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가려낼 사람이 없다
  • 우정제 기자 (cj0208@hanmail.net)
  • 승인 199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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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시비 늘어 ··· 감정사 육성, 제도적 장치 마련 시급

최근 유명 작고화가들의 그림을 상습 위조해온 가짜그림 제작자들이 적발된 사건은 우리 미술계의 고질적 병폐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진짜와 가짜를 명확히 식별해 건전하고 안전한 거래풍토를 조성하는 길은 없을까. 가짜 그림의 은밀한 직거래가 길은 없을까. 가짜 그림의 은밀한 직거래가 성행하고 있는 최근 2~3년 사이 미술품 감정을 원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으나 속시원히 판별해줄 전문 감정인이 드물어 미술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시중에 위작이 성행하는 작가로는 고화의 경우 단원 혜원 오원 겸재 현재 등 三園三齊가 대표적이고 이밖에도 청전 이상범이나 소정 변관식, 이중섭 김환기 오지호 도상봉 최영림 남관 김기창 김흥수 천경자 중광스님등 일일이 작가명을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정식수업을 거친 감정사가 전무한” 우리 미술계에서 현재 이들 가짜그림에 대해 ‘권위있는’ 판별을 내려줄 전문가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극소수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감정이 화랑협회, 혹은 고미술협회에 설치된 감정위원회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난 82년에 설치된 화랑협회감정위는 한국화와 서양화 2개분과로 나뉘어 평론가, 작가, 화랑관계자 등 각 7명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원 비공개원칙에 전원합의가 돼야만 진품 판정을 내린다. 88년까지는 가격감정의뢰가 대부분이어서 총 의뢰건수 1천여점 중 진위감정이 1백25점에 불과했으나 이후 차츰 진위판정 의뢰가 늘고 있다.

 한편 80년에 설치된 고미술협회 감정위는 회화 서예 도자기 토기 목기 · 민속 금속 · 선사유물 석공예 장신구 전적 등 9개 분야로 나뉘어 각 5~7명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위원회에서는 가격감정은 하지 않고 진위감정만 하는데 지난해 총 의뢰건수 4백50건 중 40%가 안품(위작)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감정료는 작품 한점당 7만5천원으로 화랑협회 감정위의 작고작가 30만원, 생존작가 15만원선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기구에서 발급한 감정서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작 시비가 법정으로 번지더라도 정당한 근거 자료로 인정받을 수가 없는데 이는 두 위원회가 국가로부터 공인된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감정사 양성기관을 둔 미국과 유럽에서는 미술품 감정이 이미 본격적인 전문직의 하나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뉴욕에서는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이 변호사처럼 개인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파리에서는 8년 수업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따게 돼 있는 경매종사자들이 감정사를 겸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경우는 고미술품의 수복(修復)을 비롯한 각종 교과와 함께 기계 · 약품에 의한 지질이나 캔버스의 노후도 측정, 색소 분석, 레이저 단층촬영에 의한 밑그림 투사등 여러 가지 과학적 감정법도 체계화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미술품 수입개방으로 해외 미술품의 거래 물량이 크게 늘어 작품의 진위 판별에 애를 먹고 있는 국내 수입상들은 현재 대부분 파리로 위작 판정을 의뢰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이같은 외국의 제도에 견주어 “미술시장이 급격히 양적팽창을 하고 있는 우리 경우에도 각 비술대학이 하루 속히 교과를 개설, 감정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작가와 수용자의 교량역인 전문가의 층이 빈약한 것도 감정사교육의 제도적 정착을 막는 큰 원인이므로 문예정책 담당자들이 보다 근본적인 구조문제에 주목,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의 우리 미술계 형편으로는 소비자가 제아무리 ‘가짜’에 노출되어 있다 해도 별다른 보호막이 없을 듯하다. 전문가들은 △가능한 한 공신력있는 화랑을 통해 거래하고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초대개인전을 할 때 구입하는 것이 작품선정에 유리하며 △해외미술품의 경우 믿을 만한 보증서를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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