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진출한 ‘풀 농사꾼’
  • 강원도 평창군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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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식물협회 김창렬 회장, 할미꽃 ․ 만리향 등 야생화 재배 성공

붓꽃 할미꽃 초롱꽃 원추리 쑥부쟁이 패랭이 구절초 비비추 처녀치마․ ․ ․.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한국의 들꽃이다. 알려진 바로는 한국의 4천3백여 식물수종 가운데 꽃이 피는 풀은 약 3백종이다. 이들은 사시사철 온갖 모양으로 꽃을 피워 한국의 산야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이렇게 수많은 한국의 들꽃만 10년 가까이 혼자서 보듬고 가꾸고, 대량 재배해 일반에 보급해온 사람이 있다. 강원도 오대산 기슭에서 ‘풀농사’를 짓고 있는 한국자생식물협회 회장 金昌烈씨(45)가 그 사람이다.

 김씨가 처음 야생꽃 가꾸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 84년 무렵이다. 그전까지 김씨는 출판업을 하기도 했고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카페을 운영하기도 했다.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김씨는 이것저것 다 그만두고 농사나 짓자고 결심하고서 서울을 훌쩍 떠나 농군이 되었다.

 김씨가 처음 벌인 일은 솜다리 인공재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제곡으로도 유명한 야생 에델바이스, 바로 그 꽃을 집에서 기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85년 마침내 그는 국내 처음으로 솜다리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김씨는 “나는 뭔가 남다른 일을 벌이고 싶었다. 희소가치가 높은 야생꽃을 재배해 팔면 돈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때를 떠올린다.

에델바이스 재배해 돈 벌기도
 에델바이스는 크게 인기를 끌어 관광객에게는 즐거움을, 김씨에게는 돈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한때의 영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가 대량 보급한 탓에 솜다리의 희소 가치가 사라지자 87년부터 사람들이 흔해 빠진 꽃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야생꽃을 재배하려는 김씨의 집념은 흔들림이 없었다. 김씨는 다른 야생꽃을 찾아다녔다.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내닫는 김씨의 버릇도 이때 시작됐다.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일대 세곳에 흩어진 김씨의 ‘대관령자생화농장’ 1만여 평에는 김씨가 고생 끝에 재배에 성공한 야생화 약 2백50종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이 가운데는 꽃향기가 백리를 간다는 울릉도 원산의 천연기념물 백리향, 지생지가 금강산 일대로 알려진 영롱한 구슬 모양의 금강초롤 등 희귀 양생화도 있다. 김씨는 “제법 구경거리가 될 만한 한국 야생화는 모두 옮겨다 심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로 이곳이 ‘외국 꽃’에 밀린 한국 야생꽃이 ‘잡초’로 취급되는 설움을 씻고 원예용 화초로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는 데 있다.

 붓꽃 쑥부쟁이 원추리 들이 원예용 또는 관상용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그 가운데 구절초와 원추리 따위는 이미 경기도 용인 민속촌과 전국 주요 도시로 팔려나가 팬지와 그밖의 외국 꽃으로 가득찬 거리 모습을 바꾸고 있다. 김씨는 할미꽃과 만리향도 대량 재배해 올해 처음 일반에 분양했다. 김씨는 재배한 꽃의 일부는 오는 8월에 열리는 대전 엑스포 전시장에 조경용으로 납품해, 외국인들 앞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게 됐다.

 스스로 ‘풀농사’를 한다고 소개하는 김씨는 우리 꽃에 대한 인식이 옛날과 달라 “이젠 이 짓으로도 밥 먹고 살 정도는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씨가 야생화에 집착하는 까닭은 꼭 먹고 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야생화를 보호한답시고 멀쩡한 꽃 주위에 철조망만 쳐놓으면 그만인가. 거리는 온통 팬지다 뭐다 해서 외국꽃으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한때는 출판업이 꿈
 지난해 3월 김씨는 야생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한국자생식물협회를 만들었다. 처음에 68명이었던 회원 수는 어느덧 3백명을 넘어섰다. 이 협회가 올봄에 펴낸《한국의 자생식물》이라는 책에는 제비꽃을 읊은 박몽구씨의 시가 실려 있다.

 “․ ․ ․ 생글거리는 제비꽃 한 송이에서 너를 본다/요란한 악수는 없어도/포옹 뒤 그 자리 언제까지나/남아 있는 체온 같은/언제까지나 싫지 않은 향기 같은/내 사람아.”

 한때 출판업을 해보는 게 꿈이 었다는 김씨는 “이젠 미련을 깨끗이 버렸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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