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를 죽음으로 볼 것인가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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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이인수 순천향병원 원장. 신경외과 교수. 대한의학협회 뇌사연구 특별위원회 위원장.

뇌사상태를 사망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언어 사고 기억 의지 정서 등의 정신활동이 있고 감각할 수 있으며 호흡과 심장박동이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뇌사란 뇌의 조직이 파괴되어 뇌기능이 완전 상실돼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불가역성 뇌기능 정지상태를 말한다. 한마디로 인공호흡 기술과 소생술이 발달해 심장사 이전의 뇌사라는 말이 생겼을 뿐 전에는 사망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뇌사상태에서 아무리 오래가도 14일이면 심장사에 이른다는 것은 세계적인 통계로도 알 수 있다. 사망의 정의는 실정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면 관습에 의해 심장사가 사망이라고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뇌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뇌사상태에 있는 환자의 장기를 적출하는 것을 법적으로 가능하게 하자는 것은 아닌가?
 불가역적 상태인 환자의 장기를 적출해 건강한 장기가 없어 죽음을 맞을 수 밖에 없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뇌사상태에 있는 환자는 심장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체온이 36도 이하로 떨어지게 되는데 싸늘하게 식어가는 체표면을 어루만지면서 음식물을 공급하거나 정맥주사를 시행하는 것이 소름끼치고 처참하여 의사나 간호사, 보호자가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뇌사상태에 있는 환자는 절대로 회생 불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장기이식을 위해 뇌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파악한 의학적 공리주의의 소산이 아닌가?
 뇌사상태의 환자를 주위에서 보지 못한 국외자가 인명을 존중한다는 명분 아래 말하는 위선에 불과하다. 신장공여자가 모자라 죽어가는 많은 신부전증 환자를 보면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장공여자가 모자라기 때문에 암암리에 신장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도 우리 의료계의 현실이다. 법으로 장기적출을 못하게 되어 있어 부르는 게 값이다. 따라서 장기 매매를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해 이처럼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 운운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장기가 없어 죽어가는 상황을 생각해 봐야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심장사를 죽음이라고 정의하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심장사 이후에도 신체일부의 세포들이 얼마동안은 생존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죽음이란 한 순간의 사건(event)이 아니고 하나의 시간적인 과정(process)이라고 봐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심장ㆍ폐기능의 불가역적 정지 또는 뇌간을 포함한 전뇌기능의 불가역적 소실상태”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의사의 오판과 실수로 아까운 생명을 죽이는 살인행위가 발생하면 어쩌는가?
 신경외과 의사라면 대한의학협회에서 마련한 뇌사판정 기준안 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의 엄격한 판정기준을 모두 알고 있다. 더구나 뇌파검사 등 의학의 첨단기술이 발달해 뇌의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정지되었다는 확신을 할 수 있다. 자격있는 의사 2명 이상과 규정된 시설과 장비를 갖춘 병원에서 엄격한 확인방법등이 시행되어 이루어진 뇌사판정은 절대로 죽음을 잘못 결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또한 대한의학협회에서 마련한 뇌사판정 기준안에 따르면 뇌사판정을 악용할 소지를 막기위해 장기이식에 관여하는 의사는 뇌사판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절대로 오판이나 악용은 있을 수 없다.

유교전통의 뿌리가 깊은 우리의 현실에서 뇌사를 죽음의 기준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게 사실 아닌가?
 엄격히 판정된 뇌사환자의 뇌기능과 생명은 절대로 회생할 수 없다는 신경과학의 연구결과를 감안하여 죽음의 판단기준은 심장사여야 한다는 개념이 달라져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동양권에서 뇌사를 둘러싸고 많은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미 대만이 법으로 뇌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각국이 점차 뇌사를 인정하는 추세이다. 뇌사의 개념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무리가 있을 줄 안다. 그러나 계속해서 언론에 뇌사에 관한 보도가 나가고 과학적인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결국 뇌사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또한 뇌사와 엄격히 구별해야 할 식물상태의 생명은 무한히 존중되어야 하며 식물상태를 뇌사와 혼동하는 오해가 많은 것도 감안해야 한다.

반.  김영철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윤리학 전공.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관장

뇌사인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뇌사상태를 죽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름대로의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절대적으로 존엄한 것이다. 그 어떤 논리도 아직 심장이 멈추지 않은 인간에게서 장기를 빼내는 식의 의료행위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본다. 또한 뇌사의 인정 여부는 장기이식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사경을 헤메고 있는 환자에게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장기를 떼어내는 있는 식의 의료행위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본다. 또한 뇌사의 인정 여부는 장기이식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사경을 헤메고 있는 환자에게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장기를 떼어내어 다른 생명을 살리겠다는 발상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명의 가치에 우열이 있다는 논리이다. 대통령의 생명과 거지의 생명이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뇌사는 아주 기본적인 생명활동 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식물인간 상태와 다르며 의학적인 생명연장 방법을 사용하더라고 약 2주가 지나면 심장이 멈추게 된다. 이러한 불가역적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엄숙한 죽음을 맞이할 인간의 권리 박탈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
 뇌사 상태에 있는 환자의 소생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또한 죽음은 매우 엄숙한 과정이다. 안락사에 대한 논란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적 전통상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 때이른 감이 있다. 서양의 사생단절관과는 달리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 단절되지 않았다는 사생연결관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대다수 국민이 뇌사인정에 합의할 때까지 이 문제는 유보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심장이 멈추지 않은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낸다는 것은 살인행위와 다를 바 없다.


뇌사가 법으로 인정되면 장기이식이 훨씬 수월해지고 나빠진 장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지 않은가?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장기이식에 있어서 생착율(生着率)은 제공된 장기의 신선도에 달려 있다. 신선한 장기를 얻기 위해서는 심장이 아직 박동하고 있는 뇌사 상태에서 적출하는 것이 좋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장기의 출현을 고대한다. 이것은 솔직히 말해서 타인의 죽음을 무의식적이나마 바라고 있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수급자를 살리기 위해 제공자로부터 생명을 빼앗는 결과가 된다. 인간의 생명은 공리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지극히 존엄한 것이다.

뇌사상태에서 인공적으로 심장을 뛰게 한다는 것은 우선 의학적으로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심리적 ·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의료계의 주장이 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심장이 뛰는 자기 자식의, 자기 부모의 죽음을 앞당기려는 가족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만약 돈 때문에 죽어가는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낼 수 밖에 없는 곤경에 처한 가족이 있다면 의료제도를 개선해서라도 구제해야지 이를 방치하고 오히려 비윤리적 행위를 부채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직 우리의 사회윤리상 가족들은 의사의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해도 의학적인 이해만 할 뿐이지 심정적으로는 전혀 뇌사를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뇌사가 인정되지 않아 장기이식 분야의 의학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낙후됐다는 주장이 있다.
 의학의 발달을 위해서 아직 법적으로 사망하지 않은 인간을 모르모트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는 무기를 발달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한다는 논리와 같다. 더구나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전통윤리가 강하게 남아 있는 지금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한술 더 떠’ 인간의 장기를 매매한다면 그 이후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클 수 있다. 가뜩이나 가치관이 붕괴되고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지금 의학적 판단기준에 따라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한 전통의 관념을 뒤엎는다는 것은 시기상조다.

의학계의 동향과 전반적인 사회여론이 뇌사인정쪽으로 기운다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언젠가 임신중절 수술의 부산물인 죽은 태아가 외국으로 수출된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대다수는 안그러겠지만 상업주의에 물든 일부의 한심스런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 만약 뇌사가 법적으로 인정된다면 인간의 장기를 둘러싼 잡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 의료계 주변에 장기를 사고 파는 행위가 판을 친다면 그나마 유지되던 사회적 윤리의식이 땅에 곤두박질치는 사태가 올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뇌사인정쪽으로 기운다면 장기의 매매 만큼은 근절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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