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최후 카드 ‘왕국 분할’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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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계열사 정리방안 퇴색, ‘충격적 제2조처’ 불가피…정주영 회장 사재 처리 관심

지난 90년 9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은 그룹의 사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다른 그룹에 비해 업종 성격이 다른 계열사가 많다는 ‘약점’을 보강하자는 취지에서였다. 현대그룹이 진출한 업종이 다양한 만큼 계열사 간의 연계나 협조가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치에 참여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무렵 이루어진 이 연구의 결론은 각 계열사 사이의 유기적 관련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은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계열사 간의 관련성을 줄여 이들을 분리할 것인가. 고민의 첫 결과물은 지난 5월22일 4개 계열사를 독립시키고, 4개 계열사를 합병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이 채 안된 시기에 입장이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은 오로지 정주영 명예회장의 ‘외도’때문이다. 그는 대통령직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후, 곧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 서울 계동 현대그룹 본사 12층의 명예회장실로 돌아왔다.

그후 현대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거취와 현대그룹의 장래를 놓고 청와대와 협의를 계속해왔다. 청와대는 구체적인 주문 대신 현대그룹이 재계의 모범이 되어 달라는 ‘부탁’만을 계속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전적으로 현대그룹에 맡겼던 것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가 현대그룹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어떤 수준으로 변해야 정부가 만족할지 고심해왔다”라고 토로했다.

변신의 몸짓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정부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점에서 현대그룹의 계열사 정리는 다른 그룹의 그것과는 성격이 약간 다른다. 현대그룹이 1차 계열사 정리방안을 발표하면서 그 목적을 ‘정부의 신경제 1백일계획 및 5개년계획 추진과 신한국 창조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라고 밝힌 것은 이 때문이다. 6월9일 14개 계열사를 매각ㆍ합병키로 한 삼성그룹은 ‘그룹의 사업 방향을 21세기형 첨단ㆍ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고, 이에 따른 전문화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계열사를 정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삼성그룹이 계열사 정리 방안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린 반면, 현대그룹은 ‘메가톤급 홍보거리’를 그냥 흘려버리고 말았다. 직원들이 거의 회사를 빠져나간 토요일 오후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한 장씩 보낸 것이 고작이었다.

삼성그룹 폭탄선언에 눌려 의미 반감
현대의 1차 계열사 정리방안은 다른 이유로도 크게 눈길을 끌지 못했다. 금강개발산업 한보쇼핑 현대알루미늄공업 등 분리할 계열사는 매출액이 적은 기업들이다. 한국산업써비스 현대철탑산업 현대로보트산업 현대자원개발 등 기존 계열사에 합병할 회사들도 81~88년 모기업으로부터 분리돼 나온 기업들이어서, 본래대로 환원되는 것에 불과하다. 주력 기업까지 정리 대상 계열기업에 포함시킨 삼성그룹이 과감한 선언은 현대그룹의 1차 계열사 정리방안을 더욱 퇴색시켰다. 현대그룹은 전보다 훨씬 충격적인 2차 계열사 정리방안을 발표할 수밖에 없는 처지,형편,견해,주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그동안 2차 발표가 단순한 계열사 정리 차원을 넘어서 실질적인 그룹 분할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해왔다. 이는 현대그룹이 정주영 명예회장의 2세들에 의해 이미 ‘분할통치’되고 있으며, 鄭仁永 鄭世永씨 등 정명예회장의 동생들이 현대그룹에서 분할돼 나간 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2월 정계를 은퇴한 정명예회장이 일본에서 “현대그룹을 해체하겠다”라고 공언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정명예회장의 아들 8명 가운데 사망한 장남과 4남을 제외한 6명은 이미 그룹의 주요계열사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도표 참조).

문제는 상호출자 문제와 주력 기업인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에 대한 처리다. 현재 주요 계열사에 대해 출자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회사는 현대중공업이다. 鄭夢準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 현대정공 인천제철 현대해상화재보험 현대증권의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모기업인 현대건설은 아직 실질적인 지배자가 없는 상황이나, 이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鄭夢憲씨의 몫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현회장인 정세영시가 경영권을 물려받느냐가 관심사이다.

만약 소유분산에 대한 유ㆍ무언의 압력이 거세지면 정주영 명예회장이 자신의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획기적인 소유분산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동안 공개와 소유분산이 있었는데도 정명예회장의 평균 지분율은 4.1%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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