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소리는 우리 백성의 넋”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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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 《韓國의 輓歌》 펴낸 申瓚均씨
 한국인에게 죽음은 공포나 절망 혹은 기피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긍정의 순간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금방 '돌아간(가는)' 죽음을 중심으로 모였다. 그리고 죽음이 가는 길을 빌며 준비하는 것인데, 그 준비의 여러 단계들 가운데 한 절정이 노래, 즉 輓歌(상여소리)였다.

 만가는 단순한 이별가가 아니었다. 돌아가는 길의 평안함과 명복을 기원하면서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의 복을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다. 한국인은 삶과 죽음 사이에 경계를 짓지 않는다. 죽음에게도 현세적 질서를 그대로 부여했다. 한 외국인 인류학자는 "한국인은 죽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언론인이며 문화재위원인 申瓚均씨가 최근 펴낸 <<한국의 만가>>(삼성출판사)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상여소리를 통해 한국인의 생사관과 그 문학성을 탐구한 연구서이지만, 서울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을 만큼 일반 독자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다. 만가는 "존재의 영구지속을 바라는 인간의 원초적 마음"의 발로이며 죽음을 "다른 삶 또는 이승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의 사유를 집약한 문학의 한 장르라고 저자는 말했다.

 저자는 지난 10여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가 7백96수를 채집했고 중국과 일본까지 찾아가 그곳의 만가 실태를 조사했다. 이 책의 가치는 한국만가에 대한 본격적 연구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동양3국의 만가를 비교연구했다는 데에서도 찾아진다. 만가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사라져버렸고 유독 한국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만가의 배경과 실제, 구조 및 형식, 비교 그리고 사고기반 등을 조명하고 있다. 만가는 관혼상제 중 상례에 속하는 특수민요로서 마을공동체와 가족(문중)의 신앙심과 윤리의식 그리고 유대감을 강조하고 있으며, 풍수지리가 그 중요한 구성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만가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축원만가와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출상만가 그리고 분묘를 만들 때 부르는 성분만가 등 크게 셋으로 나뉜다. 문학으로서의 만가는 이별가이며 서민의 시가이다. 판소리나 가면극 등에 비해 죽음을 해학적으로 수용, 긍정하면서 삶의 건강성을 되찾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전주에서 성장한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남문거리에서 꽃상여 행렬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상여 뒤를 가람 이병기 선생이 따라가며 상여소리를 받아 적고 있었다. 그때 상여소리에 무엇인가 있구나 하고 느꼈지만 상여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72년 무렵이었다. 66년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래 줄곧 문화재를 담당해온 그는 72년 안동댐 수몰 예정지역에 홀로 남은 노인의 상여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만가 채집과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어려움이 많았다. 민요나 민담과는 달리 상여소리는 대뜸 불러주는 이가 그리 많지 않으며, 공동체문화를 면면히 이어온 상여꾼들도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영구차와 포클레인으로 후딱 치르는 오늘의 장례처럼 민족정서도 그렇게 빨리 소멸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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