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수사대 '직업명'에 신음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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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경 지하철범죄수사대 金敏洙 순경(30)은 요즘 비염을 앓고 있다. 하루 종일 지하에서 생활해야 하는 데서 오는 직업병에 걸린 것이다. 김순경은 "병에 안걸리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 오전 9시까지 치기범들을 찾아다닌다. 통상 소매치기는 출퇴근 시간에 설쳐대기 때문이다. 파김치가 돼서 수사대로 돌아오는 시간은 대략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 소매치기도 낮에는 뜸해 이때 약간 휴실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오후 3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는 다시 신경을 곤두세우고 소매치기를 찾아다녀야 한다. 더구나 이틀에 한번 돌아오는 심야근무 때는 새벽2~3시에 집에 들어가기 일쑤이다. 그나마 건수를 올리면 귀가는 포기해야 한다. 밤새 조서를 꾸며야 하기 때문이다.

“볕 쬘 시간도 없이 소음과 먼지 투성이인 지하철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다고 일요일이라도 제대로 쉬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한달에 기껏해야 두 번 쉴 수 있다. 공휴일은 생각도 못한다. 당연히 지하철수사대 요원들은 대개 한두 가지씩 병을 달고 다닌다. 주로 비염 호흡기장애 만성두통 등으로 고생한다. 요원들은 "서울 공기가 나쁘다고 하는데 하루에 어쩌다가 한두번씩 지상으로 나오면 꼭 공기 좋은 시골에 온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당장 희망은 5일에 한번 쉴 수 있도록 '위'에서 인원을 충원해주는 것이다. 지하철범죄수사대는 서울과 부산 두 군데 있는데 모두 시경 강력과 도범계 소속이다. 서울의 경우 총인원은 41명이지만 순수 수사요원은 18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서울시 지하철 4개 노선을 책임져야 한다. 부산이라고 더 나을 게 없다. 그나마 피의자들이 검찰이나 법원에서 혐의를 부인하면 증인으로 출두해 근무에 공백이 생긴다.

또한 지하철에서는 통신이 잘 안돼 급박한 상황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호출기도 지하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매치기 사건은 사회의 이목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특진 기회가 거의 없다. 적당히 요령을 피우지 않으면 제 몸만 축나는 실정이다. 요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3~5교대로 근무하는 파출소에 파견돼 '죽는 소리'를 하는 동료가 부러울 따름이다.

97년에는 지하철이 8호선까지 개통된다. 지금의 인원과 장비로는 늘어만 가는 지하철범죄에 대응할 수 없다. 일단 지하철범죄수사대는 97년까지 독자적인 '지하철경찰대'(가칭)를 설치해야 한다고 경찰청에 건의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당장 격무와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수사요원들에 대한 배려가 더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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