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日王 저격은 “국제감각 결여”
  • 도쿄ㆍ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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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우익의 공통분모는 이른바 ‘천황제 국가’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천황중심의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천황을 정점으로 한 사회체제를 구축한다는 석이 그들의 최대 행동목표인 것이다.

 반면 현재 9백80개단체, 12만명을 헤아리고 있는 일본 우익들의 슬로건은 가지각색이다. 헌법개정ㆍ북방영토반환ㆍ일교조(일본교직원조합) 타도를 외치고 있는가 하면 ‘반소’ ‘반미’를 주장하는 극우단체도 있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이후 일본 우익의 슬로건 중에 눈에 뛰는 것은 ‘嫌美’ 나 ‘侮美’와 같은 단어들이다. 정신대 문제가 부각된 이후에는 ‘嫌韓’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이전의 반공이라는 슬로건이 반미ㆍ반한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3월14일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 근처에서 발생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방화사건은 이들이 이러한 반한감정을 직접 행동으로 옮긴 한 예이다. 또 이들은 미야자와 방한 때 데모대가 일왕 화형식을 거행한 데 대해 주일 한국대사관ㆍ언론사 특파원 사무실 등에 “죽여버리겠다”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협박 전화를 집요하게 걸어왔다.

 일본 우익들의 이런 한 반한행동이 더욱 과격해진 것은 MBC TV 드라마 <분노의 왕국>이 방영된 직후이다. 일본 언론이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의 천황폐하 저격 장면이 들어 있었다”고 이를 자세히 보도함으로써 이른바 ‘행동우익’의 반한행동에 기름을 부운 격이 되었다.

 전전과 같은 천황제 국가에로의 복귀가 최대목표인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천황 화형식에 뒤이은 천황저격 드라마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또 현직의 국가원수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처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그들의 강한 불만이었다.

 이들은 급기야 지난 13일 요쿄하마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난입하는 실력행사로 나왔다. 당시 도쿄 일원에는 방일중인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경비를 위해 비상경계태세가 펼쳐지고 있었는 데도 말이다.

 물론 미묘한 한ㆍ일관계를 고려한다면 “생존중의 일왕저격장면을 삽입한 MBC 방송의 무신경이 문제이다”라는 일본 언론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이전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과격한 풍자만화가 문제가 되어 <산케이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편집장이 한국정부의 항의로 해임당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분이었는지도 몰라도 일왕저격 드라마 문제를 가장 자세히 보도한 것은 <산케이신문>이었다. 또 <분노의 왕국>을 방영한 MBC TV와 그 <산케이신문>계열의 후지 TV가 제휴사라는 것도 묘한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마찰음이 고조되고 있는 한ㆍ일관계를 생각한다면 “일왕저격 드라마는 국제감각이 결여된 픽션”이라는 지적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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