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에겐 호랑이 부자에겐 고양이
  • 김현숙 기자 ()
  • 승인 1991.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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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세제의 가장 큰 문제는 ‘불공평’…납세자의 징세 불복사례 크게 늘어

기업체 과장인 최현우(37)씨는 해마다 연말정산 때면 회사경리부로부터 적게는 몇만원, 많을 때는 몇십만원까지 돌려받는다. 처음에는 ‘뜻밖의 공돈’이 생기는 재미에 별 생각없이 쓰곤 했으나 언젠가 신문에서 “정부가 매년 봉급 생활자들로부터 엄청난 세금을 초과징수한다”는 기사를 읽고는 은근히 불쾌했다.

서울시내 개업의사인 친구가 내는 세금이 자신보다도 훨씬 적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놀랐다. 최씨가 지난해 받은 총급여는 1천6백만원, 세금은 1백20만2백80원이엇다. 그런데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는 자신보다 훨씬 적은 82만1천6백70원을 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친구는 작년 신고소득 1억2천만원 중 91.95%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었기 때문이다. 총수입의 91.95%나 되는 금액이 세금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이것이 세법상 간호사 봉급, 임대료, 주사ㆍ약의 원료값 등 소위 ‘필요경비’로 인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남에서 한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김익환(45)씨의 경우를 보자. 역시 전체 매상액중 인건비 임대료 등 93%를 필요경비로 인정받고 7%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었다. 그가 1년 매상을 1억2천만원이라고 신고하면 세금은 단지 62만1천8백10원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다 이 가게의 원래 주인이 ‘로비를 잘해서’ 년 매상 3천6백만원 이하인 과세특례로 분류해놓은 덕에 김씨는 1년에 30만원 이상을 세금으로 낸 적이 없다.

홍은동에 있는 상가 건물의 임대업자 윤치호(50)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한달에 2백만원씩 1년에 2천4백만원의 임대료 수입을 올리고 있는 윤씨가 내는 세금은 겨우 72만8천4백원. 불로소득인 임대료도 62%를 경비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세금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앞에 예를 든 것처럼 자영업자 자유업자 부동산업자 등에게 세금혜택을 주는 필요경비의 대부분이 잘못 산정되어 있다는 점을 우선 들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실수입을 정확히 포착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세원이 그대로 노출되는 봉급생활자는 과세포착률이 1백%이지만 자영업자는 46%, 임대업자 11.8%, 이자 배당 소득자는 45%밖에 되지 않는다.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번 사람들에게 거둬들여야 할 양도소득세는 10%도 못거둬들이고 있는 실정이고 미등기전매의 포착률은 1%도 되지 않는다.
세제의 불공평은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 사유지의 65.2%를 소유하고 있다는 총인구대비 5%, 즉 54만명이 땅값 상승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제대로 환수되지 못하고 탈세로 연결되므로 지하경제는 더욱 거대해지고 서민의 조세 압박은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지난 87년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부동산투기 밀수 향락산업 뇌물 과외지도 사채 암거래 각종 프리미엄 수업 등 세금 한푼 내지 않는 검은 돈의 규모는 전체 GNP의 20~30%에 이른다. 게다가 증시에서 큰손이 몇십억원을 벌어도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는다. 증시는 과세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속ㆍ증여 방치. 부의 집중 부채질
또한 업무용 비업무용으로 분류하여 비과세 혜택을 주는 한 기업의 땅투기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며 이로 인한 탈세 역시 대다수의 근로자, 정직한 기업의 조세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李鎭淳 교수(숭실대)는 “우리나라만큼 가진자들에게 세제 특혜를 주는 나라는 드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형식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세율이 매우 높이 책정되어 있어 마치 소득과 부의 재분배기능을 강력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갖가지 비과세 감면혜택으로 실지로 거두어들이는 세금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부의 집중화현상이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도 상속ㆍ증여에 대한 과세가 시급히 재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상속 증여세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나 실제 세수는 아주 보잘것없다. 그 원인은 상속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부동산인데 실제 가격에 비해 내무부시가표준액의 현실화율은 20%정도에 그치고 있고 심지어는 5%가 안 되는 땅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 있으므로 자금 출처조사가 어려워 세금을 제대로 부과할 수 없는 것이다. 사망자 총수에 대한 과세건수 비율은 0.5%로서 일본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상속재산뿐 아니라 모든 재산관련 세금이 이처럼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것은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 과표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의주의에 빠져 있는 세무 행정에도 문제가 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원천징수되는 근로소득세와 부가가치세로 대표되는 간접세만으로도 매년 세수목표액을 크게 초과 달성하므로 구태여 일일이 추적해야 하는 불로소득에 대한 가세는 방치하는 것이다.

“부가가치세율 내려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고도성장경제에서는 소득세의 비중이 가장 커야 건강한 세금구조라고 볼 수 있다. 소득세는 근로소득자에게 원천징수하는 근로소득세뿐 아니라 개인사업소득, 이자 배당소득 등 재산과 관련된 소득이 대부분이며 납세자가 신고하거나 세무서에서 포착하여 거두어들이게 된다. 선진국의 경우 전체 조세의 70% 정도가 이러한 소득세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이 소득세의 비중이 점차 감소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재무부자 집계한 올해 예산을 보면 소득세 비율은 26.3%밖에 되지 않는다(표 참조). 이진순 교수는 “소득세의 비중이 낮다는 것은 직접세의 비중이 낮다는 얘기이므로 ‘빈익빈 부익부’를 부채질하는 세제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후진국형이고 불공평한 과세 제도”라고 잘라 말한다. 그런데 이 소득세 중에서도 신고분은 10.8%, 원천분은 15.4%라는 것에서 과세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이상철(39)씨는 “원천분은 대부분 근로소득세이고 신고분은 개인사업소득, 부동산 임대소득, 양도소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고분의 비중이 많아야 세금이 골고루 걷히는 것이고,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원천분이 훨씬 많다는 것은 봉급생활자한테만 잔뜩 거둬들이겠다는 거 아닙니까”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우리나라 세제는 극단적인 간접세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다. 간접세란 재산세 소득세처럼 직접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내고 있는 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 주세 등을 가리키는데 간접세 비중이 클수록 후진국형의 세제임은 물론이다. 이는 조세 저항이 없이 손쉽게 걷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로서는 한없이 편리한 제도이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소득과 관계없이 똑같이 내야만 하는 불공평한 세금이다. 일본의 경우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율은 74:26, 미국은 91:9로 직접세가 훨씬 높은 데 반해 우리는 45:55로서 간접세가 훨씬 높다(89년 국제비교표)/

우리나라의 간접세는 70% 이상이 부가가치세로 되어 있다(표 참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는 수년 전부터 “10%로 되어 부가가치세율을 5% 정도로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오고 있다. 李德俊 정책연구간사는 “부가가치세는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장치이며 모든 국민을 탈세범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규모 제조업을 하고 있는 이상돈(58)씨는 “부가가치제도는 완전 실패한 셈”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영수증이나 세금계산서를 가지고 산출하는 것이 부가가치세인데 영수증을 제대로 해달라는 업자에게 하청을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이를 둘러싼 세무공무원과의 뒷거래도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연간 매출액 3천6백만원 이하인 영세업소, 즉 하루매상 10만원 미만의 구멍가게 정도의 사업장을 과세특례자로 분류해주어 신고 매출액의 2%만 부가세를 납부(일반 사업자는 10%)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70% 정도가 이 과세 특례자로 분류되어 있어 막대한 액수가 탈세되고 잇는 실정이다. 이처럼 부가가치세의 혜택을 보는 과세특례 선정을 둘러싸고 업자와 세무공무원과의 검은 거래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沈鉉天 세무사는 “부가가치세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17개국뿐이며 이는 서민대중에 대한 착취의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세배돈까지 영수증을 써주는 시대가 오지 않는 한 부가가치세는 탈세의 요인이 되고 서민만 골탕먹는 세금이 된다”고 덧붙이고 있다.

“우리나라 세제는 일반납세자의 희생하에 특정집단의 이익을 추구해왔다”는 崔洸 교수(외국어대)의 지적에서 보듯이 국민의 세정에 대한 불신은 자못 심각하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경기규칙’인 세금에 대한 불복사례가 늘고 조세소송에서 국가패소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 패소율 점차 높아지는 추세
지난 한해 동안 심판청구건수는 약 2천6백건, 금액으로는 2천2백억원이며 이중 32%인 6백56억원이 잘못 매겨진 세금으로 판결이 났다. 이처럼 국가패소율이 높다는 것은 세제 및 세수행정상에 모순과 문제점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세금제도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각종 불로소득에 대한 추징을 적극적으로 하여 거대한 탈세 규모를 줄여나가고 간접세 중심세제에서 직접세 중심세제로 전환, 소득재분배를 실현하며 서민대중의 세부담을 줄여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시급한 것은 국민과 정부의 납세 의식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세무사찰을 무기로 써서 정치탄압을 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탈세를 하고, 하다 걸리면 ‘쇼부본다’는 생각이 국민 속에 파고든 지 또한 오래다.

세무공무원으로 출발해 10년 근속했을 때 보너스 수당 합쳐 50만원을 손에 쥔다. 그러나 얼마 전 서울대 기악과 부정입시로 구속된 학부모 중의 한명이 세무공무원이었으며 한보의 정태수 회장이 역시 세무공무원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한 전직 세무공무원이 들려준 다음과 같은 얘기는 새겨들을 만하다. “세금에 대해 정부나 국민의 의식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때는 선거를 전후해서입니다. 이때는 국민으로부터 일종의 세금거부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한술 더 뜨는 것은 정부입니다. ‘선거기간에는 체납처리를 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은밀히 내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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