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제 무덤 팠다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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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 속에 빠진 증시 “증권사ㆍ정부ㆍ언론 3바보 합작품”

 증권시장은 한 나라의 자본시장이다.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내재된 투자가치를 바탕으로 주식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 투자가 왕성하다는 것은 상장기업들의 투자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그 나라의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 증권시장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고 흔히 비유한다. 바로 한국경제가 매우 나빠져 있음을 나타낸다.

 국가경제가 나빠지면 증권시장도 어려워지는 것은 시장경제원리의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런 기본원리가 지켜지지 않기 일쑤이다. 정부는 일시에 대량의 국민주를 매각함으로써 제자리를 잡지도 못한 증권시장에 주식 투기바람을 일으켰고, 주가가 추락하면 경기부양 조처를 내놓는 등 증권시장에 개입,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시장의 원칙을 깨뜨려왔다. 증권회사들은 자기들 자본의 60%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자연스러워야 할 수요와 공급간의 흐름을 교란시켰고, 건전한 투자알선보다 거래를 늘여 수수료 수입을 올리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그 원칙을 뭉개는 데 한몫 해왔다. 여기에 언론도 가세했다. 증권뉴스를 마치 프로야구 경기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장면이나 승패를 잘라서 보듯이 보도한 결과, 호황때는 불을 붙여 투기를 부추기는 반면 불황때는 더욱 수렁 속으로 빠뜨리는 잘못을 범했다.

 결과적으로 정부 증권사 언론이 합세해 오늘날의 한국 증권을 늪속 깊숙이 몰아넣는 데 기여했다고 해서 이들을 ‘바보3총사’라고 외국증권사 분석가들은 혹평한다. 제6공화국 이후 이들 3총사가 벌인 ‘바보들의 행진’이 시장경제원칙을 어떻게 웃음거리로 만들어왔으며, 그 결과 증시가 얼마나 왜곡됐는지 심각하게 반성하고 증권시장을 새로이 인식하여 좌표를 마련해야 할 때이다. <편집자>

 

 남편 몰래 주식투자를 했다가 투자액의 70%정도를 이미 날렸다는 김미아씨(38)는 내려가기만 하는 주가 외에도 또다른 걱정이 따라다닌다. 증권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남편이 혹시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매매를 권유하는 증권사 영업직원의 전화가 요즘 부쩍 더 늘었다면서 “어떤 때는 하루에도 두세번씩 전화를 받는다”고 한숨을 쉰다. “그냥 갖고 있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라고 그는 하소연한다. ㅅ그룹의 한 계열사에 다니는 장기영 대리(31)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다른 주로 갈아타는 게 어떠냐며 단기매매를 유도하는 것이 증권사 직원들에겐 습성화돼 있는 것 같다”면서 “절대 그 사람들 말은 안 믿는다”고 말한다.

 증시가 침체에 빠진 요즘 증권사 영업직원들은 고객들의 매매를 유도해야 하는 고달픔에 시달리고 있다. 고객이 주식을 팔거나 사야 증권사는 0.5%의 매매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 밝히기를 사양한 국내 유수 증권사의 ㄱ 대리는 “회사가 적자에 허덕이다 보니 매매회전율을 높여야 한다.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시장의 수급과 동떨어진 과도한 단기매매가 한국증시를 교란해 왔다. 한국의 투자가들이 최소 6개월 이상의 투자기간을 갖는 선진국 증시와 달리, 1개월도 채 안돼 주식을 사고 파는 데는 당장의 영업이익만을 노린 증권사의 근시안적인 단기매매 유도가 톡톡히 한몫 하고 있다. 91년의 경우만 봐도 일본(27.15%) 미국(40.96%) 홍콩(31.72%)과 비교해볼 때 한국 증시의 거래대금 회전율(85.57%)은 엄청나게 높다 (37쪽 도표 참조). 노무라증권 서울사무소의 高源宗 부소장은 “한국증시의 경우 증권시장에 팔려고 내놓지 않는 대주주 지분이 외국 증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높고, 동시에 증시안정기금이 대량의 상장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실제 일반투자자가 거래하는 대금회전율은 자료로 나타나는 것보다도 훨씬 높을 것을 봐야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증시가 1천포인트를 넘어섰던 89년 4월을 고비로 계속 하향세를 보이며 3년째 침체의 골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고금리ㆍ수출부진ㆍ한국기업의 경쟁력약화 등으로 이어지는 실물경제의 부진에 있다. 그러나 투자자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의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여 단기매매를 유도해온 증권회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게 비판적인 증권업계 실무자들의 주장이다. 미국에서 증권시장에 대한 연구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고부소장은 “증권회사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증시의 악순환이 더욱 가속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증권회사는 그야말로 서비스업체인데 올바른 투자조언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5조억원어치 주식 안고 은행이자 물기 급급

 과당경쟁만을 일삼아온 증권사들은 적자와 도산위기로 그 책임의 대가를 지금 지불하고 있다. 영국계 슈로더증권의 조사에 의하면 91년도 4월과 6월 사이에 국내 증권사의 6백70개 지점 중 35%에 해당하는 2백37개 지점이 적자를 냈다. 슈로더는 지난 3월말로 끝난 91회계연도에도 10대 증권사 중 9개사가 적자를 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37쪽 도표참조). 슈로더에서 투자분서 업무를 맡고 있는 姜憲求 부장은 “한국 증권사들의 문제는 과다하게 외형경쟁을 추구하는 근시안적인 경영에 있다”고 지적한다. 대형 증권사일수록 과도한 지점망과 이에 따른 인원확장으로 더 심각하다는 게 강부장의 견해이다. 31개 증권회사에 6백70개 지점은 최소한 지금의 한국증시에게는 부담스런 숫자이다.

 적자경영은 증권업계가 당면한 위기의 일면에 불과하다. 증시위축으로 고객예탁금이 줄고 자금사정이 악화되면서 부도위기에까지 몰리는 증권사가 속출하고 있다. 30일 이하 연리 18% 이상의 고금리 단기차입금에 자금의 공급을 의존하는 증권사도 늘고있다. 90회계연도의 단기차입금은 증권회사 전체 유동부채의 36.5%를 이미 넘은 수준이었다. 시중자금 전문가들에 의하면 구제금융성격의 하루짜리 급전인 타입대까지 끌어 쓰는 증권사도 있다고 한다. 강 부장은 이런 지경에까지 왔어도 “과도하게 지점을 확장해온 경영자가 문책을 받은 적이 없다”며 시장점유율 확대경영에 눈이 어두운 한국 증권사의 경영책임 부재를 안타까워한다.

 증시침체와 함께 증권사들이 이토록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데는 또 다른 속사정이 있다. 채권인수 수입이 증가하면서 매매수수료가 증권사들의 전체 영업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8년도의 35.5%에서 91년도 19.1%로 계속 하락하는 추세 있다. 증권사들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또 다른 사연은 증권사들 자신이 활황기에 사둔 주식이 많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활황기에 자기 자본의 60%라는 법적 허용한도까지 은행돈을 끌어다가 주식을 마구 사들였다. 주가가 빠지면서 증권회사들은 5조3백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끌어안고 은행이자 물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피해자는 소액투자가, 덕본 층은 대주주”

  그런데도 손해보고는 안팔겠다는 고집으로 버티고 있는 증권사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엄청난 양의 보유매물이 주가가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주가회복은 더욱 어렵다. 여기에 증시를 더욱 침체시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부가 자기자본의 60%까지 자체투자를 허용하고 있어 국내에서는 증권회사의 자기계정에 의한 투자가 아예 문제화될 수 없다. 그러나 매매의 대리수수가 주업무인 증권회사가 자기계정으로 투자하는 것은 본업이 아님은 상식이라고 외국증권사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영국계 증권회사의 한 서울 지점장은 “증권회사가 주식투자를 하면 모든 게 회사이익 위주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 좋은 주식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사지 고객에게 주겠는가”라며 꼬집는다. 증권거래의 역사가 긴 서양에서 증권회사가 자기 몫으로 직접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투자를 하는 것이 영업이익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체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한다. 윤리적인 문제 이전에 경영전략상의 문제라고 그는 지적한다.

 증권회사가 일반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잃는다면 그것은 돌이키기 힘든 증권사의 최대 손실이다. 89년 4월 주가가 1천 포인트까지 올랐을 때 상식을 가진 전문가라면 실물경제에 걸맞지 않게 주가가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 당시 주가의 하락을 내다보고 고객에게 예고해준 증권회사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89년 4월 이후 주가는 계속 하강하는 데도 증권사는 증시가 뭔지도 모르는 농민들의 소 판돈 논 판돈을 끌어모으기에 정신이 없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했다. “3년간 주가는 내려오기만 했는데 3년간 주가는 곧 올라간다고만 외쳐온 증권사를 지금도 믿고 따를 투자자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한 국내 증권사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은 꼬집는다.

 일반 투자자들에 의한 ‘사자’가 살아나야 증시는 회복의 계기를 맞는다. 그런데 지난 3년간 피해만 본 일반 투자자들은 더 이상 믿을 만한 구석을 찾지 못해 증시를 떠나고 있다. 지난 15일 증권거래소가 발표한 주식분포 현황에 따르면 91년 말 현재 국민주인 한전과 포철주의 주주를 제외한 주식인구는 1백43만명으로 90년 말의 1백73만명보다 30만명이 감소했다(도표 참조). 89년 말 현재 주식인구 2백8만명과 비교할 때 2년 사이에 31.3%가 감소한 것이다. 두드러진 증시 이탈층은 보유주식이 1천주 미만인 소액투자자로 91년말 현재 전년에 비해 30만9천명(21%)가 줄어들었으며, 이에 반해 1천주 이상을 소유한 고액투자자는 91년 말 현재 27만3천명으로 90년 말의 26만8천명보다 5천명이 더 늘어났다. “한국증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소액투자자이며 가장 덕본 층은 대주주”라는 한국 증권가의 속설은 증권거래소의 통계를 봐도 뒷받침되는 셈이다.

 국내증권사 ㄱ대리는 “일반 투자자들이 증시를 외면하는 이유 중에 증권사의 잘못이 크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고 말한다. 노무라증권의 고부소장은 “고객관리에 소홀했던 한국의 증권사들에게 책임이 크다”고 주장한다. “왜 투자자들을 그렇게 이끌고갔는지 안타깝다”고 말한다. 영국계 증권회사의 한 서울 소장은 한국증권사들이 이제 투자분석업무와 같은 본연의 업무에 주력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회사의 문책 때문에 시황이 나빠질 듯한 데도 소신있게 분석을 못 내놓는 잘못된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침체된 지금의 증시는 한국의 실물경제가 살아나면 자연스레 되살아날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침체기에 증권사들은 내실을 기하고 활황기에 대비해 고객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한결같이 충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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