큰일을 치르다 보니 준비현장을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국제전시구역에 독립된 공간<모듈>을 배정받은 신청국가 50개국 중 조직위로부터 열쇠를 건네받고 시설공사에 착수한 나라는 6월8일 현재 10개국밖에 안된다. 국제전시 담당자가 아프리카 등지의 일부 후진국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불과 60일을 남겨놓고 해외출장을 떠나는 실정이다.

조직위은 대전 엑스포가 열리는 8월7일~11월7일 93일간 모두 1천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1천만명이 대전 엑스포를 관람해 성공적으로 행사를 끝마친다 하더라도 뒷말이 남을 소지는 남아 있다. 박람회장 규모 27만3천평 중 전시 구역이 차지하는 면적은 15만평이 넘는다. 나머지 12만명 중 주차장과 녹지를 빼면 관람객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은 10만평이 채 안된다. 공휴일 같은 날 20만~3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 경우 엄청난 혼잡이 예상된다. 그늘도 넉넉히 마련돼 있지 않아 졸속 행정이라는 인상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조직위가 성공을 자신하는 것은 관람객에게 보여줄 내용이 비교적 충실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량 사무국장은 선진국의 전시물 중에 좋은 작품이 많다고 말한다. 국내 기업들도 기업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내용 면에서 관람객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조직위는 국민들 사이에 엑스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기는 하지만 막상 와서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장담했다.

조직위 대변인실 김은섭 과장은 “이미 오사카 박람회와 쓰쿠바 박람회를 유치했던 일본이 왜 또 2005년에 나고야 박람회를 유치하려고 하겠느냐”는 말로 엑스포에 대한 평가를 대신했다. 70년의 오사카 박람회를 계기로 일본의 무역수지는 39억달러에서 71년 77억달러, 72년 89억달러로 두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엑스포를 개최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왕 1조원을 들여 치르는 행사라면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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