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밥에만 마음 있는 경제단체들
  • 조용증 기자 ()
  • 승인 199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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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사 입장 대변 않고 정부 눈치보기 · 로비에 주력 ··· 수 증가로 업무중복 현상도
지난해말 우루과이라운드회의가 한창이었을 때 부문별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경제부처 공무원과 동행했던 한 관계자는 김포공항에서 목격한 ‘사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출국수속을 서두르던 건설부 공무원은 누구를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한 경제단체 직원이 나타났고 그에게 촌지 명목으로 두툼한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오랜 유학생활을 한 연구원은 아연실색했지만, 그는 각종 경제관련 이익단체들과 권력 사이에 오가는 뒷거래의 한 장면을 목격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익단체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집단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이익단체는 정치적 외압과 조직의 집단이기심으로 일그러진 행태를 보여왔다. 더욱이 이익단체들은 가입회원들로부터는 소속집단의 이익을 충분히 대변해주지 못한다는 비난과 정부나 국회 등 권력집단의 끊임없는 외압에 이중으로 시달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뇌물외교에 직결되어 물의를 빚은 무역협회와 자동차공업협회도 무수한 이익단체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경련ㆍ대한상공회의소ㆍ무역협회ㆍ중소기업협동중앙회 등 4개의 종합경제단체를 비롯, 업종별협의회ㆍ지방협동조합 등 모두 1천여개의 경제관련단체가 난립해 있다. 단체마다 회원업체수가 수십개에서 수만개까지 되기 때문에 웬만한 중소기업이면 최소한 한곳 이상 가입해 있다. 큰 기업의 경우 10~20개 단체에 중복 가입돼 있는 것이 보통이며 일부 종합상사들은 1백개에 가까운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이들은 가입단체마다 회비를 내야 하므로 30대 그룹의 경우 단체회비만 매년 최소한 억대 이상에 이르고 있다. 각 단체가 운영하는 특별기금과 장부상에도 나타나지 않는 비자금류를 포함하면 기업체 부담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관변냄새 짙은 곳이 대부분
 이런 단체의 구성과 운영의 난맥상도 문제이다. 경제단체치고 회원들의 자발적 의사를 강조하지 않는 단체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지 못하다. 아예 발족 때부터 관변냄새가 짙은 곳이 대부분이다. 1천여 단체 중 30% 가량은 특별법에 발족 근거를 두고 있고, 민법ㆍ중소기업협동조합법 등 각종 법규에 의하지 않은 순수한 임의단체는 4~5%에 지나지 않는다.

 연간 수백억원에 달하는 무역특계자금을 거둬들이는 무협도 법률에 의해 무역업을 하는 기업은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비자발적 단체이다. 상의는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이 의무적으로 가입, 일정액의 회비를 내야하는 강제적 성격의 법정단체이다. 중소기업을 위한 기협도 연간 예산의 70%를 정부에서 보조받아 구조적으로 독자적 사업이 불가능하다.

 큰 문제점은 이런 단체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민간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경련과 경영인총연합회를 제외한 경제단체들은 대부분 관변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각 단체의 임원구성을 보면 관이나 정치권쪽의 영향력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무역협회의 경우 13명의 임원 중 회장ㆍ부회장을 포함한 7명이 외부 인사이다. 대부분 상공부 출신으로 5공 때까지만 해도 말단직원의 인사에 청탁이 잦아 ‘상공부 양로원’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같은 낙하산식 인사가 거의 사라졌으나 인사적체에 따른 내부 불만이 쌓이고 있다. 기협의 중앙이사진은 아직도 그 승인권이 상공부에 있다. 현재 4명의 이사 중 2명이 군 또는 상공부 출신이다. 전국의 여러 조합들의 경우에도 조합이사장은 회원들이 뽑지만 임원진에는 군 또는 상공부ㆍ조달청ㆍ감사원 등 정부부처 출신이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정부정책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환영 일색의 발표문을 내기가 일쑤이다.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인 조사업무의 경우만 하더라고 정부부처의 눈치를 보느라 민간경제의 어려움을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각 단체는 너나 할 것 없이 업계 및 국가경제의 발전을 설립목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경제정책 방향이나 인허가 업무 등에 관한 로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전경련의 경우 1백41억원의 연 예산 중 기밀ㆍ접대 등에 쓰이는 사업활동비가 7억5천만원에 이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같이 정부보조를 받고 있는 단체도 판공비가 1억원 가까이 되고 업종별협회도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의 예산을 대외활동비에 할당하고 있다.

정치권에 ‘인사’ 잊지 않아
 자금 살포의 대상이 되는 정치권에서는 각종 협회ㆍ단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으면 ‘소문나기 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공직자나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 의원들에게 외유ㆍ명절ㆍ경조사 등의 명목으로 ‘인사’를 잊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이 외유시 해당국가의 자료를 보내달라거나,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소관 경제부처 또는 단체에 알려 간접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 땅에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는 무역협회는 우리나라 이익집단 가운데 규모면에서나 영향력면에서 단연 우위를 점하고 있다. 총리급 각료 출신들이 주를 이루는 역대 회장의 면면만 살펴보더라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무역협회는 민간보다 관쪽에 경사된 정책수행을 떠맡아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협회의 한 관계자는 “회원사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정부 정책의 홍보나 대리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홍보가 대리역할이란 무엇인가. 물의를 빚고 있는 무역특계자금만해도 외국물품 수입시 반강제적으로 징수하는 것으로 조세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 자금 가운데 9백억원을 무역센터 짓는데 쏟아붓는가 하면 외무부ㆍ상공부 등에 변칙 지출한 사례가 이미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실제로 무협은 수출증진이라는 본연의 업무보다는 자산증식에 열을 올려왔고, 몇해째 이어지는 수출부진에 대해 무협이 한 일이라고는 고작 몇차례의 환율인하 건의에 그쳤다는 비난도 듣고 있다. 해외시장 정보수집에서도 경쟁관계에 있는 무역진흥공사와 상이한 정보와 분석결과를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말을 들어왔다.

 뇌물외교와 함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자동차공업협회는 회원사인 자동차 메이커들의 막강한 재력에 힘입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 강력한 압력단체 역할을 해왔다. 현대 대우 기아 쌍용 아시아 등 5개 자동차 메이커로 구성돼 있지만 1년 예산은 20억원 규모이다. 모든 업종이 망라돼 있는 전경련ㆍ상의 등 기타 경제단체의 예산 1백억원에 비하면 얼마나 풍부한 자금줄이 형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뇌물파동에서도 자동차공업협회가 제공한 의혹자금의 액수는 무역협회가 제공한 것에 비해 무려 3배에 달했다. 자동차공업협회는 지난 88년 9월에 간판을 내걸어 창립된 지 2년이 좀 지났지만 로비실력이 발군이라고 업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경제계는 경제단체들의 이같은 ‘위상이탈’에 대해 수십년간 계속되어온 관 주도 경제구조에서 그 뿌리를 찾고 있다. 정책방향에서부터 소소한 인허가 업무에 이르기까지 정치 관료집단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에서 민간경제는 그 압력에 쉽게 굴복하거나 눈치보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주도권 싸움 벌이기 일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경제단체의 설립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국제민간경제협의회ㆍ경제단체협의회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재계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느 단체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의 소리가 높다. 독립된 민간단체로서 회원들의 정당한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 채 정부에 대한 건전한 비판세력이 되기보다는 그 눈치나 보는 소극적이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단체는 서로 반목하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기 일쑤여서 단결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제단체의 수가 계속 증가, 업무중복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단체의 해체 등 경제단체 재편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북방경협의 창구단일화를 위해 설립된 국제민간경제협의회(IPECK)와 노사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출범한 경제단체협의회ㆍ경제인동우회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단체의 대표격이다. 이런 단체의 역할이 기존 경제 단체와 업무중복은 물론 업무마찰마저 일으키고 있다. 현재 그 위상이 크게 흔들이고 있는 IPECK는 정부가 반관ㆍ반민형태로 출범시켜 북방경험을 맡아왔던 전경련ㆍ무협과 심한 갈등을 보였다. 이와 같은 현상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회원수가 가장 많은 상의 하나만으로도 전경련ㆍ경총ㆍ무협의 업무를 총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번 뇌물외교 파문으로 각 단체가 회원사뿐만 아니라 특권층의 이익도 대변해왔음이 일부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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