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정당 없다64% 청와대 책임 23%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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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여론조사, 정치권에 대한 전면적 불신 확인

온 나라가 수서의 물결에 휩쓸린 지 한달여.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새로운 증거와 문건들이 ‘고구마 줄기 딸려 나오듯’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평민당과 민주당은 각기 중립내각 구성과 의원직 총사퇴라는 카드를 내걸고 정치적 총공세를 펴고 있다. 이미 재야와 학생운동의 봄철 대공세도 예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서민의 가장 절실한 소망인 ‘땅과 집’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ㆍ경ㆍ관 유착의 총체적 비리와 그 정치적 공방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각 정당 지지도 모두 10% 미만
국민의 생각은 너무나 분명했다. 그리고 단호했다. 국민 대부분은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할 만한 정당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결과를 믿기 어렵다고 했다. 한 나라의 의회에 진출한 여야 3개 정당 중 어느 한 정당도 국민으로부터 10% 이상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또 63.9%의 국민이 지지할 정당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지난 2월20~21일 이틀간 전국 1천명을 대상으로 ‘수서사건에 관련된 민의’를 물은 결과, 이와 같은 충격적인 풀뿌리의 뜻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지지하는 정당이 있다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무려 63.9%에 달했다. 각 당의 지지도를 살펴보면 민자당 8.8%, 평민당 8.7%, 민주당 7.2%로 모두 10%미만에 머물러 ≪시사저널≫ 여론조사 사상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했다(148회 임시국회 폐회직후인 90년 3월16~1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자당 27.7% 평민당 19.4% 민주당6.0%로, 대구 서갑구 보궐선거 직후인 90년 4월7~8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민자당 23.7% 평민당 13.8% 민주당 13.6%로 나타났다).

이번 수서사건으로 ‘반사이익’을 누렸을 것으로 예상됐던 민주당은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런 결과는 제도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 불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듯하다. 이는 “정치가 설자리를 잃었다”는 정치권의 우려가 현실로 확인된 것이기도 하다. 여론조사 때마다 일정한 지지율을 지켜온 평민당은 그들의 ‘가장 확고한 지지기반’인 전남ㆍ광주지역에서 마저 30.7%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이것이 수서파동으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인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일지에 따라, 지역분할 구도 위에 짜인 13대국회의 정당구조가 앞으로 변할 수 있을지를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 전체의 책임” 가장 높아
“수서특혜비리의 가장 큰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31.2%가 “가장 큰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다”고 답했다. 우리사회의 구조적 부패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음을 알 수 있다. 張達重교수(서울대ㆍ국제정치)는 이에 대해 “언론보도가 이 사건의 초점을 주로 정치권의 비리에 맞춰왔지만 언론계조차 촌지 수수로 개입됐다는 사실을 알 만한 국민은 다 알고 있다”며 “국민이 우리사회에 만연한 제도적 비리를 직시하고 있다는 증좌”라고 분석한다. 특히 연령이 낮을수록 ‘사회 전체’라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20대 38.7%, 30대 35.2% 40대 28.0%, 50대 이상 18.4%) ‘구조적 비리’에 대한 젊은 세대의 사회적 인식이 높음을 나타냈다.

‘사회 전체’가 아닌 구체적인 관련 당사자를 지적한 사람 가운데는 청와대를 꼽는 응답자가 23.2%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민자당(8.5%) 한보건설(8.2%) 서울시(3.6%) 평민당(2.4%)순이었다. 소속의원2명이 구속되고 정치자금 2억원을 받은 평민당의 책임이 가장 낮게 지적된 것은 민자당 연루설이 막 터져나온 때에 여론조사가 행해져서 그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풀이도 가능하다.

구체적인 당사자를 적시한 응답자에게 “그렇다면 그 집단의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는가”를 물었다. 그 결과 ‘청와대’라고 응답한 2백32명 중 67.2%는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장병조 청와대비서관’이라고 지적한 응답자는 2.2%에 그쳤다. 이는 수서의혹의 눈길이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한편 ‘민자당’이라고 응답자 중 23.5%와 ‘평민당’이라고 한 응답자 중 33.3%가 각당 총재를, ‘서울시’라고 한 응답자 중 72.3%가 서울시장을, ‘한보그룹’이라고 한 응답자 중 84.1%가 정태수 회장을 각각 해당 조직의 ‘가장 책임있는 사람’으로 꼽았다.

“노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담화문이 수서사건을 마무리짓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견해가 48.8%로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29.7%)보다 훨씬 많았다.

수사 미흡67.6% 재수사 요구 85.1%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보다 앞섰던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서는 더 큰 불만이 표출됐다. 응답자의 67.6%가 “미흡하다”고 대답한 반면 “충분했다”는 응답자는 7.6%에 불과했다. 특히 젊은층일수록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는 견해를 보였다(20대 77.2%, 30대 75.1%, 40대 65.6%, 50대 이상 46.9%). “미흡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79.1%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전남ㆍ광주 지역, 경기ㆍ인천 지역의 순으로 나타났다.

검찰수사가 미흡했다고 응답한 6백76명에게 “미흡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으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응답자의 85.1%가 “재수사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으며 16.3%만이 “검찰이 재수사 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반면 38.2%와 30.6%는 각각 “특별검사를 임명해 재수사해야 한다”와 “국회가 국조권을 발동해 조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검찰에 재수사를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이처럼 적은 것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널리 퍼져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미흡하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현상태에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덧붙인 견해가 10.4%였다. 이 응답자들을 연령별로 보면 연령이 높을수록(50대 이상 20.6%, 40대 13.1%, 30대 9.5%, 20대 5.4%) 많아 기성세대의 ‘현상유지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어떤 부분을 더 밝혀야 하는가. 한가지씩만 말해 달라”는 자유응답형 질문에 “모든 부분을 다 구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가 25.7%로 으뜸을 차지했다. 수서사건이 여러 기관에 의해 복합적으로 얽혀 저질러진 ‘총체적 비리’라는 점과 함께, 사건이 워낙 방만한 만큼 응답자들이 ‘의혹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이런 높은 비율이 나온 듯하다. 이밖에 정치자금(13.6%), 청와대 개입(10.4%)이 ‘반드시 밝혀져야 할 의혹’으로 지적됐다.

총체적 비리에 총체적 불신
정국수습책과 관련해 “요즈음 정치상황을 볼 때에 국회의원 총사퇴와 함께 조기총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견해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라고 물었다. ‘찬성’(41.0%)이 ‘반대’(32.1%)보다 다소 많이 나왔다. 이러한 ‘조기총선’ 찬성비율은 ≪시사저널≫이 지난해 8월 사퇴정국하에서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찬성 62.3%, 반대 16.0%, 모르겠다 21.7%)와 지난해 10월 내각제 각서 파문 직후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찬성 47.5%, 반대 35.7%, 모르겠다 16.8%)보다 낮은 것이다. 수서사건으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증폭됐음에도 불구하고 조기총선 찬성비율이 지난해보다 낮게 나타난 것은 13대국회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에도 연령이 낮을수록 ‘찬성’ 의견이 많았다(20대 46.8%, 30대 46.2%, 40대 35.5%, 50대 이상 34.1%).

지자제 선거에서는 “정당보다 인물을 보고 찍겠다”는 응답이 무려 63.8%로, “정당을 보고 찍겠다”(12.2%)보다 5배 이상 높은 것은 유권자들의 기성정당에 대한 높은 회의감을 반영해, 지자제 선거에서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수서사건에 대한 국민여론은 총체적 비리와 총체적 불신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비리와 불신은 자칫 정치의 유실은 물론 체제의 존립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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