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부도징후' 읽는 방법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2.05.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물품구입 급증어음거래 불량은 적신호경영주 신용조사 선행해야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나면 기업은 망한다. 한 기업이 부도를 내면 그 회사와 거래하던 기업들도 외상매출금을 회수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거래처의 부도로 인해 돈의 흐름이 막히면 연쇄적인 자금난이 닥치다. 연쇄도산을 피하기 위해 높은 이자를 주고 돈을 끌어쓰다 보면 잘 나가던 기업도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액수가 적으면 그럭저럭 사업을 꾸려갈 수 있겠지만 몇천만원, 몇억원의 손해가 발생하면 1년 장사가 헛장사가 된다. 최악의 경우 연쇄도산을 맞을 수 있다.

부도를 내고 싶어 내는 사람은 없겠지만 부도위기에 몰리면 사람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 어차피 부도를 낼 바엔 우선 나 살 것부터 챙기자는 음험한 생각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서울 리버사이드호텔의 실소유주 金東燮씨가 지난 3월25일 부도를 내기 전 한달 사이에 무려 1백75억 상당의 어음을 마구 발행해 거액을 착복한 혐의로 수속된 사건은 이같은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법정관리를 악용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재산을 제3자 명의로 빼돌린 뒤 법정관리를 신청해 부채를 동결하는 수법이다. 이렇게 되면 채권자는 발을 동동 구를 뿐 대책이 없다(본지 130호 58~60쪽 기사 참조).

 

부도 직전 '먹고 도망가는' 사례들

부도의 불똥은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만 튀는 것이 아니다. ㅈ신문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91년 상가분양 사기극에 휘말려 퇴직금을 몽땅 날렸다. ㄴ건설의 상가분양 광고를 보고 전망이 있다고 판단, 15년간 근무한 퇴직금을 가불해 계약금과 중도금을 치렀으나 건물주가 상가를 짓는 척하다가 4백30억원 상당의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도주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건 올리고 부도를 내는 사업자들은 주로 자동차컴퓨터집기비품 등처분하기 손쉬운 물건을 마구 사들이는 경향이 있다. 구입한 물품을 현금화해 자기몫을 최대한 챙기려 하는 것이다. 선물용으로 흔히 쓰이는 구두표가 이동되는 경우도 있다. 90일짜리 어음을 발행하고 구두표를 대량 구입, 싼 값에 팔아 돈을 챙기는 것이다. 5만원짜리 5백장이면 2천5백만원 규모다.

ㅇ제화 영업부의 한 관계자는 "고의인지 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구두표를 발행해주고 받은 어음이 부도가 더 많아져 자금사정이 악화됐다"면서 "요즘에는 첫 거래를 틀 때 회사가 생긴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영업실적은 어떤지, 자산규모는 얼마나 큰지 등을 헤아려 의심스러우면 거래를 안한다"고 말한다. 영업사원이 실적을 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거래 상대방의 신용도를 조사해보지 않은 채 거래를 하면 동티가 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수없이 부도 피해를 입었는데 그것도 일종의 경험이 되어 요즘은 예방조처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ㅇ제화에서는 영업부서장들의 경험담 위주로 사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영업부서장들은 "매출규모에 비해 주문량이 많다고 판단되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등 실전적 교훈을 들려준다.

유농업체들이 부도 직전 '먹고 튀는' 사례도 있다. 부동산 등 본업 이외의 사업에 투자 했다가 손해를 본 어떤 가전제품 대리점은 제조회사 담당 부장을 구슬러 물건을 만히 끌어대 이를 싼값에 신속히 처분한 뒤 부도를 냈다. 슈퍼마켓에서도 이따금 이런 유형의 부도가 발생한다. 각종 선물세트가 쏟아져 나오는 추서이나 연말연시에 가급적 값비싼 선물세트 같은 상품을 최대한 많은 메이커나 대리점으로부터 뽑아낸 뒤 물품명세서를 기준으로 값을 쳐서 제3자에게 슈퍼마켓을 팔아넘긴다. 이 경우 슈퍼마켓은 이미 남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납품업자는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

상습적으로 '먹고 튀는' 악질들도 없지 않다. 사무실을 으리으리하게 차려놓고 가구 컴퓨터 등 사무용품을 수천만원어치 구입한다. 대금은 물건을 가져오면 지불하겠다고 약속한다. 납품업체에서 물건을 가져왔을 때 사장은 부재중이다. 직원들만 있어 돈을 받을 수 없다. 이런 큰 회사에서 설마 떼어먹으랴 하는 생각에 나중에 받으러 오겠다고 말하고 돌아가면 사장이 나타나 포장도 뜯지 않은 비품을 도매시장에 곧장 내다 팔고 도망친다. 이들은 지방 소도시를 돌며 유령회사를 차린 뒤 위와 같은 수법으로 선량한 사업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음을 끊지 않았으므로 부도조차 나지 않는다.

채권관리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한국판매전략연구원 安英一원장은 "경기가 나빠지면 재고가 많아져 기업들은 저마다 물건을 팔기에 급급하게 마련인데 그런 분위기는 사기 풍토를 조장할 수 있으므로 거래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부도를 알리는 몇가지 일반적 징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우선 물품 구입량이 갑자기 많아진다. 어음결제에 쪼들리다 보면 원자재나 비품 등을 턱없이 많이 사들여 제 값 이하로 처분하여 자금을 조성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납품업자가 무조건 좋아할 일은 아니다. 한번도 거래하지 않은 회사가 물품을 사고 싶다고 할 때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신용이나 지불조건 등에 문제가 있어 기존 거래처와의 관계가 끊어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3년 연속 적자를 낼 경우 여간해서는 회복하기 힘들다. 3년 이상 적자를 보고 있는 기업과의 거래는 그만큼 위험하다. 매출액만 보고 기업의 건강상태를 진단할 수는 없다. 적자를 보는 기업일지라도 매상이 늘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상이 는다는 사실만 믿고 물품이나 원료를 납품하다가 자칫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본사 사옥을 신축하거나 구입하는 것은 사세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나 이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지난 3월 부도를 내 물의를 빚은 바 있는 의류 제조업체 논노의 경우 부도 원인은 무리한 부동산 투자였다. 한때 부동산 경기가 좋다고 해서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사옥오피스텔 등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으나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자 이것들이 오히려 제목을 조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옥은 생산성과 직결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자금을 묶는 역효과를 연출한다. 건축비와 운영자금 조달에 자금동원 능력을 쏟아붓다 보면 전반적으로 자금사정이 나빠지는 것이다.

어음거래가 불량해지는 것도 좋지 않은 징후다. 지불기일을 연장해달라거나 하면 그 회사는 중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음 결제일이 이유없이 앞당겨지는 것도 단순히 기뻐할 일은 아니다. 자금조달이 힘들어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리게 되면 결제일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급일자가 빨라졌다 늦어졌다 하게 돼 나쁜 조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제은행을 2차3차 변경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신호이다. 회사의 재무상태가 나빠 거래은행이 어음용지를 제한할 경우 회사는 다른 금융기관에 예금을 하고 어음용지를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이자가 높은 어음을 돌리는 회사는 부도위험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래선이 자주 바뀐다면 일단 경계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거래선이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 때문에 납품을 중단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차 큰 거래선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회사와 거래하다가는 자칫 크게 물릴 위험도 있는 것이다.

 

경리 책임자 만나기 어려우면 위험신호

기업에 있어서 감량경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잇다. 사람의 머릿수를 줄이는 것은 기업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는 있으나 중견 간부나 실력있는 기술자의 퇴사는 심상찮은 조짐이다. 사람의 드나듦이 빈번하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가 안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장의 행동에서도 부도의 징후를 읽을 수 있다. 여자문제로 소문이 끊이지 않으면 회사의 자금이 새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장이 술이나 골프에 빠져 있는 것도 위험신호다. 한국의 기업풍토 속에서는 어느 정도의 접대가 불가피하지만 사교 모임에 탐닉하느라 정작 중요한 회사일에 몰두하지 못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잇다.

사장이나 경리 책임자를 만나기 어렵다면 일단 자금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장은 대외 업무 때문에 외출이 잦을 수 있지만 경리 책임자가 자리를 자주 비운다면 나쁜 징조로 봐야 한다.

사장실이 지나치게 호사스럽거나 벽에 각종 공로패감사패 등이 즐비하게 붙어 있을 경우 그 사람의 신용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상습적으로 남의 돈을 먹고 도망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려한 겉치장으로 남의 눈을 속이기 때문이다.

부도의 징후를 안고 있는 회사가 발행하는 어음은 부도채권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뒤탈을 예방하면서 거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래 도중에는 담보를 잡는다거나 계약조건을 분명히 명시하는 등의 여러가지 조처가 필요하지만 거래를 시작하기전 상대방의 신용을 조사해보는 일이 무엇보다 먼저 선행돼야 한다.

안영일 원장은 "재무제표를 분석하고회사 규모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영주의 인간성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대금 지불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그 돈으로 증권부동산 등 다른 분야에 투자해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보아야 한다"고 권한다. 그것이 바로 신용의 징표라는 것이다.

 

막판 챙기기고의부도 피해도 상당수

다음으로 거래처 사장의 경영능력도 조사해 보아야 하는데, 회사나 재산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람보다는 10년 이상 착실하게 기업을 키워온 경영주가 대체로 신용상태도 양호하고 불경기를 잘 이겨낸다는 진단이다.

안원장은 "으리으리한 사무실을 차려놓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데 그것들이 회사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명의로 되어 있을 경우 부도가 나면 채권자로서 그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으므로 조심해야한다"고 덧붙인다.

거래를 시작하기 전에 신용조사를 했을 때는 아주 양호한 것으로 평가됐지만 거래 도중에 불경기가 닥친다거나 경쟁력을 잃는 등의 이유로 신용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거래도중에는 그 회사에서 부도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지 아닌지를 유심히 살피면서 대처해야 한다.

금융결제원의 발표에 따르면 올들어 3월말까지 총 1천3백72개의 기업이 부도를 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된 관련업체의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그중에는 막판 챙기기 또는 고의 부도에 의한 피해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신중한 거래가 필요하다. 부도를 내기 전에 나타나는 도산의 조짐을 눈여겨 보고 경영주에 대한 신용평가를 토대로 거래처를 선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억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