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야 할 巨山’ 울산
  • 울산.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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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계열사 노사, ‘자제’ 분위기 속 긴장 대립 ․ ․ ․ ‘공권력 개입’변수

지난 1백여일 동안 전국을 휘몰아치던 새 정부의 ‘개혁 태풍’은 울산에서 처음으로 거대한 방풍림과 맞닥뜨렸다.

 현대자동차 ․ 현대중공업 ․ 현대정공 등 울산에 있는 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현재 파업중이거나 쟁의행위 발생 신고를 해놓고 10일 간의 냉각기간에 들어가 있다. 현대강관 ․ 현대종합목재 등 다른 계열사들이 쟁의 행위에 돌입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임금 협상을 둘러싸고 현대 계역사의 노사는 대립보다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 자동차측은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노조 역시 ‘법 테두리 안에서의 투쟁’이라는 유연한 대응자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한 간부는 “일부 조합원 사이에 투쟁 강도를 높이자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으나 돌발 사태가 없는 한 극단적인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투쟁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노사 양측은 달라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여론을 등에 업지 못하리라고 판단한다.

이장관 개혁 정책 싸고 논란
 이처럼 대화를 계속하고 폭력 사태도 자제하고 있으나 긴장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선 조합원 수가 무려 3만명에 이르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임금을 선도하는 기업인 데다가 하청 관계를 맺고 있는 협력 업체가 4백67개에 달해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게다가 현대 계역사의 노사 문제가 새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과 신경제 정책의 시금석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한 간부는 “정부 입장에서 볼 때 현대의 파업은 사실상 ‘최초의 도전’으로 비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인제 노동부장관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행정지침을 정비해 노동계로부터는 환영을 받았으나 재계로부터는 거센 반발을 샀다. 이장관의 발언은 기업의 투자를 끌어 올려 경제를 회복시킨다는 경제팀의 생각과도 거리가 있었다(16쪽 기사 참조).

 사용자측의 논리를 대변하는 한국경제단체총연합의 한 관계자는 “노조의 인사 ․ 경영 참여, 무노동 부분임금 등 이장관의 개혁적 발언은 근로자에게 기대심리를 갖게 해 안정을 되찾던 노사관계를 흔들어놓은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노동운동가인 박석운씨(노동정책연구소장)는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위법성을 제거하고 최소한의 법치주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이장관을 부정하는 것은 곧 법치주의르르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을 둘러싸고 형성된 미묘한 기류 때문에 현대 계열사 노사 문제는 임금교섭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사가 모두 임금은 크게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4.7%라는 가이드라인이 제시 된 마당에 가뜩이나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현대가 이 선을 무너뜨릴 수 있겠느야는 것이 회사측 입장이고, 노조 역시 고통분담이라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도하게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현대정공 파업 ‘화약고 신관’
 현대자동차의 경우 임금 협상 보다는 단체 교섭이 더 풀기 어려운 쟁점이 되고 있다. 회사측은 인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 위원을 노사 동수로 하자는 노조측 요구에 대해 경영권 침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이인제 장관은 지난 5월12일 “인사 ․ 경영권 참여를 목적으로 한 노조의 쟁의 행위도 정차만 적법하면 불법으로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가 재계의 반발을 받자 ‘근로조건과 관련된 부분만 인정한다’는 선으로 후퇴한 바 있다.

 현대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인사 ․ 경영권은 경영자 고유의 권한이다. 만약 회사가 근로자를 부당하게 해고한다 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 등으로 얼마든지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한천 정책연구실장은 “노사 화합을 위해 노조의 경영 참여는 확대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단체행동권과 같이 현재 노동자에게 주어진 권리는 노사가 대립할 때에만 방패로 쓰일 수 있지 화합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사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현대 계역사들에게 ‘화약고의 신관’ 노릇을 하는 것은 현대정공의 파업이다. 현대정공 노사는 노조위원장의 직권조인 문제로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직권조인 무효 가처분신청을 내놓은 채 현재 진행중인 파업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회사측은 근로자의 복지 문제에세 양보할 수는 있지만 이미 체결된 임금협상은 적법하며, 따라서 파업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화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현대정공 사태가 공권력 개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때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현대 계역사 노조가 지금까지의 절제된 대응과는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21일 경제기획원 ․ 상공부 ․ 노동부 등 3개 부처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당부 말씀’을 통해 “정부는 어느 때보다도 인내와 성의 있는 자세로 노사 문제가 당사자 간에 자율적으로 해결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 ․ ․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노사 또는 그 어느 누구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다스려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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