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는 헌신짝 뇌물 공화국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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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KEE 1431‘ 입시부정 ··· 컴퓨터로 점수 조작《시사저널》극비 입수 ‘문교부 감사자료’에서 밝혀져
‘수서추문’이 점입가경의 모습으로 벗겨지고 있던 지난 2월5일 밤, ‘대한뇌물공화국’의 부패 구조와 그 대책을 알아보기 위한 커버스토리를 기획중이던《시사저널》에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이 문제를 보도할 수 있는 매체는 《시사저널》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제보자는 자신이 제보하는 내용을 《시사저널》에서도 극비리에 취재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저쪽’에서 냄새를 맡게 되면 결국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는 얘기였다.

진로 바뀐 억울한 낙방생들
 치외법권 지역으로까지 여겨질 정도로 그 도안 어디에서도 손을 대지 못해온 이 학교는 고려대학교다.

 제보자는 현재 모 정당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으로, 우연한 기회에 한 의원 사무실에서 고려대의 입시부정에 관한 당시 문교부의 감사자료를 발견, 충격과 경악을 억누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중요한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며, 매년 수십명을 부정입학시킨 총장이 단 1백만원의 벌금에 약식기소될 수 있고, 교육부와 국회는 또 그토록 침묵할 수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흥분했다. 제보자가 개탄 끝에 하나씩 꺼낸 서류뭉치는 과연 “이럴 수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내용으로 차 있었다. 더러는 후기대학교의 길을, 더러는 재수의 길을 택했을 억울한 ‘고대 낙방생’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추악한 부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문교부는 지난 89년 5월15일부터 같은 달 25일까지 당시 부정입학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 · 점거농성으로 몸살을 앓던 고려대에 대해 학사관계 감사를 실시했다. 제보자가 입수한 89년 6월30일자 내부결재용 ‘감사결과 처분’에서 문교부는 고려대의 숨겨진 비리를 다음과 같이 적발했다.

입시관련 서류 폐기: 고려대 교무처는 학생들의 소요가 고조되던 89년 3월8일, 89년도분을 비롯해 이전의 모든 입시관계 서류를 소각 처분했다. 컴퓨터 마그네틱 테이프에 입력된 내용도 지우고 그 위에 다른 자료를 입력했다.

 불살라버린 서류는 89학년도 이전의 △ 입학시험 성적 일람표 △ 입학시험 답안지철 △ 불합격자 입학원서철 △ 입학시험 면접대장, 88학년도 이전의 △ 입학지원자 접수대장 △ 입학시험 사정부 등 입시부정을 밝히는데 필요한 중요 증거물 한 트럭분이었다.

 소각 임무를 담당한 교무처 직원들은 쓰레기 수거 · 처리 용역업자인 ‘상계동 최씨’를 불러 ‘외부유출 절대불가’ 엄명과 함께 학생들 몰래 서류를 빼돌려 불태워버리게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학교의 ‘문서보관 · 보존 규정’에 의하면 입시관련 문서는 “특히 그 중요도에 따라 준영구 내지 3년간 보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러한 규정을 무시한 채 관련서류를 허겁지겁 없애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교무처 담당자는 품의서에서 “학생들이 사무실을 점거, 각종 문서를 탈취하려 한다는 정보가 있으므로” 폐기처분코자 한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맞는 말이었다. 89년도 부정입학 의혹자 63명을 자체적으로 색출해낸 학생들은 당시 서류대조를 통해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잔뜩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시관련 서류 소각은 부정입학 사실이 폭로될 것을 두려워한 학교측이 증거를 아예 없애기 위해 저지른 행위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소각으로 말미암아 부정입학자가 누구이며 그 숫자는 과연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자료접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교부가 보조자료와 다른 감사수단을 이용하여 밝혀낸 고려대의 부정입학사례는 간발의 차로 떨어진 응시생과 학부모들이 알면 뒤늦게라도 소송을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부정방법은 컴퓨터를 조작하는 것이었다.

컴퓨터 조작: 고려대는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학력고사점수를 대폭 조작하여 전산입력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교무처장 등 고려대 입시부정 담당자들은 이 학교 전자계산소로부터 수험생들의 실제 성적이 계산된 예비사정자료를 미리 건네받아 ‘교직원 자녀 중’ 불합격예정자가 있으면 점수를 가산시켜 합격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지원학과의 최저합격 예정점수(커트라인)의 25% 상당을 가산하여 합격권내에 들어가면 합격처리했고, 이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에는 2 · 3지망으로 합격시켰다. 웃지 못할 사실은 가산 후 점수가 만점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어 이때는 또다시 점수를 적당히 깍았다는 것이다.

 전산소 직원은 교무처측의 이같은 부정입력처리 요구에 따라 미리 개발된 일명 ‘특기자 프로그램(KEE 1431)’이런 변태적 방법을 이용, 기취득점수에 입력한 가산점을 처리해서 대상자가 무사히 커트라인 안에 든 것처럼 출력되도록 조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보자가 입수한 지원자 성적순의 입학시험사정부를 통해 컴퓨터 조작으로 합격된 사례를 살펴보자. 89년도 경영학과에 합격한 서울 강남 ㅎ고 출신 정모군은 학교석차 백분율이 70.28%이다. 이는 문과반 학생이 3백명이라면 2백10등에 해당함을 뜻한다. 내시니 성적이 2~3등급인 다른 지원자에 비해 무려 10점 이상 차이가 나는 이 학생은 학력고사에서 점수를 그만큼 더 따 거뜬히 합격했다.

 독문과에 진학한 여학생 김모양의 경우는 더욱 기적적인 학력고사 성적을 올린다. 서울 ㅇ고 석차백분율이 무려 93.44%, 1백83명 중 1백71등 수준이다. 그러나 고려대 입학시험에서는 체력장을 포함, 2백79점을 얻었다. 이 학생의 아버지는 고려대 정경대 교수로 밝혀졌다. 2백90명중 2백67등(92.07%)이었던 박모군도 88년 정외과에 입학했다. 박군은 12대 국회의원의 아들이었다.

 교직원 또는 고위층의 자녀만 부정입학한게 아니다. 부산 ㄴ여고를 졸업한 이모양은 87년 학력고사 성적이 2백42점이었으나 당시 커트라인이 2백70 이상이었던 영문과에 합격했다. 어떻게 39점을 점프했을까. 부산 ㄷ고등학교 야간반을 졸업한 이양의 동생도 다음해인 88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이양의 오빠는 ㅎ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동생이 다니는 경영학과에 편입했다. 이들의 아버지는 부산의 해운회사 사장인 것으로 학생들에 의해 확인됐다.

 이쯤 되면 문교부의 감사결과에 숱한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문교부는 고려대의 입시부정을 ‘교직원 자녀 특혜가산’에 국한하고 있고, 그 숫자도 21명이라고만 밝히고 있으며, 기부금 수수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입학이 자행된 해도 88~89년 두해만 해당되는 것으로 좁히고 있다.

 제보자는 89년도 입학시험자 명부만을 놓고 볼 때 “점수 조작이 확실시되는 합격자가 1백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당시 학생들이 당사자의 양심선언, 자체 진상 조사 작업 등을 통해 뽑아낸 부정입학자 규모가 63명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사실에 매우 가까운 수치”라고 주장했다. 교직원 자녀 21명을 뺀 88년도 부정입학자는 그러므로 40명에서 80명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경우 당연히 거액의 기부금을 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인데 검찰수사에 의해 밝혀진 적이 없으므로 정확한 액수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최소 1억원 이상, 의예과의 경우 10억원에 입학증서가 암거래 됐다”는 얘기가 교직원 사이에 나돌 뿐이다. 이 돈의 일부는 재단에 전입되지만 대부분은 부정입시 업무에 관련된 개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정입학 항의와 관련, 89년 학교측으로부터 직위해제된 尹溶 전 신방과 교수는 당시 李準範 총장에게 보낸 ‘공개서한-31’에서 “이 총장이 최근 교무위원들에게 기부금 입학을 실토했다고 하는데 ···1인당 6억원만 받아도 금년도 부정입학금이 최소한 4백29억원이다. 이 천문학적인 돈뭉치를 누구누구와 분배했는지 이실직고하라”라고 적고 있다. 전 고려대 고수 金容沃씨도 자신의 책《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에서 산출근거는 없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고려대학의 부정입학자 규모는 4천5백명 수준에 이른다. 이들로부터 이준범이 착복한 돈이 1천억원에 이르고 있다.”

 고려대 주변에서는 현재 이공대 뒷산을 깍아 신축중인 4백억원짜리 대규모 병원신축공사도 이 기부금과 관계가 없지 않은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어쨌든 고려대 감사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교직원 자녀 21명에게 특혜점수를 주어 부정입학시켰다는, 매우 혐의가 가벼운 내용뿐이었고 학생들의 고발을 받아 수사한 검찰에서도 이총장에 대해 1백만원의 벌금으로 약식기소한 것이 ‘응징’의 전부였다. 기부금 수수는 둘째치고 검찰과 언론이 ‘빠뜨린’ 문교부의 감사결과만 해도 고려대의 입시부정 사례는 여러 가지가 더 있다. 감사결과를 더 간추려보자.

추가등록 의혹: 등록을 마감한 뒤 45개 학교에서 1백75명의 미등록자가 발생하자 입시관리위원회 및 교무위원회의 심의나 입학허가권자인 총장의 결재 없이 불합격자중 추가합격자 1백75명을 임의로 합격자명부에 등재했다. 또 미등록자에 대해 등록포기 여부 확인 등 구체적인 증거서류 없이 임의로 불합격 처리한 사실도 감사결과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성적순을 추가 합격자를 발표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힐 도리가 없다. 시험지는 불태워지고 없기 때문이다. 전산 처리된 입학시험자 명부가 있지만 부정한 손이 컴퓨터를 조작했기 때문에 이것도 믿을 수 없다.

허위보고·바꿔치기: 의예과 지원자 1명의 경우 88년 12월4일자 합격자 사정원부에는 불합격으로 처리한 뒤 12월21일자 교무처장 전결로 사정기준 없이 입학허가, 89년 3월17일자 문교부 신입생 보고 명단에는 합격자로 둔갑시켜 제출했다. 또 의예과 추가 합격자와 동일한 점수를 받은 한 학생을 불합격처리하고 대신 입학원서 지망학과를 토목공학과로 고쳐 입학을 허가하고 문교부 신입생 명단에 보고하기도 했다.

학사편입 의혹: 89년도 8개 단과 대학 3학년 졸업정원의 2% 범위내인 87명의 학사 편입생을 모집하면서 지원자 3백4명을 대상으로 사정기준의 결재품의 없이 합격자를 결정했다. 무역학과에서 6명의 미등록자가 발생하자 역시 임의로 결원을 보충했다. 결원보충 과정에서 필답고사 성적이 5점이나 더 높은 2명을 제외시키고 성적이 낮은 지원자를 입학시킨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났으나 문교부는 여기에서 “합격자 선발과정에 불합리한 사실이 있음”이란 말로 결론짓고,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대학원생 선발 의혹: 학부 신입생뿐만 아니라 대학원 신입생 선발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감사 겨로가 지적됐다. 89학년도 석 · 박사과정 전기대학원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세부적인 사정기준 없이 교수 (해당학과 주임)의 특기사항 의견서 등을 근거로 합격자를 결정한 사실이 그것이다. 문교수는 이에 대한 ‘처분’에서 “선발전에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세부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하시기 바라며 관련자에 대하여는 주의 조치하시기 바람”이라는 매우 관대한 처분을 재단에 ‘주문’하고 있다.

회의록 없는 교무위원회: 입시관계 회의는 물론 교육에 관한 중요사항을 종합심의 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 개최하고, 그 회의록을 10년간 보존 유지 관리하도록 학칙에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87년 7월8일 이후부터 교무위원회 회의록을 일체 기록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제보자는 이것이 “입시관련 서류 소각처분과 맞먹는 중대한 범죄행위”하고 지적하면서 “불태워버리고 비밀에 부쳐야 할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말해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라고 못박았다.

검찰. 약식기소로 처벌 시늉만
 학생들의 고발로 이 총장에 대해 조사를 벌였으나 단돈 1백만원의 벌금에 약식기소로 끝낸 검찰의 조사결과는 후하게 봐준 문교부의 감사결과에도 훨씬 못미치는, 그저 ‘시늉만 한’ 내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총장이(89년 사임)취임 첫해인 86년에 1명, 87년에 2명을 부정입학시키도록 교무처장에게 지시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교부 감사결과(89.6)가 나오고도 1년반이 지난 90년말의 발표다. 89년도에만 수십명의 학생을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시킨 사례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고, 문교부 감사에서도 이총장의 책임을 물어 재단에 해임을 요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검찰의 수사결과는 너무나 미진한 것이다. 검찰은 이 전총장이 부정입학과 관련 “기부금을 기대한 것 같으나 금품수수는 없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제보자는 가져온 자료에 대한 설명을 마치면서 이러한 엄청난 부패, 그것도 명문사학의 비리가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고 교육당국이나 수사기관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것, 바로 이것이 한국적 부패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고 말했다. 각계의 힘있는 곳에 골고루 포진해있는 막강한 학연과 그보다 더 힘있는 언론을 갖고 있으니 썩는 냄새가 언제 새나갈 틈이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서류뭉치를 안겨주면서 다음과 같은 한가지 ‘유언비어’를 전해주고 자리를 떴다. “수서문제가 뒤늦게 커지게 된 사연이 있답니다. 한보 이 사람들이 국회 상임위에 로비를 하면서 ㄱ위원회에는 주었으나 ㅎ위원회를 빼먹고, 출입처에 대해서도 몇몇 언론사를 소외시키는 바람에 처음에는 조용하다가 ‘로비설’이 나오니까 벌떼처럼 일어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보자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렇다고 내가 못먹어서 찌르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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