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상태로 택시가 달린다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2.05.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PG속 에틸메르캅탄 허용치 美40배

세계 첫 직업병 판정…노동부는 “무해”주장
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는 오갈 데 없이 인생의 끝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수용하고 있는 ‘꽃동네 요양원’이라는 시설이 있다. 그 안에서도 4백여명의 중증 환자만을 수용한 건물이 따로 있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한명 갇혀 있다. 3년동안 부산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던 중 계속 액화석유가스(LPG:Liquified Petroleum Gas)냄새를 호소하다 90년 8월8일 갑자기 쓰러진 뒤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켜 이곳까지 온 이성근(37)씨가 바로 그다. 진단 기록에 나타난 그의 병명은 노인성 치매(속칭 노망)였다.

 이씨의 병세를 돌보고 있는 인곡 자애병원 김재진 정신과의사는 이씨의 증세를 “무언가 외부의 강한자극을 받아 나타나는 기질적뇌 증후군이다”라고 밝혔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이런 안타까운 병을 얻은 이씨는 지난 4월15일 요양원을 찾은 취재진에게 “이제 택시 몰기 싫어요”라는 단순한 말만 되풀이했다. 부산에 남겨둔 아내와 아홉살 난 딸에 대한 기억은 그의 의식 저편에 있는 듯했다. 부산 서대신동에 사는 이씨의 아내 오신애씨는 한 가정이 풍지박산나고 이씨가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을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부산 ㄷ택시회사 기사로 2연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일할 만큼 성실하고 건강했다. 그런데 3년째 접어들면서 차에서 나는 LPG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가 나며 목이 아프다는 증상을 날마다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몇년만 더 고생하면 개인택시 자격이 생긴다고 아픔을 참으면서 계속 일했다. 결국 90년 8월8일 퇴근한 뒤 힘없이 쓰러지더니 혼수상태를 보여 고신의료원에 데려갔지만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대로 병원 응급실에서 보름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의식을 찾았을 때는 이미 정신 이상자가 되어 있었다.”

 당시까지 택시기사들의 LPG중독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씨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치매증상’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뒤로 흘린 채 시댁식구들의 강력한 권고로 남편 이씨를 정신요양원에 보내 치료하는 데만 휘말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91년 12월27일 남편과 같은 택시회사 기사로 일했던 강균대씨와 박정문씨가 비슷한 증세를 놓고 부산 고등법원으로부터 직업병 판정을 받자 오씨에게는 뒤늦은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국내 최초로 LPG중독 직업병 판정에 승소한 강균대씨와 박정문씨는 이씨보다 1년 앞서 노후한 택시에서 흘러나온 LPG로 인해 역시 심한 두통과 구토, 기억력 감퇴에 시달리다가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이성근씨의 경우와는 달리 강씨의 아내 권정시씨는 당초부터 LPG중독의 심각성을 깨닫고 노동부와 회사를 상대로 2년에 걸친 힘겨운 싸움을 벌여나갔다(보조기사 참조). 노동부측은 “LPG중독증은 사례가 없거니와 직업병으로 인정된 전례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계속 산재 인정을 거부했다. 그러나 권정시씨는 각계에 이 사연을 눈물로 호소하고 문제를 법정으로까지 끌어들여 결국 직업병판정을 받아낸 것이다. LPG중독증에 직업병 판정이 내려지기는 세계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전국 각지의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겪고 있는 원인모를 각종 질병 중 LPG중독과 관계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움직임이 부쩍 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택시는 의무적으로 LPG를 연료로 사용해야 한다. 지난 75년 일부 택시에 시범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80년대 후반 이후 모든 택시로 확대된 LPG는 그동안 폭발위험성만 문제가 되어왔다. 그러나 수많은 택시기사들의 건강악화 호소에도 불구하고 당국에 의해 그 유해성이 제대로 파악된 예는 없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사들의 건강은 물론 매일같이 택시를 이용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안전을 볼모로 한 채 LPG는 별다른 대책없이 택시기사 직업병의 주범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LPG란 프로판부탄ㆍ프로필렌ㆍ부틸렌 등으로 구성된 액화석유가스로 택시 연료나 우리 가정의 프로판 가스로 흔히 사용되는 도시가스 연료이다. 원래는 질식제로서 무색 무취인데 이 LPG가 새는 것을 알아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에틸메르캅탄(CH₃CH₂SH)이라는 강한 냄새가 나는 화학물질을 첨가해 연료로 공급된다. 바로 이 에틸메르캅탄이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택시기사들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의료사고가족협의회(의가협) 의술고문으로 있는 신인식 전문의는 “에틸메르캅탄의 화학기호 CH₃CH₂SH는 나치가 유대인 학살에 사용했던 독가스 CS2와 알코올(술) CH₃CH₂OH의 중간성분으로 보면 된다. 이를 마시면 독성과 술에 취한 듯한 증상이 나타난다. 원액을 5분 동안 흡입하면 즉사한다”고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람이 고농도의 에틸메르캅탄을 흡입하게 되면 중추신경이 마비되고 두통ㆍ구토ㆍ사지 냉감ㆍ정력감퇴ㆍ맥박촉진ㆍ호흡기 자극ㆍ의식 소실ㆍ폐부종 등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런 증상은 LPG에 노출된 전국 각지의 택시기사들이 호소하는 증상과 일치해 그 유해성의 심각함을 일깨워준다.

 

“몽롱해져서 클러치 밟을 힘도 없어진다”

 일본 국립노동과학연구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에틸메르캅탄의 인체에 대한 허용농도는 0.5PPM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택시에는 LPG 1만갤런당 1천ppm을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허용농도는 미국의 23ppm(LPG 1만갤런당)에 비해 무려 40배가 넘는 분량이다. 더구나 외국의 경우는 LPG를 택시처럼 인체에 직접 노출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곡물 건조용ㆍ공업용 절단분야 등 일부 특수한 용도로만 쓰도록 하고 있다.

 지난 88올림픽 때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이 택시연료로 LPG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질겁을 해 승차를 꺼렸던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기도 하다. 현재 노동부와 가스안전공사측에서는 “LPG 자체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국내 예방학자들 사이에서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가정의학 전문의 신인식 박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가스는 인체에 해롭다. 심지어 순수한 산소마저도 계속 흡입하면 산소 중독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LPG 성분 속에 든 부탄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것은 일부 청소년이 마약 대용으로 사용해 말썽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택시기사들 중 오래 운전하다보면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데 누출된 부탄 성분 때문에 그렇다.”

 그는 오랫동안 택시기사들과 면담 연구한 결과 “가끔 일부 택시기사들이 단속 경찰을 매달고 질주하거나 교대시간에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데 그것은 누출된 LPG 속의 부탄 성분이 본드 역할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그러나 원인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채 모두 택시기사들의 자질과 부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풍토는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같은 추정이 일정 정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은 인터뷰에 응한 여러 택시기사들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LPG가 무서워서 항상 유리문을 열고 운전하지만 비가 내리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때 가스 냄새가 느껴지면서 몽롱한 기분이 된다. 심하면 사고를 낼까봐 그냥 회사로 들어간다.”(서울 ㅂ택시 김경섭 기사)

 “88년형 중형차를 지금까지 몰다보니 노후해 가스냄새가 많이 난다. 하루도 머리가 개운한 날이 없다. 회사에 얘기해도 안먹혀들기 때문에 모두들 위험을 무릅쓰고 운행한다.”(서울 ㅍ택시 윤석연 기사)

 “가스가 심하게 나오는 날은 온몸에 힘이 없고 정신이 몽롱해진다. 승객을 태우고 가다 클러치를 밟을 힘조차 없어 위험할 때도 있다.”(인천 ㅇ운수 임덕재 기사)

 이들 중 특히 인천지역 택시기사 임덕재씨의 경우는 LPG중독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차령이 1년6개월된 스텔라 중형택시를 모는 임씨는 가스냄새로 계속되는 두통과 어지럼증을 이기지 못하고 금년 4월 초순 쓰러진 일까지 있었다. 병원 진찰 결과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혈압’이라는 진단이 나왔다고 한다. 특히 그가 현재 몰고 다니는 택시는 얼마 전까지 다른 동료기사에게 배속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가스누출이 잦은 상태에서 두 차례나 교통사고를 일으켜 ‘8백만원을 잡아먹은’차였다. 취재진에게 보닛까지 열어 보이며 심한 LPG누출현장을 보여준 그는 “오래 달리다 보면 온몸이 무중력 상태로 변하고 성냥개비 하나 들 힘조차 없어진다. 회사에 폐차를 건의해 봤지만 어려우니 조그만 참고 일해보자는 반응뿐이다”고 말한다. 동승해 운행해본 결과 금방 구린 가스냄새가 확연히 느껴졌다.

 

택시 법정차령…일본 2년4월, 한국은 4년

 이처럼 택시 LPG 누출이 안고 있는 문제는 비단 기사들의 건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승객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사람의 생명을 실어나르는 택시기사들이 하루종일 누출된 LPG에 중독돼 고통받고 있는 현장을 방치해서는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교통당국은 이 문제에 대해 확고한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택시회사들에 노후차량을 즉시 폐차시키고 정비점검을 강화하도록 강력히 지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최근 들어 서울은 물로 지방 대도시지역에서 중형택시 보급이 일반화되고 이에 따라 신형 차량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소형택시 시절보다 가스누출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택시업계 종사자들은 이것을 ‘폭풍 전야의 고요’에 비유한다. 즉 지난 몇 년 동안의 대대적인 차량 교체는 일시적으로 가스누출현상을 완화시켜줄 뿐이라는 것이다. LPG 중독 자체에 대한 예방교육과 근본적인 방지대책이 없다면 어차피 새 차도 시간이 흐르면 노후한 차가 되어 가스누출 피해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울ㆍ부산지역의 택시기사들은 올 가을부터가 고비라고 말하고 있다. 90년에 출고된 다스의 차량들이 올 하반기부터 노후차량으로 전락해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택시의 법정 차령은 중형이 4년, 소형이 3년6개월로 규정돼 있다. 그 기간이 지나면 폐차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국택시노련 임승운 교육홍보부장(35)은 “일본은 택시의 폐차시기를 차령 2년4개월로 잡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택시는 후진국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지난해 택시사업주들의 경영난만을 고려해 차령을 1년더 늘리기로 했다가 택시노련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마지못해 철회했다”고 밝혔다.

 LPG를 연료로 사용하는 한에는 완전연소 시키는 것만이 최선의 중독예방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완전연소는 공기와 LPG가 5대 1의 비율로 혼합될 때 가능한데 모든 택시에는 이를 조절하는 나사가 들어있다. 그러나 운행중 계속되는 진동 때문에 나사가 틀어져 하루종일 완전연소상태로 다니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서 완전연소 및 가스누출 탐지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현재 국내의 모든 택시 사업장에는 의무적으로 정비공을 채용하고 이다. 그러나 가스안전공사를 제외하고는 일선 택시회사와 LPG주유소 가스누설을 탐지할 수 있는 기계는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래저래 우리나라 택시기사들은 현 상태로서는 LPG중독으로부터 제도적으로 보호받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부산에서 대원택시 기사 강균대씨가 LPG중독과 관련해 최초로 직업병 판정을 받고나서부터 기사들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승소판결 이후 부산에 사무실을 내고 택시기사 LPG중독증 ‘상담자’를 자처하고 나선 강균대씨의 아내 권정시씨는 요즘 매일 전국 각지에서 걸려오는 택시기사들의 전화를 받고 있다. 각 지역에 있는 일부 예방의학 전문의들도 최근 들어 LPG중독 상담창구를 열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추세이다.

 이제 국민의 생명을 실어나르는 택시기사들의 LPG중독 문제에 대해 당국도 더 이상 ‘방어적’인 자세만 보여서는 안될 때가 왔다. 많은 기사들은 그동안 “LPG는 무해하다”는 노동부와 사업주측의 주장을 믿고 묵묵히 일하다 몸에 이상을 느꼈다고 항변한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그 유해성과 주의사항에 관해 기사들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아울러 LPG누출을 즉시 알아챌 수 있는 특수 경보장치를 개발해 모든 택시에 부착해야 한다는 주장도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