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안되면 되게 하라”가동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2.05.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후보 독자 출마로 선거체제 돌입… 국민당 인물난에‘민자분열’기대



 국민당 지구당위원장 연수회가 열린 지난 7일 저녁 경기도 용인군 현대인력개발원 생활관의 대식당, 저녁식사가 대충 끝난 듯 하자 鄭周永대표는“종로 지구당의 李來炘 위원장! 나와서 노래 한마디 하시오”라고 특별 주문을 했다. 김한길 부대변인이 사회를 맡은 이 여흥에서 이위원장이‘칠갑산’을 열창하고, 정대표도 서유석의‘가는 세월’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비서실의 한 측근은“평소 정대표가 송대관씨의‘해뜰날’을 자주 불렀지만 몇개월 전부터는 애창곡을 바꿨다”고 귀띔했다. 이날 정대표의 노래 솜씨는 1백89명 지구당위원장들도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이보다 하루 전인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국민학교 강당. 이곳에 모인 대치국민학교 교사 및 어머니회 회원 약 3백명은 정대표의 국민학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정대표에 따르면 국민학교 시절 속으로만 좋아했던 소녀가 있었는데, 금강산 개발 문제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여자의 거취를 확인해보니 이미 저세상에 가고 없더라는 얘기였다. 원래 이날 특강은 金東吉 최고위원이 맡기로 돼 있었으나 로스앤젤레스 한인촌 흑인 폭동과 관련, 김최고위원이 갑자기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자 정대표 스스로 나선 것이다. 3·24 총선이 끝나면서 국민당은 한동안 깊은 휴식에 들어갔다. 대통령 후보 및 최고위원 경선 문제로 연일 시끄러운 민자·민주당과 달리 국민당은‘제3당 부상’이라는 추수뒤의 포만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대표만은 각종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최근에는 총선 기간 중단했던 여러 특강을 의욕적으로 재개했다. 지난 2일에는 서산 현대간척지구 내의 농장에 서울지역 초중고교 퇴임 교장 4백여명을 초청하고,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3시에 출발했다가 다음날 새벽 5시에 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이같은 부지런함의 목적은 단 하나, 오는 12월의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국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6일 鄭周永대표가 대의원 3백명의 서명을 받아 접수한 것으로 사실상 마감해 정대표 단독 출마로 확정됐다. 국민당은 15일 전당대회를 열어 만장일치 추대형식으로 정대표를 대통령후보로 공식화한다. 이로써 국민당은 민자·민주당에 앞서 제일 먼저 대통령후보를 결정짓는 셈이다. 국민당이 민자당 전당대회가 끝나는 5월 이후에나 열려던 전당대회를 이처럼 서둘러 연 것은, 첫째 대통령 선거전의 주도권에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정대표의 5남 鄭夢憲씨가 구속되는 등 현대그룹에 대한‘조이기’가 계속되자‘이러다가는 정대표가 대통령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 아니냐’하는 내부의 불안감과 전국 지구당의 동요를 조기에 잠재울 필요성 또한 시급했기 때문이다. 지난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지구당위원장연수회를 가진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연수회는 사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구당 조직끼리의 친목 다지기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당 지도부는 전국 1백89개 지구당의 위원장을 10개조로 나누어 효율적인 지역구 관리 방안에 대해 분임토의를 하게 했는데, 토의결과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정대표를 어떻게 당선시킬 것이냐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전당 대회가 열리기 전인데도 불구하고“양김 구도하에서 정대표를 어떻게 부각시킬 것인지 전략적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라는 문제가 제기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굳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민당 창당은 그 출발부터 정주영 대표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고, 이런 전제가 당내에서 묵시적인 합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서울 노원 을구의 洪性宇위원장이 일으킨 촌극은 이러한 당내 분위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경선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던 홍위원장은 이 날 정대표와 면담한 다음 당사 기자실에서“당내의 비중있는 분에게 경선 출마를 제의하고 대위원 서명도 거의 받았으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를 철회한다”고 말하고“나 자신은 백의종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당내 누구에게 출마를 권유했는지, 또 권유받은 사람이 승낙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그것과 자신의 백의종군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대답을 회피한 채 그냥“지구당위원장 사퇴의사를 밝혔다”고 말해 어딘가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겼다.

창당 자체가 정대표의 대선 출마 전제한 것


 아무튼 국민당의 공조직은 15일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 준비작업에 뛰어들었다. 지구당위원장 연수회에서 정대표가“늦어도 6,7월까지는 지역구 동별 조직책 인선을 끝내야 한다”고 독려한 것이나“지구당 운영의 애로점을 중앙당에 건의하면 모두 수렴해 전폭 지원하겠다”는 특별 지원의 뜻을 밝힌 것도 각 일선 조직을 대통령 선거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라 볼 수 있다. 중앙당이 대통령 선거 준비와 관련해 제일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정책실의 정책 개발능력 강화 문제이다. 정대표가 먼저 나서서“정책실을 늘리라”고 지시할 만큼 국민당은 정책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현재 정책실은 5개 분과의 5실 체제로 준비중인데 아직 구성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다. 정책실의 한 핵심 실무자는“오는 6월 국회가 개원하면 국민당 의원들의 모든 대정부 질문이나 상임위 활동은 정책실과 긴밀한 협의 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해 국민당의 국회 활동을 조직적이고 치밀한 준비에 따라 전개할 것임을 시사했다. 국민당의 이러한 국회 운영 방침은 물론 정책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노력에서 나왔다. 국회 상임위 중에서 경과위를 지원했던 정대표가 국방위로, 국방위를 지원했던 鄭夢準 정책위부의장이 경과위로 서로 바꾼것도 경제쪽에 치중된 듯한 느낌의 정대표 이미지를 다원화하기 위한 필요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정대표는 이와 관련해“국방위를 아주 정례화 시킬 방침”이라며“냉전이 끝났는데 예산의 국방비 증액이 왜 필요하냐”고 말해 비교적 한가로운 상임위였던 국방위가 한차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이같은 다각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당이 뛰어넘어야 할 난제는 많다. 그 첫째가 인물난이다. 신생정당답지 않게 지구당위원장조직에서는 비교적 짭짤한 수확을 올렸던 국민당이지만 중앙당 차원에서는 내세울만한 거물급 인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金孝榮 사무총장은 이번까지 4선을 기록한 증진이지만 옛 공화당 색깔이 너무 진하다는 느낌이고, 2선의 尹榮卓 정책위의장 또한 중책을 맡기에는 이르다는 평가이다. 국민당에 돌아올 2개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맡을 만한 중량급 인사가 부족한 것도 고민거리이다. 따라서 당 핵심부는 인물 영입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정대표가 직접 나서거나 때에 따라 정몽준 의원이 맡기도 하는 거물급 영입은 시한을 정해놓지 않고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일차 대상은 물론 무소속의 鄭鎬溶 許和平 당선자 등이며, 5공 세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張世東씨도 영입 대상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자·민주당 인사도 양당의 당내 사정 변화에 따라 계속 접촉할 것이 분명하다. 정대표가 최근 민자당 경선과 관련해“金泳三씨는 내가 朴哲彦씨 하고 화해하라고 그랬을 때 화해했으면 지금 얼마나 좋았겠느냐. 그때 화해하지 않아서 지금은 완전히 적이된 것 아니냐. 만약 김영삼씨가 대통령후보가 되면 박철언씨는 당 어디에 발붙일 곳이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같은 정대표 말은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되든 반드시 일탈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대표가“노대통령 그만두면 민자당은 없어진다”고 강조하거나, 김영삼 대표에 대해 계속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정대표의 이러한 기대감이 그야말로‘희망사항’에 그치는 너무 안이한 생각 아니냐 하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지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으로 해내는 정대표의 추진력에 기대를 걸어보자는 의견도 상당한 편이다. 정계에서는 민자당 경선이 끝나는 그 순간부터 어차피 또 한차례의 정계재편이 이루어 질 것으로 본다.“李種贊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김영삼 대표는 반드시 당을 나올 것"이라는 정대표 말처럼 민자당 일부 세력의 탈당 가능성은 상존한다. 국민당은 정치세력이 분열되면 될수록, 특히 여권을 지향하는 안정희구세력이 기댈 정치세력이 분화 현상을 보일수록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국민당의 진짜 숙제는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가“이도 저도 싫다”는 식의‘감성적 대안’으로써 받아들인 당 이미지를 어떻게‘이성적 대안’의 이미지로 끌어올리냐에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