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사업 백지화해야 마땅”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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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 ‘백지화 재검토’ 지시에 학계 ․ 문화계 반발

서울 용산구 용산동 1가 옛 육군본부 자리에 신축중인 전쟁기년관이 당초 계획대로 세워지게 되었다. 따라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대로 남게 되고, 경복궁 복원 문제도 6월14일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지난 6월14일, 내년 6월 완공 예정인 전쟁기념관 사업을 백지화하고 그 자리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전해 가칭 ‘민족기념관’으로 개관한다는 민자당 안이 발표 3일 만인 17일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다시 백지화됐다. 김대통령은 이 날 오전 김종필 민자당 대표와의 정례 회동에서 “전쟁기념관은 내부 구조가 공사의 진척도로 볼 때 박물관으로 전환해 활용할 수 있는 정도를 지났고 설계변경도 불가능한 것 같다”라며 전쟁기념관 사업의 백지화 방침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전쟁기념관 사업이 입안 단계에서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그 취지 또한 문민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를 백지화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전하여 민족기념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라고 한 민자당의 14일 발표는, 오래 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전하고 옛 총독부 거물을 헐어야 한다고 주장해오던 학계 ․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민자당 방침은 전쟁기념관 사업 백지화→국립중앙박물관 확장 이전→옛 총독부 건물 철거→경복궁 복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첫 단추’인 전쟁기념관 백지화 방침이 다시 백지화됨에 따라 군사 문화와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문민 시대에 서울 정도 6백년(94년)과 광복 50주년(95년)을 뜻깊게 맞이하면서,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고자 했던 학계 ․ 문화계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7일 대통령이 전쟁기념관 사업 백지화 방침을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는 뉴스를 접한 학계 ․ 문화계 인사들은 당혹해 하며 납득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총독부 건물 철거, 경복궁 복원 등의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전쟁기념관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회장 조항래 교수(숙명여대 ․ 학국사학)는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옮기지 못하면, 앞으로 김대통령의 임기 동안 중앙박물관을 이전할 부지를 확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의 철회 발표는 철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교수는 곧 이 문제에 대한 공청회를 열것이라고 밝혔다.

“옛 총독부 건물 헐어야 한다”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자고 주장해온 이현희 교수(성신여대 ․ 사학)도 대통령의 전쟁기념관 사업 관철 지시는 여론을 무시한 처사라면서 관련 학회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의 추정에 따르면, 총독부 건물 해체 비용만 2백억~3백억원이 드는데, 여기에 신축 부지 및 이전 비용을 더하면 1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막대한 사업이다. 그렇다고 서울 시내나 근교에 적당한 부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문제연구소 이이화 소장은 대통령의 전쟁기념관 사업 백지화 방침 철회 지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중앙박물관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이라고 강조했다. “새 박물관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현시점에 전쟁기념관으로 중앙박물관을 이전하려는 계획에 찬성한다”는 이소장은, 6 ․ 25 관련 전시물이 대부분일 전쟁기년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제 모습을 갖춘 뒤에 새로 지어도 무방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극일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소설가 박경리씨는 “총독부 건물이 다른 장소에 있다면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우리의 뿌리에 버티고 서 있기 때문에 반드시 철거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이 자주 바뀌면 안된다”라고 전쟁기념관 사업 백지화 철회 지시를 비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전에 따른 총독부 건물 철거, 경복궁 복원, 그리고 서울 정도 6백년과 8 ․ 15 50주년을 연계하지 않더라도 전쟁기념관 사업은 90년 이후 언론의 비판을 받아왔다. 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로 전쟁기념사업회(회장 이종형 예비역 중장)가 발족하면서 추진된 전쟁기념관 사업은, 그동안 그 취지와 입안 과정은 물론 국민 여론으로부터 유리되었다는 점, 예산 조달, 그리고 전시 유물의 질적 수준 및 완공 후 운영 등에 걸쳐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돼왔다. 92년 10월 완공될 예정이었던 전쟁기념관은 총 1천 2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부지 3만5천평 구입 비용을 감안하면 최소 5천2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국유지이기 때문에 부지는 무상)

전쟁기념관 무용론 ․ 비판론도
 조항래 교수는 “전쟁기념관은 우리 만족이 겪은 전쟁과 국난 극복의 발자취를 모은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것보다는 6 ․ 25남침 전쟁에 관련된 내용을 더 비중있게 다루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족 간의 싸움인 6 ․ 25는 민족적 자존심을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실추시킨 매우 면구스러운 전쟁 형태이다”라고 전쟁기념관 무용론을 피력했다.

 군 내부에서도 일부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쟁기념관 사업 자금에 조달된 성금 20억원은 국민적 호응이 기대되지 않아 장병들의 봉급에서 갹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쟁 기념관 사업에 들어간 예산 집행 액수는 89~93년 모두 약 1천1백27억3천만원이다.

 지난 4월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중앙박물관을 이전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전쟁기념관 사업 백지화 업무에 관계했던 한 당국자는 “현역 장교들은 지금까지 전쟁기념관에 들어간 국방예산이 군인복지 부문에 들어갈 것을 돌려서 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 대목이 군 내부 반발 요인의 하나이다. 일선에서 근무하는 영외 거주 장교와 하사관의 생활 수준은 일반 사회의 그것과 비교할 때 매우 열악하여 전쟁기념관에 들어갈 예산으로 군인 주택과 같은 복지사업을 펼치라는 주장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쟁기념관 소속 직원은 대개 관리직 위주로 84명인데 이 가운데 임원과 고위직이 56명으로 ‘역 피라밋’ 형태이고 자질을 갖춘 전시 전문가도 거의 없다. 앞으로 들어갈 운영 경비도 문제점으로 부각되어 있다. 최소한 2백억원의 운영 경비가 매년 요구되는데, 그 경비는 대부분 정부 예산에서 배정해야 한다.

 게다가 전쟁기념관의 성격이 독립기념과, 육 ․ 해 ․ 공군 박물관 및 육사 ․해사 박물관과 부분적으로 겹친다는 문제 제기와 아울러 6 ․ 25와 월남전 이외의 전쟁 관련 유물, 예컨대 동학 이전의 전쟁 관련 전시물이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이같은 비판론에 대해 전쟁기념사업회측은 “이 사업은 88년 당시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씨가 합의해 거론 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기념관 시설이 6천평이라고 보도되고 있으나 실제 전시공간은 3천평으로 중앙박물관과 같다고 밝혔다. 동족 상쟁의 비극인 6 ․ 25를 기념해야 하는가라는 여론에 대해서도 기념회측은 “6 ․ 25는 동족상잔이 아니라 소련과 싸운 것”이라며 되새길 의미가 있는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장교들의 봉급에서 모금했다는 지적에 대해 “갹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 사회의 성금에도 반발이 있는 것처럼 군 내부의 반발도 그런 성질의 것이다. 군 내부 및 예비역의 참여로 20억 성금을 모았다”라고 기념회측은 밝혔다. 개관 이후 운영비가 연 2백억원이 필요하다는 외부 의견에 대해 기념회측은 “과장이다. 전체 운영비는 80억으로 추정되는데 회관 수익을 30억원으로 잡으면, 연 50억원 정도의 국고보조가 필요하다”라고 답변했다. 기념회측은 전쟁기념관이 교육 측면에서 투자 효과가 분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 관장은 박물관은 정책결정 기관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이전 확장은 환영하지만, 단순히 넓어진다는 사실만을 반길 일은 아니다”라면서 박물관 공간의 특수성을 들었다. 정관장은 “이전 결정이 내려지면 이전하겠지만, 새로운 부지를 확보해 외형과 내실을 갖춘 명실상부한 국립중앙박물관이 건립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현재 신축 이전 계획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전관장은 문화부 추천으로 전쟁기념사업회 이사직을 받고 있다.
李文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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