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작가 전시회, 사흘이 멀다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1.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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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수입 전면개방 2개월 / 작품 수준 높으나 국내 그림값 안정엔 기여 못해

미술품 수입개방 원년인 금년 초부터 국내 미술시장에 해외작가전 공세가 펼쳐지고 있다. 아직 이렇다할 가시적 수요는 보이지 않고 있으나, 발빠른 고객 중 일부가 이미 해외미술품 투자로 돌아섰다는 화랑가의 소문이고 보면, 걸프전의 영향으로 위축돼 있는 국내 상업화랑의 시장확보 노력은 해외작가전 유치 경쟁으로 번지는 듯하다.

현재 국내에서 해외미술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화랑은 예성화랑 갤러리블루 갤러리미건 정도. 그러나 이들 외에도 가나화랑 현대화랑 선화랑 두손갤러리 아나갤러리 등 여러 화랑들이 앞다투어 외국작품전을 유치함으로써 해외미술품 거래를 위한 전열 정비에 착수한 상태이다.

해방 이후 지난 40년간 외국작품전의 국내전 개최 횟수는 총 5백20건. 장르별로는 판화 드로잉 서양화가 대부분이었고 국가별로는 프랑스 미국 독일 등 몇나라 작가들에 대한 편중이 심했다. 외국작품의 국내전 개최는 88년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나 88년 60회, 89년 73회, 90년 70회였다. 올해는 상반기중에만 50여회의 일정이 잡혀 있어 지난 몇년간의 수준을 크게 앞지를 전망이다.

지난 1월 피카소전(예성화랑)을 필두로 프랭크 스텔라의 판화전(아나갤러리)이 열렸고, 이어 근래 프랑스 미술의 한 흐름을 보여주는 프랑스 자유주의 구상전(갤러리 블루 화인화랑 평화랑), 미국 팝 아트의 대표작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 프랭크 스텔라의 근작들이 소개됐다(두손갤러리). 3월 이후 아나갤러리는 미모 팔라디모전, 선화랑은 헨리무어전과 유고의 트라보티치전(6월)을 계획하고 있다. 국제화랑은 헬렌 프랑켄텔러전(5월)을, 두손갤러리는 브라이언 헌트 조각전(3월)과 제임스 브라운전(5월)을 확정했다.

이같은 외국작가전의 잇따른 개최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그 긍정적ㆍ부정적 영향에 관한 이견이 구구하지만 무엇보다 턱없이 치솟은 국내미술품 가격이 이들 외국자금들과의 경쟁으로 언제쯤, 얼마나 고삐가 잡힐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나 회화ㆍ판화 등 시장 전면개방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격구조에 영향을 줄 만한 유통질서상의 변화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현재 미술시장에서 매매가 성립되는 국내 작가는 고작해야 1백명선. 이들 가운데 특히 70대 이상 원로작가 및 작고작가의 작품은 91년 1월 현재 ‘매매와 관계없이 지난 가을보다 거의 50%씩 인상되었다“고 한다. 작가들의 일방적 통보, 혹은 작가와 화랑주의 담합에 의해서 ’부르는 게 값‘으로 뛰어올랐고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화랑주들의 울상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술시장에 풀린 돈은 여전히 시장 안에서 돌고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가들이 호당 3백만원 이상의 원로ㆍ작고 작가 작품에만 몰리기 때문에 젊은 작가는 물론 중진의 작품마저 가격 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기현상을 빚고 있다.

화상들, 전질ㆍ위작 심의기구 설치에 냉소

화상들에 따르면 10여명의 국내 원로작가들의 작품가는 1백호 기준 대작의 경우 최저 1억~2억원 수준으로 미국의 로버트 리우센버그나 프랑스의 피에르 알레친스키 등 국제적 거장들의 작품과 별 차이 없이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세금추징을 꺼리는 화상들의 철저한 함구로 수입미술품의 실거래량을 정확히 추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개방초기 해외미술에 대한 정보 부족 등으로 투자를 꺼리는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회화의 경우 3천만원선, 판화의 경우, 1백만~2백만원 선의 상품이 ‘부담없이’ 팔리고 있다 한다.

국내 미술시장의 전면개방 조치가 발표된 이후 저질 재고작품 유입, 위작 시비 등이 우려됐으나 아직까지는 적어도 ‘이름있는’ 화랑이 유치한 전시의 경우 작가 선정에서 일단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다. 다만 제아무리 지명도가 높은 작가의 전시회를 개최한다 할지라도 그 작가의 ‘대표작’을 과연 몇점이나 건져올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화랑측의 안목과재력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당국은 조만간 관세청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기구를 둘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화상들은 “국내 미술품 감정에도 속수무책일 만큼 전문 감정인이 휘귀한데 그같은 기구를 만들어봐야 ‘빛 좋은 개살구’ 아니겠느냐”고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미술관이나 개개 화랑들이 나서서 그간 등한시해온 해외미술에 곤한 자료정비에 착수하는 일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외국에서 이미 체계적으로 정비된 저명작가의 작품 도판(슬라이드) 및 작가별 권위자들의 평가 자료 등을 입수, 저질ㆍ위작을 여과하는 참고자료로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미술관학을 제대로 공부한 전시기획자를 하루빨리 양성하고, 화랑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국내작가의 해외진출을 지원함으로써 미술계의 문화역조를 극복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미술 평론가 서성록씨는 역설한다.

상업화랑들이 장사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보다 긴 안목으로 ‘문화사업자’로서의 책임에 충실할 때 말로 주고 되로 받는 식의 문화적 우루과이라운드가 아닌, 명실 상부한 문화교류의 장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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