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없는 남북 ‘방송심리전’
  • 한종호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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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비방ㆍ교란 방송’ 40년 … 냉전의 얼음장 아직 두꺼워



 총선을 전후해 북한의 방송이 대남 비난ㆍ비방의 정도를 더해왔다는 소식은 핵문제로 삐그덕거려온 남북관계에 불길한 전조를 던져준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합의서 서명과 발효로 남북이 한창 축제분위기를 무르익혀갈 무렵에도 대남방송은 격렬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각종 선전매체를 통한 북한의 대남 비난은 1월의 경우 1천3백88건으로 합의서 서명 이전인 지난해 11월의 1천2백39건보다 오히려 12% 늘어났다. 방송쪽을 보면 합의서 발효 이전에는 하루 평균 10회이던 비난방송이 발효 이후부터는 하루 평균17회로 껑충 뛰었다. ‘여고’ ‘괴뢰’등 대통령 호칭에 따라붙던 표현이 3월5일 이후 ‘남조선 최고당국자’ ‘남조선 위정자’등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현 정부를 ‘괴뢰통치배’ ‘파쇼도당’등으로 부르는 것도 여전하다.

 

“낮에는 대화, 밤에는 전투한다”

 서울에서 보내는 유일한 대북방송인 KBS사회교육방송은 북한에 대한 직접적 비난ㆍ비방을 줄이는 대신 4월6일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 소개 △다양한 정보제공 △북한사회 개방ㆍ개혁 촉진을 내걸고 몇가지 프로그램을 신설해 대조를 보였다. 이에 따라 최신 유행가와 생활소식을 묶어 생방송으로 소개하는 연예ㆍ오락프로그램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처럼 상반된 외관만 보고 어느 쪽이 제대로 된 방송인지 섣불리 우열과 시비를 가려서는 안될 것 같다. 최근 남북한 방송의 변화는 분단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지속돼온 전파를 통한 심리전의 연장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전파를 통한 전쟁은 중단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양상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 정보전문가는 “심리전을 계속하면서 남북협상을 하는 것은 낮에는 대화하고 밤에는 전투를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라디오가 심리전의 효과적이고 강력한 무기로 이용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순식간에 넓은 지역에 대해 안전하게 선전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심리전 방송은 ‘흐르는 강물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아서 그 대상과 효과가 넓고 크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방송전쟁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특히 중국ㆍ대만, 남ㆍ북한, 통일 이전의 동ㆍ서독처럼 분단상황 아래에서는 대립이 극심하다.

 

구국의 소리, 발신처 남한으로 위장

 북한에서 독자적 방송이 시작된 것은 45년 10월14일 조선중앙방송 이름으로 김일성의 ‘조국개선연설’을 중계방송한 때부터이다. 북한은 그후 방송의 기능을 선전선동자 조직자 문예교양자로 두고 △전후 복구에의 주민동원 △사회주의 사상교양 수단으로 라디오를 널리 활용했다. 67년에는 조선중앙방송이 제1방송과 제2방송으로 나뉘어 각각 대내ㆍ대남방송을 담당했으며 72년에는 다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으로 각각 이름이 바뀌었다. 70년에는 대남방송 전용의 통혁당방송(지금의 민민전방송)이, 89년에는 평양FM방송이 각각 시작됐다. 따라서 현재 북한에는 4개의 방송이 있으며 이 가운데 대남방송으로 평양방송과 민민전방송을 꼽을 수 있다.

 대남방송은 노동당 대남사업부의 직접지휘를 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방송과 구분된다. 매일 23시간30분 동안 계속되는 평양방송은 ‘김일성대학 통신강좌’등 이론교육 프로그램을 두어 80년대 말 대학가에 주체사상이 유포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이 방송을 수신하기도 했다. ‘구국의 소리’방송은 발신처를 남한으로 위장한 흑색방송인데 노동당 비서국 문화부 방송지도과에서 계획ㆍ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주 남산에 방송국이 있으며 현재 중파 1채널, 단파 2채널로 하루 13시간씩 대남선전방송을 한다. 평양FM방송에 대해서는 대남심리전 방송이라는 해석과 평양축전을 계기로 청소년을 위해 마련한 대내방송이라는 해석으로 학자들의 평가가 나뉘어 있다.

 심리전에는 방송 외에도 확성기 인쇄물 대면접촉처럼 시각 청각 촉각 증 인간의 감각기관과 관련된 모든 방편이 총동원된다. 북한의 경우 휴전선에서의 심리전은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예하 문화연락국에서 담당하여 각사단과 군단의 활동을 지지한다. 국군 기무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휴전선 일대에 1백20여개의 확성기를 설치해 하루 18시간씩 공격ㆍ방어용으로 구분 운용하고 있으며, 이 확성기는 각 군단 敵攻部와 직결된 방송국에서 운용한다. 그 외에 비서국 직관물과는 시각심리전을, 접촉심리전과와 연락부 직속의 695부대는 행동심리전을 담당한다.

 대남방송이 여러 채널을 통해 입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에 비해 대북방송은 KBS의 사회교육방송으로 일원화되어 있다. 최초의 대북방송은 48년 8월15일에 시작된 ‘북한동포에게 보내는 방송’프로였다. 당시 이프로그램을 제작한 원로방송인 文時亨씨(69)는 “대북방송은 원래 북한주민을 선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49년경에는 남북냉전이 점차 심해져 첨예한 전파전으로 번졌다”고 말했다. 문씨에 따르면 당시 <로동신문>편집국장이었던 김창순씨가 월남, 金日成을 비난하는 강연프로 방송하여 북한방송과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했고 조만식 선생과 남포당의 김삼룡ㆍ이주하를 교환하자는 협상도 라디오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자 그 공백을 미군의 심리전방송이 채웠다. 처음에는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모란방송’이라는 회색방송(송신자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방송)이 진행됐다. 당시의 유명 여배우 白아무개가 디스크자키 역할을 맡아 인민군에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총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국방부 정훈장교가 찾아와 “도리어 아군병사들이 향수병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항의해 그 다음부터 유엔군방송(VUNC)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 방송은 오키나와에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첫 대북방송 48년 8월 … 54년 본격화

 본격적인 대북방송은 1954년부터 시작됐다. 6ㆍ25로 파괴된 KBS네트워크 복구에는 미국동군사령부 심리전실의 지원이 있었다. 대남방송이 심해지자 남양송신소 출력을 높이고 채널도 늘렸다. 5ㆍ16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정권이 반공을 전면에 내걸고 나섬에 따라 대북방송은 더욱 강화됐다. 대북ㆍ해외방송을 위해 국제방송국이 세워졌고 1ㆍ21사태 이후에는 대공방송 강화를 위해 종일방송이 실시됐다. 방송3국이 통합되면서 담당부서도 중앙방송국대공과로 승격됐다. 7ㆍ4공동성명으로 72년 11월11일 기해 상호비방방송을 중지하기로 함에 따라 대북방송은 일시 막을 내리고 대신 KBS 사회교육방송이 시작됐다. 사회교육방송도 이때부터 종전의 대북 심리전방송으로 되돌아갔다. 70년대 중앙정보부 심리전국장을 지낸 康仁德씨는 “월남 패망 이후 정부는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과 싸우기 위해 전면적인 심리전 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朴正熙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심리전요원 육성책의 하나로 사회교육방송 전직원과 출연진에 4만~5만원씩의 보조금이 지급되기도 했다.

 80년대 들어 사회교육방송은 국력의 성장에 따른 대북 자신감을 반영, 비난과 향수심 유발에서 설득과 오락으로 제작방침을 전환했다. 금년 4월 프로그램 개편도 이같은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회교육방송 1부장 李八雄씨는 “7ㆍ7선언 이후 우리는 큰형의 입장에서 북한을 ‘안아들이겠다’는 자세로 방송을 제작한다”고 말했다. 현재 KBS 라디오국 아래 있는 사회교육방송국은 4개의 채널을 통해 24시간 방송하며 제작 1ㆍ2ㆍ3부와 전문위원실에서 총 46명이 일한다.

 정부에는 북한이나 대만과 같은 별도의 상설기구가 설치돼 있지 않다. 북한의 당비서국이 심리전을 총지휘하고 있음은 앞에서 본바와 같다. 대만의 대중국방송은 국민당 중앙위원회라는 최고 정책기관이 입안하며 국방부 총정치작전부 심리전처에 소속돼 고도의 심리전체제로 운용된다. 한국은 안전기획부 산하 국가심리전위원회의 총괄 아래 심리전단을 운영하며 국방부 정보본부 각군 정보국 등이 전략전술심리전을 수행한다. KBS 사회교육방송은 이들과 협조관계는 유지하되 독자적으로 대북ㆍ대외 심리전방송을 담당한다.

 

대북방송 요원 수 옛 서독의 1백57분의 1

 사회교육방송이 이렇게 소규모로 운영되는 것을 두고 오래 전부터 관계 전문가들은 ‘격상론’을 주장해왔다. 李正春 교수(중앙대ㆍ신문학)는 “서독의 대동독방송이었던 DLF에 비해 사회교육방송국의 인력은 1백57 대 1, 예산은 73대 1에 불과해 분단국 국책방송의 취약성을 드러내준다”면서 위상의 제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심리전분야 전문가는 “우리측의 심리전은 국가적 체계의 미흡ㆍ전문요원의 부족ㆍ낮은 대우로 인한 잦은 이직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북한은 방송대학을 설립해 철저한 적성검사와 전문적 훈련을 하고 있고 담당요원은 엘리트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사회교육방송국의 확대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KBS에서 사회교육방송국으로 배치된 것을 ‘좌천’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공통적이다.

 어떤 이는 남북회담에서의 유화적 태도와 대남방송의 강경태도를 두고 북한정권이 내부적으로 강온대립을 겪는 것이 아니야 하고 추측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남비방이 오히려 심화될 리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의문은 심리전의 본질에서부터 접근해 들어가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康仁德씨는 “심리전의 핵심은 자신의 최고목표를 상대방에 인식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심리전이야말로 자신과 상대방의 속마음을-다소 과장된 형태로이긴 하지만-가장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뜻도 된다. 이같은 논리에서 보면 대남ㆍ대북방송에 사용된 상대방의 호칭이나 비난의 횟수와 정도가 약간 변했을지는 모르지만 남과 북은 유감스럽게도 기존의 대결구도에서는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냉전의 두터운 얼음장이 깔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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